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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우르는 묵시적 분위기

윤진섭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우르는 묵시적 분위기

                                   윤진섭(미술평론가)
                              
 1980년대 초반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이진우는 에꼴드 보자르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현재까지 그곳에 머물며 작업을 하고 있다. 30여 년의 긴 세월을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한 그는 최근 들어 비로소 전업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하여 르 몽드와 같은 해외의 권위있는 일간지들과 가제트를 비롯한 프랑스의 미술전문지들이 드디어 이진우의 단색화 작업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유럽 미술의 본고장인 파리에서 이러한 명성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의 무명작가들이 흔히 겪는 물질적 고통과 신산(辛酸)한 삶을 극복하고 이진우는 마침내 작가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그가 누리기 시작한 작가로서의 명성과 성공은 애초부터 보장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인간 승리와도 같은 것이다. 이진우의 손을 보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작업에서 얻은 수많은 상처로 얼룩져 있다. 손톱부터 마디, 손등과 양팔에 이르기까지 강도 높은 노동이 가져다 준 상처들은 그의 단색화 작품이 다름 아닌 몸의 투사(投射)의 결과임을 말해준다. 그것은 이진우가 즐겨 다루는 한지와 숯, 그리고 쇠솔 등의 재료와 도구를 통해 온몸의 힘이 실린 고된 작업의 결과인 것이다. 파리에 있는 이진우의 허름한 작업실은 시커먼 숯가루가 켜켜이 쌓여있다. 그 광경을 접한 사람은 누구나 거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가의 열정과 끈기,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투혼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진우는 손과 팔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과격한 노동을 해야만 하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업과정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이진우가 다루는 재료는 한지와 숯이다. 그는 숯을 잘게 부숴 아크릴 바인더 용액과 섞은 뒤, 이를 린넨 천위에 바르는 것으로 기나긴 작업의 첫 과정을 시작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숯을 거칠게 부순 다음 구멍의 크기가 각기 다른 체로 걸러내는 작업을 병행한다. 그는 숯 용액이 부어진 천위에 숯가루를 펴놓고 그 위에 한지를 덮은 다음, 긴 막대 형태의 쇠솔로 온몸의 힘을 다해 두드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작업이 완료되면 그 위에 다시 한지를 덮고 숯가루를 펴놓은 다음 두드리는 과정이 20여 회 정도 반복된다. 
 이진우는 쇠솔로 한지를 두드리는 이 작업이 육체적으로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차라리 삶에 대해 겸허한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땀으로 얼룩진 신체가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하여 힘이 고갈될 지경에 이르면 몸이 생각난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이는 이동엽이나 최병소 등 한국의 대표적인 단색화(Dansaekhwa) 작가들의 발언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단색화의 특징 중 하나인 수행성의 개념이다. 한국의 단색화는 고유의 정신성, 촉각성과 함께 수행성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촉각성은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화면 위에 발현되며 거기에 고유의 정신성이 스며든다. 
 이진우의 단색화에서 한국 단색화의 일반적인 특징이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가 작업에 임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는 우직할 정도로 숯이 놓인 한지를 끊임없이 쇠솔로 두드리는 강도 높은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데, 작업이 끝나고 나타나는 결과를 보면 마치 공동묘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검거나 회색, 혹은 푸른 기미가 감도는 한지의 표면은 그 안에 축적된 우툴두툴하며 크고 작은 숯덩어리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물질적 효과로 인해 무채색으로 덮여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거나 회색, 혹은 푸른 기미가 감도는 작품의 두꺼운 층은 삶과 죽음을 연상시키리만치 묵상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 특유의 아우라가 감도는 장엄한 분위기가 이진우 단색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작업에 기울이는 이진우의 고행은 30여년 전에 한지와의 만남을 통해 비롯되었다. 그와 함께 추사 김정희에 대한 연구와 서예 또한 이진우의 작업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이다. 그의 작업은 머리로 하는 지적 산물이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몸의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단색화 작품에서는 몸의 느낌(몸성)이 물씬 풍겨 나온다. 유학시절, 이탈리아의 스트롬볼리 섬에서 목격한 화산 폭발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은 후, 그때 받은 충격이 훗날 시커먼 숯가루로 전이되면서 비롯된 이진우의 단색화 작업은 이제 국제 화단의 시선을 끌면서 그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받기에 이른 것이다.    
  
  
작품설명
22-99x139
이 작품은 맨 위에 덮힌 한지의 자연스러운 물성이 전체적으로 드러나 있어 전면이 검정색을 띠거나 푸른 기미를 지닌 이진우의 다른 작품들과 차별된다. 중간 부분에 검정색의 크고 작은 숯 알갱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원형을 이룬 모습도 이채롭다.

4-140x240
이진우 작품의 전반적인 경향은 중첩된 숯가루로 인해 대개 아래 부분이 두껍게 올라오는 것이 특징이나, 이 작품은 유독 화면 전체가 고르게 칠해진 청색 안료로 인해 푸른색의 기미를 띤 것이 특이하다. 표면이 오톨도톨하여 단색화의 특징인 촉각성이 두드러진다. 

2-201x280
이진우의 검정색 계열의 단색화 작품들 가운데 전형적인 형태의 것이다. 마치 절벽이나 들판 너머로 보이는 하늘처럼 흑과 백의 극명한 대비가 특징인 작품이다. 커다란 화면은 장엄하고 숭고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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