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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열풍, 원로들의 반란

윤진섭

 단색화 열풍, 원로들의 반란 

                           윤진섭(미술평론가)

Ⅰ. 2014년 한해의 화두는 단색화(Dansaekhwa)였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의 단색화전]이 열린 이래 단색화는 서울의 화랑가에 심심치 않게 모습을 드러냈다. 단색화 열품의 불을 댕긴 주체는 국제갤러리였다. 2013년 프리즈 아트페어 마스터스에 국제갤러리가 [단색화의 예술(The Art of Dansaekhwa)]이란 타이틀로 정창섭, 정상화, 하종현,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등 한국의 단색화 1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출품하여 호평을 받은 일이 계기가 되었다. 국제갤러리의 해외 아트페어에서의 성공은 언론을 통해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는 연초부터 단색화의 열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갤러리현대의 [정상화전], 대구 우손갤러리의 하종현전 등이 잇달아 열렸다.  국내의 단색화 열풍은 해외로도 이어져 뉴욕소재의 알렉산더 그레이 어소시에이츠 갤러리가 [Dansaekhwa:Overcoming the Modern:Korean Monochrome Movement)](2014.2.19-3.29)를 열었으며, 미국의 미술사학자인 조앤기에 의해 로스앤젤리스 소재의 블럼 앤 포 갤러리에서 [모든 측면에서 : 추상 속의 단색화(From all Sides:Tansaekhwa on Abstraction)](9.13-11.8)전이 기획되었다. 또한 학고재갤러리 상하이 분관에서 단색화전이 열렸다. 
 2014년 한해 동안 지속된 단색화 열풍은 국내외의 옥션을 통해 가속화되었고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 더욱 부추겼다. 단색화가 모처럼 특수를 맞아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한때의 거품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각광을 받은 단색화 작가들이 박서보, 윤형근, 이우환, 정상화, 하종현, 정창섭 등 일부 단색화 1세대 작가들에 치우친 것은 단색화의 열풍이 거품일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주최의 [한국의 단색화전] 초대작가 수가 1세대와 2세대를 합쳐 30여 명에 달하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작가들까지 가산하면 상당수의 단색화 작가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작가발굴이란 화랑의 기능에 역행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학술적, 비평적 연구가 따르지 않는 단색화 열풍은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건축물과 같아서 그 열기가 언제 다시 사그라들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Ⅱ. 올해의 미술계를 특징짓는 양상 중 하나는 원로들의 왕성한 활동이다. 단색화 1세대 작가들을 비롯하여 이승택, 김구림, 하종현, 이건용, 심문섭의 전시가 돋보였다. 사실 한편으로 볼 때 70-80대의 원로 작가들이 화단을 주도해 나가는 현상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에 대한 원로들의 끊임없는 열정과 용기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는 점에서 상찬해 맞이하지 않을 일이다. 1970년대 초중반 <A.G> 그룹의 멤버로 화단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들은 전위적 활동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사를 수놓은 작가들이다. 주지하듯이 <A.G>그룹은 한국 현대미술의 첨병으로서 회원들 전원이 중도에 탈락하지 않고 나름 예술의 일가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연령이 어느덧 70-80대에 이른 <A.G> 작가들은 작고 작가를 제외한 전원이 지금도 현역으로 화단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이승택은 8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부쩍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최근 몇 년간에 걸쳐 보여준 그의 활동은 2012년에 열린 성곡미술관 주최의 회고전에 집약적으로 나타난 바 있다. 1950년대 후반이후 약 50년에 걸친 그의 예술 역정을 시기별로 요약한 이 전시는 전위작가 이승택의 전모를 파악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른바 ‘반(反)예술’의 태도로 상징되는 그의 독자적인 예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진가를 드러냈다. 