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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의 원형에 대한 현대적 해석

윤진섭

한국 문화의 원형에 대한 현대적 해석


윤진섭 | 미술평론가

남희조는 전방위 작가이다. 자신의 주변에서 구한 사물(objet)을 비롯하여 회화에서부터 조각, 도자, 옻칠공예,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전 분야를 넘나들며 작업을 펼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있어서 장르의 구분이란 편의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뿐, 그 어떤 것도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작업을 펼쳐나가는 그녀의 태도는 마치 예술(art)의 고대 그리스적 개념인 기술(ars)에 더욱 가깝다. 

아득히 먼 옛날, 고대 그리스에서 예술(기술, 테크네)은 ‘어떤 법식(rule)’을 좇아 사물을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에서 배를 만드는 조선술이라든지 옷감을 짜는 직조술은 바로 이 예술(ars)에 속했던 것이다. 주지하듯이, 예술이 오늘날과 같은 파인 아츠(fine art)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에 들어서이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현대미술의 양상은 오히려 고대의 예술적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 추동한 근본적인 요인은 예술 속에 일상성이 도입되면서부터 이다. 그것은 비단 미술뿐만이 아니라 음악이나 무용 분야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가령, 존 케이지가 관객의 기침소리를 자신의 음악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든지, 머스 커닝햄이 평상복을 입고 춤을 추거나 동전을 던져 스텝을 정하는 따위의 안무방식은 바로 일상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미술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20세기 초반의 다다(Dada) 운동을 들 수 있다. 다다의 작가들 중에서도 특히 쿠르트 쉬비터스의 메르츠 바우(Merz Bau)가 유명하거니와, 그는 수많은 일상적 오브제들을 사용하여 증식돼 가는 집을 구축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기반의 문명을 중심으로 한 21세기 미술의 한 복판에서 왜 과거의 대표적인 아날로그 방식인 일상적 오브제들이 수그러들지 않고 예술의 중요한 방법론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여기에는 어떤 중요한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거니와, 남희조의 작업 역시 이러한 미술 현상과 그 궤적을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녀는 현재 한국과 뉴욕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뇌리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의식은 유년시절에 시골에서 본 갖가지 일상적 오브제들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오늘날 그녀가 만들어 내는 작품들은 대부분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산물들과 관련이 있으며, 그것들은 또한 농경사회의 부산물인 농기구를 비롯한 한국의 독자적인 문화적 기호와 상징들의 변용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북경의 금일 미술관(Today’s Art Museum)에서 열리는 남희조의 [남희조-현대적 샤만]전은 따라서 비중이 매우, 큰 그녀로서는 회심의 전시회가 될 전망이다. 이번 전시에는 회화를 비롯하여 오브제, 설치 등 다양한 방법론이 동원되고 있거니와, 이번 전시를 통해 남희조는 자신의 전 역량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가 특히 중요한 것은 서울과 뉴욕을 비롯하여 바르셀로나, 플로렌스, 도쿄, 이스탄불, 타이페이, 자카르타 등등 세계의 여러 중요한 미술의 거점 도시에서 그녀의 작품이 전시된 적이 있으나, 아시아 미술의 중심도시로 떠오르고 있는 북경에서는 처음 열린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중국은 일찍이 청나라의 황제인 건륭제가 ‘세계의 중심’으로 자부했을 정도로 대국이다. 이는 현재 미국과 함께 ‘G2’로 일컬어질 정도로 막강한 중국이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사실만 봐도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남희조가 이번 전시를 통해 중국 미술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나아가서는 미래의 교류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볼 때, 금일의 미술관에서 갖게 될 이번 전시는 그녀 자신에 있어서나 한국 미술계를 위해서도 매우 중대하다 할 수 있다. 

