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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힘

윤진섭

문화의 힘

윤진섭 | 미술평론가

일찍이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갈파한 바 있다.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된 노 정객의 이 발언이 오늘날 새삼 가슴에 다가오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이 분이 세상을 떠난 지 70여 년이 다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이후 수많은 정치지도자들이 나라살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만큼 선명하게 한 나라의 문화적 비전을 보여준 인사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수립 이후 10여 명에 달하는 대통령이 자리를 바꿔 앉았지만, 대부분 비극적으로 끝난 사태의 이면에는 진정으로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컨대 문화융성을 3대 국정기조로 내세운 박근혜 정권은 구호와는 반대로 문화를 혼란에 빠트리는 우를 범했다. ‘창조경제’는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개념조차 모호한 채 나라 전체가 들썩이는 사이에 끝나 버렸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 조건상 국방이 최우선될 수밖에 없는 나라다. 북에는 비록 같은 민족이지만 이념상 극을 이루는 정권이 있고, 주변에는 역사적으로 침략의 트라우마를 안긴 중국과 일본이 포진해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의 한 쪽 끝에 인접해 있으며, 미국은 오랜 우방을 표방하며, 전작권의 경우에서 보듯이 우리의 안보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는 상황이다.
 
경제는 또 어떤가? 어려운 각종 지표와 복잡한 수치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내 경험에 비춰봐도 장족의 발전을 했다. 나의 세대는 유년기에 겪은 보리고개를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시골 농촌에서 비교적 풍족하게 자란 나와 달리, 가난한 내 친구들은 점심시간에 정부에서 주는 강냉이 죽을 타 먹기 위해 빈 도시락 통을 책보에 싸 등교를 했다. 한 번은 한 친구가 장기결석을 해서 찾아가 보니, 오오 이런, 집이 거짓말 안 보태고 책에서 본 선사시대의 오두막과 비슷했다. 친구는 방인지 돼지울인지 구분조차 안 되는 컴컴한 방에서 신열로 끙끙 앓고 있었다. 초등학교 이학년 때의 어느 날 겨울로 기억된다. 하루는 갑수라는 친구의 어머니가 수업시간에 학교를 방문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 가까운 때였다. 벌겋게 달아오른 석탄 난로 위에는 보리차가 담긴 커다란 주전자가 흰 김을 내뿜고 있었다. 그 때, 교실 뒤편에 서 있던 갑수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에게 물 한 잔을 청하더니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아주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아마 갑수 어머니는 아침도 굶은 게 분명했으리라. 

아주 빨리 달리는 회상의 열차를 잠시 뒤로 돌려 작년의 경험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나는 다카에서 열리는 방글라데쉬 비엔날레의 심사위원 자격으로 그곳 문화부장관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마침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부탄에서 온 작가들이 동석을 했다. 고유의 민속의상을 입은 그들의 표정은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행복이란 그렇게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부탄에는 작가들이 1백여 명에 지나지 않으며, 미술인들을 위한 그 어떤 협회도 없고 변변한 화랑 하나도 없다고 한다. 사정이 그러니 도무지 경쟁이 있을 리 없다. 

새 정부의 출범을 맞이하여 문화정책에 대한 제언을 하는 이 자리에 이처럼 장황하게 옛 추억을 되새기는 것으로 아까운 지면을 써버린 나의 의도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복잡한 수치를 들먹이며 제언을 했건만, 나아지는 징후가 전혀 없었다는 일말의 절망감에 기인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이 7조에 가까운 놀라운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역대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은 일관된 기조가 없이 갈팡질팡해 온 것이 사실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역대 정권이 내세운 문화정책의 기조는 작금에 벌어진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보듯이 한낱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 행태는 이전에도 있었고, 그 이전에도 있었다. 다만 정도와 질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사정이 그러니 부디 새롭게 출범한 현 정부는 이 기본 마인드를 잊지 말기 바란다.

항간에서 이야기하듯 ‘문화와 예술이 발전한다.’는 말에 나는 심한 거부감과 함께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과연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신라시대의 문화에 비해 현재 우리의 문화가 발전했다는 것인가? 고려시대의 미술에 비춰볼 때 베니스비엔날레에 나가 특별상을 받은 우리의 미술이 발전을 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타당한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 

나는 우리의 사정에 비춰보고서야 내가 만난 부탄 작가들의 얼굴에 감돌던 행복한 미소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문화와 예술에 관한 한, 최소한 ‘발전’과 ‘차이’의 개념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관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부건 민간이건 문화예술정책을 발전의 틀 안에서 입안(立案), 전개해 나가는 한, 필경은 빗나가게 돼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공할 성과위주의 경쟁 체제에 내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그처럼 인간을 성과주의로 치닫게 하는 이기심과 공명심이 자리잡고 있다

부탄 작가들의 얼굴에 감돌던 행복한 미소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을 되새겨 본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통해 선생이 설파하고자 한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이었다. 문화의 힘을 키워 나 자신은 물론 남을 행복하게 해주자는 이 말이야말로 문화의 보편성은 물론 지구촌 전체를 염두에 둔 행복론인 것이다. 정치나 경제의 힘이 아니라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오늘의 정치지도자들이 마음속에 새겨야 할 금언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경제나 정치에는 발전이 있을지 모르지만, 문화와 예술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완전히 잘못 쓰여지고 있지만, 관행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말이다. 문화의 발전, 예술의 발전이란 얼마나 근거가 없는 말인가? 그렇다면 입체파는 세잔의 후기인상주의가 발전해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브라크가 세잔의 그림을 연구해서 입체파 그림을 그린 것은, 그 영향을 받아서 입체파를 창출했다는 뜻이지 발전시켰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발전은 ‘보다 나은’ 이란 뜻을 함유하고 있는 단어이다. 한 국어사전은 발전을 가리켜 “더 낫고 좋은 상태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브라크의 그림은 세잔보다 “더 낫거나 좋은 상태 혹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갔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서구의 역사주의 내지는 계몽주의에 뿌리를 둔 진보사관의 관점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브라크의 그림이 세잔보다 더 높은 단계이거나 더 좋은 것일까? 이런 말은 가능할 것이다. 어떤 브라크의 그림은 세잔의 어떤 그림보다 더 좋을 수 있다고.

인류가 원근법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선사시대 동굴벽화보다 더 진보하거나 발전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인간의 지각이나 인지의 측면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적 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결코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유행하는 어떤 미술사조의 그림들은 선사시대 동굴벽화나 돈황벽화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것일까?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의문을 던졌듯, 과연 문화와 예술에 우열이 있는 것일까?
  
논지가 다소 비약한 듯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문화예술을 이처럼 황폐화시킨 주범 가운데 하나는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글로벌 상업주의이다. 그리고 우리를 더욱 심란하게 만드는 것은 그처럼 가공할 파도에 맞서 견제구를 던질 수 있는 주체들이 희박하다는 사실이다. 전위부대(Avant-garde)는 있지만, 그들은 상업주의에 침윤된 사이비 전위주의자들일 뿐, 진정한 전사들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문화와 예술의 힘은 그처럼 방만하게 국가 전체를 내몰고 있는 경쟁체제를 허물 때 서서히 회복의 조짐을 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할 때, 피곤에 지친 국민들의 얼굴에 행복감이 찾아들 것이다. 그것이 나의 희망이다. 

<퍼블릭아트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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