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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실험으로 점철된 50년 행위미술의 역사

윤진섭

 도전과 실험으로 점철된 50년 행위미술의 역사


                                                윤진섭(미술평론가)


 현재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전](2018.1.16-5.13)은 지난 50년에 걸친 한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회고하는 전시이다. <1부 한국의 아방가르드미술 : 1960-80년대의 정황>과 <2부 한국 행위미술 50년 : 1967-2017> 등 두 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전시는  성격상 서로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19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이르는 시기가 이에 해당한다.

 김찬동(1부)과 필자(2부)가 협력 큐레이터의 자격으로 참여한 이 전시는 전위미술과 관련시켜 볼 때 한국 현대미술사상 가장 첨예한 시기에 해당하는 1967년을 기점으로 삼고 있는데, 그 근거는 [청년작가연립전]1)의 개최이다. ‘무’, ‘신전’, ‘오리진’ 등 당시 20대 중후반의 신세대 작가들이 연합하여 구성한 이 전시의 주된 성격은 ‘탈(脫) 평면’이었다. 1950년대 후반에 나타나 근 10여 년간 지속된 비정형(Informel) 회화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혈기왕성한 전위주의자였던 이들의 공격목표이자 새로운 미술의 전개를 위한 모토였다. 아방가르드의 속성상 새로운 미학으로 무장한 신세대가 낡은 구세대를 공략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의 거사는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다.

 김창열, 박서보, 하인두 등으로 대변되는 전후 앵포르멜 세대2)가 회화를 매체로 과격한 감정을 내뿜었다면, 제자 세대에 해당하는 이들은 신체와 오브제, 설치를 무기로 산업화 시대의 미술을 대변하고자 했다. 이들은 대학 재학시절의 말기에 비정형 회화를 체험한 바 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에 이르자 이미 지리멸렬한 기색이 농후한 이 낡은 회화적 관습을 거부하는 몸짓이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이라는 타이틀은 구세대에 대항하여 새로운 미학을 부르짖었던 당시 신세대 전위작가들의 호전적인 저항의식과 과감한 도전정신을 함축한 표제어이다. 이 거사를 기점으로 한국의 전위미술은 도도한 물줄기를 이루며 화단의 변방에서 점차 미술사의 중심으로 위치이동을 해왔고, 50년의 역사를 통해 새로운 미술사를 써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 ‘행위미술’이 있다. 

 사실 ‘전위미술(avant-garde art)’과 ‘행위미술(performance art)’은 거의 동의어에 가깝다. 전위가 아닌 행위미술은 사이비이거나 껍데기(위장)에 불과하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오늘날 미술계에 휭행하는 퍼포먼스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하며, 이 막중한 과업은 당대의 비평가들과 미래의 미술사가들에게 고스란히 부여될 것이다.

 지난 50년에 걸친 한국 행위미술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특성을 밝히고, 시기를 구분하고, 각 시기에 나타난 행위미술 운동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소명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대구미술관이 주최한 [한국 행위미술 50년 : 1967-2017]은 한국 행위미술 반세기를 맞아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는 ‘역사적’인 전시이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그것은 뼈아픈 반성이자 회한, 나아가서는 아주 드물긴 하지만 미래적 비전으로 나타난다. 이때의 ‘미래적 비전’은 뼈아픈 반성을 전제로 한 것으로, 인생은 되돌릴 수는 없지만 ‘다시 살 수는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한국 행위미술 50년을 돌아보면서 과거의 작가들이 끊임없이 호출되는 상황은 이러한 작가적 삶이 지닌 희망과 준엄한 반성적 교훈이 엇갈리는 교차로에 우리가 서 있음을 말해준다. 이미 고인이 된 1세대 행위미술가들, 예컨대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의 삶을 돌아보면서 공과를 따지는 일은 단순히 이들의 삶과 예술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넘어서 그것들이 후대에 미치는 영향과 보다 깊숙이 관련된다. 행위미술의 초창기 선구자들 중에서 왜 일부는 실험을 그쳤는가 하는 질문3)은 50년이 흐른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반면, 행위미술과 관련시켜 볼 때, 최근 몇 년간 한국 화단에 나타난 새로운 기류는 이른바 국제화 현상이다. 이승택, 김구림, 이건용, 이강소, 성능경  등 1세대 행위미술가들이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비롯한 국내외의 유명 미술관과 화랑의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의 행위미술이 단색화(Dansaekhwa)에 이어 국제화되는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결코 우연히 나타난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이번 전시에 출품된 약 2천여 점에 달하는 풍부한 아카이브 자료들이 증명하듯이, 한국 행위미술이 지닌 독자성에 기인한 것이다. 한국의 초기 해프닝은 서구의 것과는 차별적인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가령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1967)을 비롯하여 <가두시위>(1967), <한강변의 타살>(1968),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1970) 등등은 당시 한국의 현실을 풍자한 ‘현실주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어서 주목된다4). 미술사적 측면에서 볼 때, 이는 1980년대에 등장한 정치적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서구추구적’, ‘서구 미술의 재탕’, ‘서구 미술의 모방’과 같은 기존의 평가와는 다른 것이다.

