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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국진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윤진섭

강국진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윤진섭(미술평론가)
Ⅰ.

 얼마 전에 정강자가 타계함으로써, 1968년 10월 제2한강교 밑에서『한강변의 타살』이란 해프닝을 벌였던 강국진(1939-1992), 정강자(1942-2017), 정찬승(1942-1994) 등 세 사람은 이제 역사의 저편으로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럼으로써 한국현대미술사에서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해프닝(Happening)’의 선구자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부여받은 이들은 이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호출되기를 기다리는 입장에 서 있게 됐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 미래의 어느 날 후학들에 의해 호출된다는 것은 이들의 삶과 예술이 재평가된다는 의미에서 미술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왜냐하면 우리는 역사의 장(章) 저편으로 넘어간 인물들에 대해 새로운 비평적, 미술사적 해석을 통해 생존했을 때와는 다른, 보다 객관적이며 엄정한 역사적 접근을 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강국진의 삶과 예술에 대한 최초의 객관적인 조명은 사후 15년이 지난 2007년에 이루어졌다. 경남도립미술관이 주최한 [역사의 빛 : 회화의 장벽을 넘어서-강국진전](2007. 5. 15-7. 15)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전시는 경남도립미술관이 경남 출신의 작고 및 원로작가를 재조명하기 위한 기획 전시의 일환으로 열렸다. 이 미술관은 2004년 개관이래 “경남 출신 미술인들 중 선구자적인 공적이나 뚜렷한 미술사적 업적을 남긴 작고 또는 원로작가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기리기 위한 전시”1)를 기획하고 학술세미나2)를 개최한 바 있다. 강국진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기 위한 이 기획전과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해 미술사적, 비평적 접근을 꾀하기 위해 마련한 학술세미나는 기실 1995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돌아간 지 세 돌 강국진 그림잔치]이후 12년 만에 처음 열린 것이다. 한가람미술관 전시는 강국진을 기리는 지인들이 모여 결성한 <강국진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이 마련한 것으로 그의 타계 후 만 3년 만에 이루어졌다. 전시와 함께 두꺼운 화집이 발행되었는데, 이 화집은 해프닝을 비롯하여 입체, 설치, 회화, 판화 등 강국진 미술활동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도록 편집돼 있다. 이 화집이 지닌 장점 가운데 하나는 지인들이 쓴 풍부한 추모의 글을 수록한 점이다. 평소에 고인과 깊은 정신적 교감과 우정을 나눠 온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3)이 과거를 회상하며 그와 얽힌 에피소드나 성품에 대해 술회하고 있어 작가 강국진의 인간적 면모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러 지인들과 얽힌 에피소드는 다 다르지만, 인품이나 성격에 대한 진술을 종합하면 ‘무뚝뚝함, 다정다감함, 의리가 있음, 수줍음, 따뜻한 인간애와 높은 신뢰도’ 등등으로 요약된다.

 그렇다고 해서 타자의 눈에 비친 강국진의 인간적인 모습이 곧 작가 강국진의 작품세계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서도 안 될 것이다. 인간성이 작품에 어느 정도 투영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곧 작품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는 않기 때문이다.4)

 강국진과 관련하여 나는 여러 편의 글을 썼다.5) 따라서 이 짧은 글에서 또 다시 ‘전위(Avant-garde)’ 혹은 ‘실험(Experiment)’의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분석하거나 해석, 혹은 비평하기는 어렵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이 글을 통해 최근에 일고 있는 한국의 초기 해프닝과 이벤트에 관한 연구와 관련, 강국진의 예술이 지닌 의미에 관해 서술하고 한다. 



Ⅱ.

 2014년, 나는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국립 아시아 문화의 전당(ACC) 정보원의 의뢰로 한국 행위예술 원로작가 구술채록사업 책임연구원의 자격으로 동 사업을 수행하였다. 약 2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이 사업의 대상은 생존작가로는 김구림, 김용민,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장석원, 정강자 등이며, 작고작가로는 강국진, 정찬승 등이다. 이 사업을 통해 나는 한국 행위예술의 원로 8명의 구술 내용을 녹화하여 그 동안 비평 및 미술사에서 모호하게 알려졌거나 부정확하게 기술됐던 내용을 증언 내지는 각종 아카이브를 자료를 통해 교정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6) 또한 이미 작고한 강국진과 정찬승에 대해서는 그동안 각종 연구에서 누락됐던 새로운 아카이브 자료를 수집하여 비평 및 미술사 연구를 위한 새로운 토대를 마련하였다.

 최근에 영국의 테이트모던미술관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한국의 전위미술에 대해 기울이는 관심은 주로 1세대 전위작가들에 집중되고 있다. 이는 단색화에 이어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그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김구림과 이승택은 테이트모던미술관의 초대로 작품이 소장됨과 동시에 전시된 바 있으며, 프랑스의 생테티엔미술관은 이강소의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이건용은 호주에서 전시가 논의되는 등 국제 미술계의 한국 전위 붐은 날이 갈수록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수면 아래서 잠자고 있던 강국진 예술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촉발시킨 전시는 금산갤러리가 최근에 개최한 [Omage! Kang Kukjin]전이다. 학술세미나를 통해 강국진 예술의 삶과 예술을 조명함과 동시에 80년대 이후의 회화, 그중에서도 특히 단색화적 경향의 작품들을 선보인 이 전시는 비록 상업갤러리 주최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한국 전위예술의 선구자인 강국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는 행사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강국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10년 전에 열린 경북도립미술관의 회고전 이후 점차 멀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모처럼의 새로운 문제제기인 셈이다. 특히 강국진이 한국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비단 해프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회화를 비롯하여 판화, 오브제, 설치, 미디어아트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이는 때늦은 감이 있다.