특히 그는 최근 몇 년간에 걸쳐 해외에서 인정을 받았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플래쉬 아트(Flash Art)에 그와의 인터뷰 기사를 싣는가 하면 ‘Art and Asia Pacific’지는 그의 작품을 표지로 삼고 특집을 꾸몄다. 또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등 시간이 갈수록 그에 대한 해외미술의 평가는 높아가고 있다. 갤러리현대의 [이승택전 ‘거꾸로’전](10.7-11.9)은 평생을 개념의 반전과 비(非)물질이란 화두를 위해 살아온 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전시였다. 설치, 영상, 조각, 회화, 퍼포먼스 등 매체에 구애받지 않고 전방위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승택의 작업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김구림은 미술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자수성가형의 작가이다. <A.G> 그룹의 중심멤버였던 그는 이승택과 함께 전위 정신으로 평생을 일관하고 있다.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다닌다. ‘최초의 메일아트’, ‘최초의 실험영화’, ‘최초의 대지예술’ 등 주로 미술활동을 통해 쌓은 그의 업적은 그의 작업 성격을 재는 척도다. 작품 활동의 초기에 형성된 전위작가로서 김구림의 인상은 80세를 바라보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며, 현재의 작업을 특징짓는다. 전시는 두 곳에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열렸는데, 제1부(‘그는 아방가르드다’)는 천안 아리리오갤러리(7.29-10.5)에서, 제2부(‘진한 장미’)는 서울 아라리오갤러리(7.17-8. 24)에서 진행되었다. 살곶이다리 부근 한강 둑의 잔디를 불태운 대지예술 작품 <현상에서 흔적으로>(1970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듯이, 김구림은 사물의 존재와 사건, 시간, 장소 등 개념미술적 경향의 작품에 치중해 왔고, 그 작품들이 제1부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2부는 에로틱 아트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주었다. 책을 매체로 꼴라주 기법을 동원한 그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작가의 우수한 창의력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살펴볼 수 있었다. 
 한편, 70년대에 <S.T미술학회>를 창설하고 국내의 대표적인 ‘이벤트’ 작가로 명성을 날린 이건용의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달팽이 걸음-이건용전])은 평생을 전위작가로 살아온 작가에게 바치는 오마주적 전시였다. 이건용은 그 이름에 걸맞게 오로지 전위와 실험으로 가득찬 작가적 삶을 살고 있다. 회화는 물론,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 등 특정한 매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미술의 실험을 지속하고 있는 그는 ‘Event Logical’이라는 특유의 퍼포먼스 명칭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때 논리적인 작업에 치중한 바 있다. 그는 언어의 문제에 깊이 빠져 특정한 단어나 문장을 통해 대사회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는 이처럼 넒은 작업의 스펙트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주었다. 특히 70년대 활동에 초점을 맞춘 아카이브 전시는 당시의 <S.T> 그룹 활동을 실증적 자료를 통해 보여준 것으로, 최근 들어 일고 있는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어서 관객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갤러리EM의 [권영우전]은 작년에 작고한 권영우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전시였다. 한국 단색화의 대표작가이기도 한 그는 일찍이 화선지의 조형 가능성에 주목, 화선지를 다양하게 변용한 작품에 빠져들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화선지를 손가락을 사용하여 입체적으로 동글게 돌출시킨 집합적인 작품이다. 권영우는 한지 물성을 극대화시켜 독창적인 조형의 세계를 일군 작가로 최근 들어서 집중적으로 작품세계가 조명되고 있는 작가이다. 
