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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미래적 지평을 위한 하나의 초석 ‘홍익 루트’전의 의미

윤진섭


                                   
 홍익여성화가협회(홍익루트)는 창설 30년의 역사를 지닌 중견 여성 미술인 단체이다. 1982년에 창립하여 현재 약 3백여 명에 이르는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 협회는 1년에 한 차례 정기전을 여는 것을 비롯하여 년 3, 4 회의 정기모임과 세미나를 갖는 등 회원들 간의 친목과 협회의 발전을 위한 다각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홍익여성화가협회와 같은, 여성 작가들에 의한, 그리고 여성작가들을 위한  단체의 필요성과 존재의 당위는 무엇보다도 그간 남성중심주의적으로 운영돼 온 화단의 관행과 제도적 폐해로부터 나온다.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민주화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 이제 여성들도 남성과 대등한 자격과 위치에서 사회생활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였다. 수년 전, 어느 공립미술관이 주최한 국제전의 제목이 ‘이제 딸들은 그만’이었는데, 이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아들과 딸을 가리는 한국 사회의 오랜 관행은 남녀 차별이라는 해묵은 악습을 낳았던 것이다. 

 이처럼 동양사회에 폭넓게 퍼져있는 남녀차별은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유교적 사회질서와 신분제도가 뿌리박혀 있는 동양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는 서양 역시 마찬가지여서 서양의 민주화 과정은 곧 남녀평등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긴 도정(道程)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남녀평등을 위한 그처럼 긴 투쟁의 역사가 우리 화단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그러나 이처럼 큰 주제에 관한 논설은 지면관계상 여기에선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하고 원론적인 문제를 잠시 거론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국제미술계에서 페미니즘의 문제를 학술적으로 본격 제기한 인사로는 린다 노클린(L. Nochlin, 1931-  )을 들 수 있다. 그녀는 페미니즘 미술사의 정전이 된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은 존재하지 않았는가?>(Why Have Been There No Great Women Artists?)라는 논문에서 위대한 여성작가를 미술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여성들이 재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남성 주도의 제도에 의해 여성이 철저히 배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나아가 <보다 공정한 시각을 향하여: 페미니즘이 미술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방법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Toward A Juster Vision: How Feminism Can Change Our Ways Of Looking At Art History)라는 글에서 한 예를 통해 이 문제를 선명히 부각시킨다. 그녀는 만일 파블로 피카소가 '파블리타'(Pablita)라는 이름의 여자로 태어났다면 과연 그렇게 천재적인 예술가로 칭송을 받으며 출세를 할 수 있었을까? 라고 의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브루클린미술관에서 직접 목격한 예를 들고 있다. 거기에 한 소녀가 있었는데, 아이들 수업에 참여한 그 소녀는 자신이 볼 때 분명 피카소처럼 훌륭한 예술적 소질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라면 그녀는 필경 식당에서 접시를 닦거나 여자 판매원이 되는 게 고작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나는 한국 사회도 더하면 더했지 이보다 덜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짐작컨대, 어떤 경우에는 남성보다 더 뛰어난 재능과 감각을 지닌 여성 작가가 꿈도 펴보지 못한 채 스러져갔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화단이 전체 사회의 한 부분이라고 할 때, 이 작은 공동체에서조차 여성작가에 대한 제도적 차별과 배제의 관행이 남성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유지돼 왔으리라 하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매우 다행스럽게도 1990년대 이후, 아니 보다 가깝게는 2000년대 이후, 여성작가의 화단 진출과 입지의 구축, 나아가 국제무대에의 진출은 놀랍도록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자리에서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져 이를 거론하지 않거니와, 아무튼 여성들이 남성작가들의 위치와 비중을 위협하는 자리에 이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린다 노클린은 더 이상 이 문제에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성작가의 입지가 급성장한 것이다. 

 <심상의 재발견>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홍익루트전]의 의미는 바로 이처럼 잔잔하지만 마치 광대한 바다 속의 한 물결처럼, 도도한 여성사(女性史)의 전개에 파도 하나를 더하는 데 있다. 300여 명의 회원들 가운데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참여작가들이 보여주는 독자적인 심상의 세계가 더할 나위없이 소중한 까닭도 바로 이 점에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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