 새삼스럽지만 여기서 우리는 국공립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강국진을 비롯하여 앞서 언급한 1세대 행위예술가들이 60-70년대 당시의 척박한 문화예술적 환경에서 온갖 역경을 딛고 행위예술을 통해 당시의 문화 내지는 정치사회적 현실에 대해 따가운 비판을 가했던 공적에 대한 미술사적 조명이 이들 국공립미술관들에 의해 제대로 이루어졌던 적이 있던가? 반성적 차원에서라도 한번 쯤 자문해 볼 일이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이들의 중요성을 깨닫고 조명작업을 시작하고 있는 현실은 반성적 차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단색화건 행위예술을 둘러싼 1세대 전위예술이건 국내의 메이저 상업갤러리들이 이들의 지난 활동이 지닌 역사적 의미에 주목, 재조명을 시작함과 동시에 해외의 미술관과 채널을 가동, 거꾸로 해외에서 역류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순히 상업갤러리들이 상업적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하는 상행위로 치부만 할 것인가?

 여담이지만 우리의 미술계는 너무 말이 많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내가 볼 때 무책임하거나 비판을 위한 비판, 즉 소모적이며 논쟁의 가치도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냥 흘려듣는 경우가 많다. 그런 비판들은 대개는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으며, 그런 만큼 실천이 따르지 않는 별 의미가 없는 말의 성찬이자 허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오랜 기간에 걸쳐 기획한 원로작가들에 대한 회고전 시리즈가 끝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고작가에 대한 재조명의 계획은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현역작가보다는 오히려 작고한 작가의 삶과 예술을 통해 우리는 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작고작가는 일정한 미술사적 등거리가 생길 때 보다 객관적인 기술과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는 매우 시급한 사안이다. 반대로 비록 원로이긴 하지만 현역작가는 미술관 정책을 비롯하여 전시기획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정실에 따른 부정적인 요소를 전연 배제할 수 없다. 

 내가 볼 때 원로작가 시리즈는 많은 성과를 낳았지만, 순서가 좀 잘 못 된 것 같아 평소 좀 아쉽다는 생각을 해 왔다. 물론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관을 통해 원로 및 작고작가들에 대한 조명을 꾸준히 해오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1세대 전위작가들에 대한 전시는 좀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국진의 예술과 삶은 비록 그가 70년대 초반 이후에는 해프닝을 그치고 작고할 때까지 회화와 판화에 전념하긴 했지만, 찬찬히 그의 행적을 재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그의 실험적인 도전의 삶이 판화 매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어져왔으며, 이는 강국진 예술의 정체성을 해명하는데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듣자하니 새롭게 보강된 강국진 자료집 출판이 마감단계에 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그의 예술에 대한 재조명의 불이 점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Art in Culture, 2017. 12>


1) 경남도립미술관장 박은주의 인사말 중에서, [역사의 빛 : 회화의 장벽을 넘어서-강국진전]도록.
2) 학술세미나 <실험미술가 강국진의 삶과 에술>, 경남도립미술관 지하 다목적홀, 2007. 6. 8(금) 오후 2시-5시.
   발제자 명단과 발표논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이성석(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강국진의 삶을 중심으로 한 예술 개관 [역사의 빛 : 회화의 장벽을 넘어서-강국진전]」
   김미경(강남대 교수 /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 KARI 소장), 「강국진 : 언더그라운드 예술의 힘」
   윤진섭(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 호남대 교수),「강국진의 오브제와 해프닝의 비평적 의의」
   필자 주 : 발표자의 직함은 당시 논문집(도록)에 기재된 것을 그대로 적었음.
3) 추모의 글을 쓴 필자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황양자(미망인), 강국안(동생), 이성부(시인, 작고), 김한(화가, 작고), 이유경(시인) 김차섭(작가), 박양구(한성대 교수), 양병율(초등학교 동창, 교사), 숨결새벌(작가), 한영섭(작가), 정강자(작가), 류민자(작가), 이인하(작가), 최은규(작가),김선(작가, 작고), 이두섭(작가), (이상 도록 수록 순(順))
4) “작가 없는 작품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작품과 작가는 매우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을 수 있으며, 그 작가 연구 역시 일정 부분 작품 연구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각주 부분)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관점도 있다. 훌륭한 작가가 언제나 좋은 작품을 남기는 것도 아니며, 예술적 천재가 훌륭한 인품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김백균, 「인물미술사 기술(記述)의 가능성과 범위」, <인물미술사학> 제1호, 인물미술사학회, 2005
5) 강국진과 관련된 글은 주로 해프닝이나 입체, 설치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1967년 이후의 전위미술 내지는 실험미술을 다룬 나의 글 속에서 그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있어서 강국진은 독자적으로 다루어졌다기보다는 단체의 일원이나 미술운동의 측면에서 거론되었다. 강국진과 관련된 나의 가장 최근 글로는「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역사와 비평」(미술사학연구회 주최 <2017년 “특별 심포지엄 : 동아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의 역사와 비평(The History and Issues in East Asian Avant-Garde)>을 참고할 것. 
   강국진의 1960년대-70년대 실험미술을 다룬 나의 글로는 「강국진의 오브제와 해프닝의 비평적 의의」(각주 2 참조)가 있으며, 회화에 관한 것으로는 「강국진 회화의 뿌리에 대하여」(미술평단 2007년 여름호)가 있다.
6) 이 구술채록집은 최근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아카이브 보고서-<퍼포먼스 아트- 해프닝과 이벤트 : 1960-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이란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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