 심문섭은 조각이 본령이지만 최근에는 단색 계열의 회화와 드로잉도 시도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심문섭의 작품은 자연을 연상시키는 심플한 것이 특징인데, 작가는 나무라든지 돌, 철과 같은 전통적인 조각 재료에 최소한의 신체적 개입을 통해 발언을 한다. 이는 ‘자연을 다치지 말라’는 한국의 전통적인 자연관에 뿌리를 둔 것으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서양의 관점과는 다른 것이다. 70년대 초반, 심문섭이 파리 비엔날레 참가작으로 제작한 종이와 돌, 철판과 시멘트를 사용한 작업에 기반을 두고 있는 그의 제작태도는 그 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일관되고 있는데, 갤러리현대(9.3-9. 27)의 이번 초대전 역시 자연에 대한 최소한 개입을 특징으로 한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다.         우손갤러리가 주최한 [하종현초대전](5. 29-7. 27)은 단색화의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인 하종현의 단색화 작품세계를 조명한 전시였다. 갈색, 회색, 짙은 감색 등 걸쭉하게 갠 단색의 유성물감을 마포 캔버스의 뒷면에서 밀어 넣은 뒤 앞면에서 다양한 행위를 가하는 특유의 배압법으로 유명한 그는 최근 들어 부쩍 국내외 화단의 조명을 받고 있다. 투박한 시골의 토담 벽을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은 화면의 구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단색화 작가들과는 차별을 이룬다. 루치오 폰타나가 캔버스를 찢어 평면의 뒷면을 보여준 것처럼 그는 화면의 뒷면에 주목, 캔버스의 구조에 대한 문제를 개념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고(故) 박이소는 47세란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여 그를 아끼던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오랜 기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대안공간을 운영하기도 한 그는 미술의 제도를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면서 온몸을 던져 투쟁한 작가였다. 그의 날 것과도 같은 생경한 작품들은 소위 아름다운 것에 길들여진, 따라서 상거래 대상으로서의 작품들에 던지는 날선 도전장과도 같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한 어떤 것](4. 19-6. 1)은 말 그대로 작품 자체가 심심하여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전시다. 전시장 한 구석에서 빙빙 돌아가는 커다란 선풍기처럼 그의 작품 중 대부분은 지나치게 일상적이어서 맥락을 모르는 관객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그의 드로잉이나 회화, 입체작품들 속에서 모국에 대한 진한 애정이 배어있다. 거대 권력인 미국, 그것도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에 오랫동안 살면서 체득한 마이너리티로서의 생활감정이 그 역의 제시로서의 작품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심도 있는 기획전으로 비디오를 비롯한 미디어 아트의 본산으로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전은 1984년에 백남준이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비롯하여 뉴욕의 WNET 방송국 등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생방송으로 진행된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방송 당시 전위적 퍼포먼스 음악가인 로리 앤더슨을 비롯하여 작업의 동반자인 첼리스트 샬럿 무어맨, 대중가수인 오잉고 보잉고 등이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다. 백남준을 비롯하여 송상희, 이부록, 윌리엄 켄트리지 등 20여 명의 국내외 작가가 초대되었다. 
 [서독으로 간 에트랑제, 이응노/1959 독일순회전](이응노미술관 6. 14-9.21)은 1959년에 프랑크푸르트, 쾰른, 본 등 독일의 세 도시에서 열린 고암의 순회전 출품 작품과 자료, 현지의 평가와 반응 등을 집중 조명한 아카이브전이다. 고암은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이라고 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작품과 자료를 남겼다. 이번 전시는 고암의 생애와 관련, 1950, 60년대에 서구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어떤 족적을 남겼는가 하는 점을 다양한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Ⅲ. 올해는 미술계의 큰 별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다. 평소 하모니즘을 주장한 고(故) 김흥수를 비롯하여 김포, 손동진, 이규선 등 원로 화가들이 별세했고 황토색 한국의 산하를 즐겨 그린 이상국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여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흥수는 한 화면에 추상화와 구상화를 병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으며, 김포는 뉴욕에 거주하면서 추상, 구상을 가리지 않고 실험을 한 작가로 많은 작품을 조선대학교 미술관에 기증하기도 하였다. 
 손동진은 최근 몇 년간 와병 중이었는데 오랫동안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면서 녹색과 청색, 황토색을 기조로 한 추상화의 세계를 개척하였다. 이규선은 동양화의 원로 작가로서 60년대 이후 수묵과 담채기법을 기조로 다양한 추상의 세계를 개척해 왔다. 이처럼 화단에 훌륭한 족적을 남긴 원로 작가들의 별세는 미술계의 입장에서 볼 때 커다란 손실임에 분명해 보인다. 
                                                  <아트 인 컬처 201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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