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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로 향해 열린 문

윤진섭

새로운 세계로 향해 열린 문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20년 역사의 의미


                                      윤진섭(미술평론가)


Ⅰ. 1998년에 출범한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이 어느덧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였다. 1993년에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래 전국적으로 수많은 야외조각공원이 조성되었지만, 아마도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만큼 연륜이 깊고 지속성이 있는 행사는 없을 것이다. 기존의 국내 조각심포지엄들은 대부분 단발성 행사에 그쳤거나 계속 이어졌더라도 불과 3-4회를 넘지 못한 것들이 대다수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조각공원의 조성에 따른 ‘장기적 비전과 플랜’의 결여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지자체의 단체장 선거와 깊은 함수관계가 있다. 전임 단체장이 벌인 사업을 후임자가 지속시키길 꺼려하는 좋지 못한 풍토가 은연중 문화예술 분야에까지 조성돼 왔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은 대단히 성공적인 예에 속하며, 한국 조각 심포지엄의 역사에 신기록을 남긴 뜻 깊은 행사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20년의 기간이란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정도로 긴 세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행사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면에는 역대 자치단체장들의 문화와 예술을 바라보는 깊은 애정과 전통을 사랑하고 이를 미래에 연결시키려는 비전이 스며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여겨진다.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이 지금까지 존속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 행사가 ‘저예산’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증액이 되고 있긴 하지만, 총예산 3억 원 내외는 인구 20만의 소도시인 이천시가 국비와 도비의 지원을 받아 감당할 정도이기 때문에 별 부담 없이 행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예술 행사의 성공 여부가 반드시 많은 예산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저예산이라도 잘만 활용한다면 성격이 뚜렷한 문화예술 행사로 뚜렷이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 행사는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처럼 적은 예산으로는 기념비적인 조각 작품을 이천시 관내에 조성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이 행사에 참가한 초대작가들의 면모나 지명도는 차치하고라도 국내외적으로 이천시를 홍보할 수 있는, 그래서 도자기와 조각의 메카인 이 고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랜드마크’가 없는 현실은 이 행사의 뜻 깊은 20주년을 맞이하여 한 번쯤 되새겨 봐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볼 때, ‘랜드마크’라고 해서 꼭 세계적인 유명작가의 거대한 작품을 세워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아이디어의 부족과 철학의 부재에서 오는 단견(短見)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이천은 예로부터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로 유명한 곳이며, 그 전통을 배경으로 현재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2001년에 창립된 이 행사 역시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과 함께 이천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예술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이 두 행사의 이미지를 합하면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앞서 언급한 ‘랜드마크’와 관련시켜 볼 때 ‘도자기와 조각의 융합’은 어떤 형태로든 하나의 좋은 결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가령 이천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의 파편을 이용한 ‘랜드마크’로서의 조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조각이 단순히 ‘현대성(contemporaneity)’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이천이라는 지역의 ‘역사성(historicity)’의 옷을 덧입히는 것을 의미한다. 선사시대부터 삶의 터전을 정하고 대대손손이 살아온 오랜 역사를 지닌 이 땅에 이천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도자기의 파편들이 현대적인 감각의 ‘모뉴멘탈 랜드마크(Monumental Landmark)’로 거듭 태어난다면 이 땅에 거주하는 주민들 역시 확고한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1)



Ⅱ.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의 유명한 책 <향연(Symposion)>이 의미하듯, ‘심포지엄(Symposium)은 원래 먹고 마시는 가운데 토론을 하며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지적 행위를 뜻했다. 지금은 삭막한 신식 예식장 풍경으로 바뀌었지만, 옛날 우리네 시골 동네의 잔치집 광경을 떠올리면 좋을 듯 싶다. 대부분 공장에서 제작돼 현장으로 옮겨지는 국내의 여타 조각심포지엄에 비해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이 지닌 뚜렷한 장점이 바로 이 현장성에 있다. 이 행사는 처음부터 현장제작을 중시해 왔는데, 작가들이 평균 보름 정도 조각 심포지엄 현장에 머물며 작품을 제작하는 동시에 국내외의 작가들과 교류하는 부수적인 효과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전문성을 강조한 나머지 정작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관심을 유도하는 소통 프로그램에는 다소 등한히 한 저간의 사정을 지적하고 싶다. 지난 20년간에 걸친 이 행사를 반추해 볼 때 학술세미나와 강연, 아티스트 토크, 도슨트 교육과 같은 프로그램은 풍성했지만, 정작 “시민들에 의한, 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의 개발에는 다소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이 말 그대로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미술교육 및 시민참여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가 심도있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가령 이천시 관내 초중등학교 학생들의 심포지엄 현장 견학을 비롯하여 이 행사에 초대된 외국작가들의 1일 홈스테이와 같은 체험 프로그램 등 시민들이 이 행사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고 기꺼이 동참하는, 그래서 문화예술이 시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와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2) 현재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은 관내 초중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체험 및 견학 프로그램이 도슨트들의 설명과 지도를 곁들어 잘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심포지엄’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체험 프로그램의 개발에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고 듣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몸의 감각을 확장하고 물질의 존재감을 ‘생생하게 느끼는’ 창의력 개발 교육을 병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예술이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가까이에 있으며, 미술관의 문턱이 높은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가볍게 넘을 수 있는 것임을 어릴 적부터 체득시켜야 할 것이다. 이는 향후 더욱 실감나게 전개될 국제화의 시대에 대비하는 포석이기도 하다. 특히 초등학교 학생들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SNS 시대에는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에 기반을 둔 새로운 미적 체험의 양태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행사 또한 이에 대한 새로운 전략과 변화가 필요하다. 이미 조각과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마당에 전통적인 조각의 매체나 재료만을 고집하는 것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다원주의가 사회와 문화현장 곳곳에 파급되고 있다. 이제는 단세포적인 고립주의는 발을 붙이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했다. ‘타자’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글로컬리즘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1998년 창립 이후 [이천국제조각비엔날레]는 올해로 만 20년째를 맞이하였다. 장수 프로그램인 만큼 인지도도 높으며 시민들의 자긍심도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국내작가 79명을 비롯하여 유럽, 북남미, 동남아 등 총 51개국에서 온 165명의 해외작가를 포함, 연인원 244명의 작가들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 상당한 수효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그만한 숫자의 조각작품이 설봉공원을 비롯하여 온천공원, 노성산 시민공원 및 관내 관공서 여러 곳에 산재해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수에 기여하며 미술교육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와 함께 [이천국제조각비엔날레]는 이제 이천을 세계 속에 각인시키는 문화예술의 첨병으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20년 통합도록 서문, 2017)



1) 물론 이것은 하나의 제안에 불과하다. 그러나 도자기 파편의 발굴에서 수집에 이르는 과정을 포함하여 가령 국제공모를 통한 프로젝트의 개발 등 ‘모뉴멘탈 랜드마크’에 따른 전 과정을 ‘사건화(performing)’한다면 상당한 뉴스의 생산은 물론 시민들의 동참에서 오는 주인의식의 생성 등등 상당히 생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2) 한 관계자의 전언에 의하면 초창기에 외국작가들의 홈스테이를 비롯하여 다양한 현지 체험이 이루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정이 어떻든 이 체험 프로그램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관리돼 지속적으로 시도해 볼 만하다. 문화의 전파는 몸으로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효율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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