 2017년에 기획한 [한국 행위예술 50주년 기념 자료전-실험과 도전의 전사들]5)에서 나는 한국 행위미술의 역사를 총 4개의 시기로 구분한 바 있는데, 이러한 분류는 대구미술관의 이번 전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기 한국 행위미술의 태동기(1967-1970) : 실험과 도전

 해프닝이 한국 화단에 처음 나타나면서 제도권에 대한 행위미술가들의 도전과 실험이 극단적인 형태로 벌어진 시기이다. 정부정책을 비판하는가 하면 전위예술가들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양상이 벌어졌다. 이른바 전위예술에 대한 대중의 몰이해와 함께 이들의 행위를 장발과 미니스커트, 대마초 흡연 등 퇴폐풍조로 낙인찍는 정부의 탄압이 동시에 발생했다.

 대표작품 : <한강변의 타살>(1968), <투명풍선과 누드>(1968),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1970)

제2기 한국 행위미술의 정착기(1971-1980) : 논리와 사유

 70년대 중반에 접어들자 해프닝에 대한 열기가 가시면서 개념미술의 연장선상에서 논리와 사유가 중시되는 이벤트가 성행하기 시작했지만 작가는 극소수에 국한되었다. 이건용의 로지컬 이벤트, 성능경의 언어 및 신체 이벤트, 김용민의 명상적 사유 이벤트, 장석원의 선불교적 이벤트 등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 관념적이며 사유적인 행위미술이 이 시기의 특징이다.

제3기 한국 행위미술의 확산기(1981-1999) : 융합과 충돌

 80년대 접어들면서 한국의 행위미술은 점차 장르간의 융합을 가져오면서 토탈화되기 시작한다. 비단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무용, 연극, 마임, 실험영화, 의상 등 장르 간 크로스 오버와 퓨전이 이루어지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80년대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이 1987년의 6월 항쟁으로 집결돼 마침내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문민정부의 출범을 여는 중대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한국의 행위미술은 점차 다변화되었으며 미술의 내적인 문제보다는 작가들의 다양한 내면 의식이 일종의 서사적 형식으로 표출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행위미술이 나타났다. 대전의 [78세대](1980)와 [금강야외현대미술제](1980), 공주의 [야투](1981), 대구의 [12월-퍼포먼스](1981), [현장에서의 논리적 Vision](1982) 등등.  