남희조의 이번 개인전을 통해 중국의 관람객들은 한국의 우수한 전통 문화가 어떻게 남희조라는 한 작가의 작품을 통해 현대적으로 각색되고 변용되었으며, 한국의 전통과 역사에 뿌리박은 다양한 문화적 상징과 기호들이 그녀의 창작을 통해 어떻게 현재화하고 있는 지 살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현대적 샤만’이라는 타이틀에서 엿볼 수 있듯이, 남희조의 이번 개인전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그녀는 낙태를 비롯하여 상여, 제웅, 용, 북두칠성, 탈, 수저, 부적, 북(길쌈에서 사용하는 도구) 등등과 함께 한국의 전통에 뿌리박은 화려한 오방색을 비롯한 다양한 색감을 여성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해석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전시장의 1층에서 2층으로 연결되는 높고 큰 공간 전체를 이용한 거대한 설치작품 <인드라망>일 것이다. 각양각색의 가는 전선줄들이 사방으로 얽히고 설킨 구조물에 매달린 수 백개의 부적들은 거대한 나무에 화사하게 꽃이 핀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색깔의 부적에는 사람의 얼굴을 비롯하여 호랑이와 같은 짐승, 눈이나 꽃과 같은 상징적인 도안들이 담겨있어 한국의 독특한 부적 문화에 대해 살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자연과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이 마치 오늘날의 디지털 네트워크처럼 사방팔방으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숱한 인연들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비유처럼 읽힌다. 

이 작품을 중심으로 남희조가 보여주게 될 작품들은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한 인간이세상에 태어나 겪게 되는 각종 통과의례와 낙태와 같은, 여성의 삶을 질곡에 잠기게 하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을 통해 가슴 속에 한(恨)으로 형성된 특별한 정서와 관련된다. 죽은 아이를 상징하는 제웅이 담긴 배 두 척은 이승에 살지 못하고 낙태된 아기를 위한 위령제의 의미와 진혼곡이 담긴 슬픈 작품이다. 또한 남희조는 옻칠로 만든 패널작품을 이용하여 <북두칠성>이란 제목의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이는 견우와 직녀라는 한 쌍의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졌으나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이별을 하게 된 슬픈 사연과 관계가 있다. 한국에서는 음력 7월 7일을 가리켜 ‘칠석’이라고 하는데, 이 날 밤에 견우가 직녀가 변한 두 별이 은하수가 만든 오작교를 타고 일 년에 한 번 만나 사랑을 나누다 동녘이 밝으면서 헤어진다는 가슴 아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남희조는 이번 북경 전시에 회화 작품을 다수 출품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200-300호에 해당하는 <인연> 연작은 9점의 캔버스로 이루어진 것으로써 회색, 검정, 흰색 등 무채색 계열의 단색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동아 밧줄 등 일상적 오브제를 부착하기도 한 이 연작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 줄기나 성좌 등 자연물의 소재를 통해 인생의 길에 비유한 작품이다.

유년시절에 고향인 담양에서 겪은 추억 또한 이번 전시 출품작을 위한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 <자생(Breeding)>은 대나무 산지로 유명한 한국 남도의 담양에서 구한 대나무 뿌리를 사용하여 만든 작품이다. 모래 위에 거꾸로 꽂혀 있는 숱한 대나무들은 얼핏 보면 마치 남근(男根)처럼 보이는데, 이는 가부장적인 전통을 지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는 <<이조여인(李朝女人) 잔혹사>>라는 제목의 저서가 있을 정도로 전통 유교사회에서 여성을 폄하하였는데,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볼 때, 남희조의 작품들은 가엾은 삶을 살다 고통 속에서 스러져 간 한국 여성들의 불쌍한 영혼을 위한 진혼곡과도 같다. 한국에서는 지금 일제강점기 때 죄 없이 잡혀가 일본 군인들의 성 노리개가 된 위안부들이 첨예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여성의 문제를 다룬 남희조의 일련의 작품들은 가령 이 가엾은 삶을 산 여성들의 운명의 소산인 한국 여인 특유의 한(恨)을 중심 모티브로 삼고 있다. 

남희조의 작품세계는 폭넓게 보면 자연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문제로 점차 그 폭을 좁혀 왔다. 그러나 아주 고정된 것은 아니고 이 두 축을 왕복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국의 전통문화와 독자적인 삶의 양식(樣式)을 두루 살핀다.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적 상징이 역사성을 바탕으로 표면에 드러나는가 하면, 때로는 서사(敍事)적 양식을 통해 전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희조가 구상적 양식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남희조는 추상적 양식을 주로 원용하되, 상징과 기호의 형태를 빌어 표현하고자 한다. 중국의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에서 한국 문화의 원형(原形)이 어떻게 남희조라는 한 작가의 창작을 통해 변용되고 현대화하고 있는지 그 진수를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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