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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수행을 통해 도달한 촉각의 세계

윤진섭

반복과 수행을 통해 도달한 촉각의 세계   

                                           윤진섭(미술평론가)
Ⅰ,
 이미 한물 간 이야기이긴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엄격히 구분돼 온 장르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예술의 개념이 모호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 인 것 같다. 이른바 모더니즘 미술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인 절대적인 미적 가치에 대한 신봉과 장르 간의 뚜렷한 경계가 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급속한 해체의 징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비평적 태도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미술작품을 평가하는데 필요한 엄격한 비평적 기준(criteria)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상황에서는 더 이상이 적용이 어렵다는 관측에 기인한다. 그러한 경우, 한 때 문화의 우세종(優勢種)으로 간주되었던 미술사조와 양식은 현저히 다른 문화적 패러다임 아래서는 흔히 철지난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중 하나인 다원주의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현재 차계남이 추구하는 단색화(Dansaekhwa) 경향의 작업은 이른바 모더니즘 미학을 떠받들고 있는 과거 국제양식으로서의 교조적 지배 언술 구조들, 가령 미니멀리즘과 같은 거대 담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다. 그것을 가리켜 한낱 지역주의의 부상이라고 치부한다면 세계 지성의 보편적 담론을 부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오늘날 세계 미술의 한 흐름으로 새롭게 평가되고 있는 한국의 단색화는 세상이 공평하고도 보편적인 문화의 피륙으로 짜여 있으며, 나아가 그것은 세계미술사의 정당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져야 함을 확인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Ⅱ.
 지난 30여 년간 차계남은 검정색에 대한 탐구로 일관해 왔다. 198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시립예술대학원에 진학, 그곳에서 일본의 전통 형염기법을 연구한 그는 사이잘 삼(麻)이라는 재료를 접하면서 독자적인 섬유예술의 세계를 가꿔 나갔다. 그는 사이잘 삼으로 만든 실을 검정색으로 염색한 후, 이를 본드와 섞어 종이처럼 납작한 판으로 떠내는 힘겨운 작업을 지난 30여 년간에 걸쳐 묵묵히 수행해 왔다. 
 1990년대 차계남이 제작한 일련의 검정색 섬유작업은 형태면에서 볼 때 미국의 미니멀리즘 조각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그의 <무제> 연작은 크기도 크기려니와 작품이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에 있어서 로버트 모리스의 작품 배열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이클 프리드가 사물의 즉물성(literalness)에 주목하여 ‘Literal Art’라고 불렀던, 곧 작품을 둘러싼 환경을 매우 중시한 것이었다. 따라서 관객은 검정색으로 된 사각 입방체의 동일한 단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쌓이거나 놓인 작품의 주변을 걸어다니며 작품이 주는 압도적인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검정 일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사각 입방체들은 규칙적으로 배열된 가운데 묵시적인 느낌을 풍겼는데 관객들은 그로부터 죽음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입는 의상조차 검정색을 고집하는 차계남은 유독 검정색으로 발언하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그의 취향일수도 있고 작품을 통해 세계와 접하고자 하는 일종의 화두일 수도 있다. 
 조형예술가에게 있어서 색은 형태(形態)와 똑같이 중요한 요소이다. 색과 형태, 그리고 작품이 놓이는 공간은 따라서 차계남과 같은 미니멀한 세계를 지향하는 작가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내용은 형식에 수반되며, 오직 형식을 통해서만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다. 

Ⅲ.
 차계남에게 있어서 커다란 분기점이 된 해는 2009년이었다. 이 시기에 그는 비로소 한지를 만나게 된다. 한지와 먹에 대한 차계남의 관심은 서예와 사군자를 배우면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곧 수행(修行)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형식보다는 내용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차계남은 화선지에 먹으로 반야심경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쌓인 수많은 종이들은 현재 보는 것과 같은 재료의 바탕이 되었다. 그는 붓글씨로 쓴 종이를 1센티 넓이로 자른 뒤, 이를 꼬아서 가는 실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가는 실들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접착, 하나의 판면을 형성했다. 그런 기법은 섬유예술에서 흔히 사용하는 날줄과 씨줄의 크로스 방식을 지양(止揚)하는 행위였으며, 동시에 섬유예술로부터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2014년, 대구미술관, 봉산문화회관, 동원화랑 등 세 곳에서 동시에 열린 차계남의 신작전은 사이잘 삼을 재료로 한 과거의 미니멀리즘적 경향에서 단색화로 넘어가는 분기점이었다. 이 전시를 통해 차계남은 전시장을 가득 채운 대작들을 통해 화선지를 꼬아 만든 실을 붙이는 반복적인 행위에서 오는 수행성과 촉각을 통한 물질성의 현시, 반야심경이 의미하는 동양적 정신성의 발현 등 단색화의 특징을 보이는 작품들을 공개했다. 그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의식의 일대 전환이었으며, 미래의 작업을 예고하는 일종의 드라마이기도 했다.

Ⅳ.
 대구보건대학교 미술관에서 갖게 될 이번 개인전은 차계남에게 있어서 또 한 번의 변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흰색에서 엷은 회색, 엷은 검정, 진한 검정 등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작품의 색깔은 종국에는 먹을 연상시키는 검정색으로 수렴된다. 가로 길이가 7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의 대작들로 이루어진 그의 평면 작품들은 물론이려니와 온통 검정색으로 된 압도적인 크기의 입체작품들은 숭고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멀리서 보면 회색으로 보이는 무채색 작품들은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흰색과 검정색 종이 실의 무수한 결합임을 알 수 있다. 어느 작품은 마치 한국의 전통 격자창처럼 흰색 실과 검정색 실의 교차로 이루어져 있어 전통적 문화형식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근작에 이르러 나타난 특징적인 양상은 똑같이 화선지를 꽈서 만든 실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과거 2천 년대에 시도한 산수풍경이 사라지면서 완전한 순수 추상으로 전환한 점이다. 근작에서는 폭포를 비롯하여 산수, 운무(雲霧) 등 동양화에서 흔히 보는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순수한 조형의 세계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폭포나 산수, 운무 등 작품 속에 담긴 이미지가 연상시키는 내용주의에서 점, 선, 면을 기본으로 하는 형식주의로의 전환은 얼핏 보기에 과거 30여 년간 지향해 온 사이잘 삼의 시대를 연상시키나, 사실은 반야심경으로 대변되는 선(禪)의 세계로의 지향을 의미한다. 알다시피, 차계남의 작업은 화선지를 잘라 실을 만들고 이를 반복해서 붙이는 인고의 과정으로 점철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고된 노동의 산물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선 정신의 승화, 곧 ‘몸성(Momsung)’의 흭득이다. 차계남은 마치 선(禪)을 수행하듯이, 실을 꼬고 이를 판에 붙이는 힘겨운 노동을 반복함으로써, 육체적 고통을 넘어서야만 획득할 수 있는 정신적 경지를 일종의 구도적 자세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차계남을 섬유예술가라든지 공예가로 부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섬유예술이라는 장르의 개념을 초월하여 회화와 조각, 그리고 설치미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6년여에 이르는 모색 끝에 당도한 2014년의 신작전에 이어 2년 만에 갖게 된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단색화 작가로서 차계남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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