제4부 한국 행위미술의 국제화 시기(2000-  ) : 상승과 교류

2000년대에 접어들자 한국 행위미술계에 큰 변화가 찾아오는데, 국제 교류가 그것이다. 2000년에 창설된 [서울국제행위예술제(SIPAF)]에 프랑스의 올랑(Orlan)을 비롯하여 호주의 스텔락(Stelarc), 일본의 타스미 오리모토 등 저명한 행위예술가들이 초대되었으며, 김백기가 주도한 [한국실험예술제(KOPAS)]에도 유럽과 미국, 아시아 등 많은 외국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또한 홍오봉이 창설한 [부천행위예술제(BIPAF)]와 문재선이 설립한 [Performance Art Net Work in ASIA : Pan ASIA]도 국제화를 겨냥한 행사였다. 특히 2000년대에는 행위예술제가 성황을 이루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주요 행위예술제로는 서울국제행위예술제를 비롯하여 한국실험예술제, Pan ASIA 퍼포먼스 페스티벌, 부천국제행위예술제, 김천국제행위예술제, 월미도행위예술제, 삼천포국제행위예술제, 전주국제행위예술제, 안동국제행위예술제, 구미국제행위예술제, 오산국제행위미술제, 부산국제행위예술제, 고령국제행위예술제 등이 잇달아 창립되면서 행위미술의 국제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다(Dada)와 이탈리아의 미래파 퍼포먼스 이래 세계의 행위예술사는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기술돼 왔는데, 이번 전시에 특별전으로 열린 <문재선컬렉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아시아의 행위예술 역시 매우 우수하며 그 역사 또한 매우 깊다. 대구미술관의 이번 전시를 계기로 향후 아시아의 행위예술사가 새롭고 보다 치밀하게 구성, 기술되어야 할 것이다.

 대구미술관이 주최한 이번 전시는 한국 행위미술 40주년을 맞이하여 2007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한국의 행위미술 1967-2007]전과 함께 한국행위미술사는 물론 한국현대미술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전시이다. 이 전시는 특히 약 2천여 점에 달하는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50년에 달하는 한국 행위미술의 역사를 실증적이며 입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점에서 향후 미술사 서술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그동안 한국 현대미술사 기술에서 누락되었던 대구의 [12월-퍼포먼스(동성로)](1981), 대전의 [19751225](1975, 대전역 광장)와 [대전 78세대](1980), 공주의 [금강현대미술제](1980)와 [야투](1981), 수원의 [컴아트그룹](1990) 등등 지역에서 일어난 행위미술 운동을 발굴, 새롭게 소개함으로써 기존의 한국 행위미술사를 보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소 와 예산 관계상 전체 초대작가들의 작품 소개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었던 것과 제4부 전국 행위미술 페스티벌들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했던 일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 표기한 한국 행위미술의 리좀식 도형은 미래에 전개될 행위미술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구상한 것이다. 행위미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세계의 문화예술 지형 속에서 어떻게 상호 연관을 맺고 또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그리고 그것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 나갈지 살펴보자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도표를 통해 관객들은 오늘의 행위미술이 단순히 예술의 한 장르나 매체가 아니라, 미래에 전개될 ‘행위예술학(Performology)’의 씨앗을 그 안에 품고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logos) 이전에 ‘짓’(Jit/action)이 있었기 때문에.



                                        <Art in Culture, 2018, 4>


1) 당시 소공동에 위치한 중앙공보관에서 1967년 12월 11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전시이다. 참여작가들 명단은 다음과 같다. ‘무’동인 : 최붕현, 김영자, 임단, 이태현, 문복철, 진익상. ‘신전’동인 : 강국진, 양덕수, 정강자, 심선희, 김인환, 정찬승. ‘오리진’동인 : 최명영, 서승원, 이승조, 김수익, 신기옥(김택화, 이상락, 함섭은 불참)
2) 1957년에 결성한 ‘현대미술가협회’를 필두로 1960년에 나타난 ‘60년미술가협회’와 ‘벽’ 동인 등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3) 이와 유사한 질문은 일찍이 필자가 1995년에 기획한 [공간의 반란 : 한국의 입체, 설치, 퍼포먼스 1967-1995](서울시립미술관) 서문을 통해 제기한 적이 있다. 
4)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졸고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역사와 비평>(미술사연구회 논문집, 2017)을 참고할 것.
5) KIAF2017(COEX), 2017. 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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