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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와 관념 사이의 지각적 이율배반에 대한 탐구 -최성열의 <트인 곳-생태의 역설-도> 연작의 의미-

윤진섭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자연에 대한 관심은 일찍이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에 대성리 화랑포 강변에서 열린 [대성리전]과, 같은 해에 공주에서 결성된 <야투> 그룹에 의한 일련의 야외설치미술제가 조직되면서 작가들의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인 70년대 중반에 청년작가협회의 회원들이 야외에서 설치작업과 함께 해프닝을 벌인 적이 있었지만, 이들의 활동은 아쉽게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단발성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바깥미술회’(대성리 그룹의 후신)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최성열이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이 일련의 야외미술제에 참여하면서부터 였다. 그는 난지도 공원 정상의 초원 위에 아카시아 나무의 가시를 연상시키는, 크게 확대된 거대한 물체를 군집으로 설치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인 적도 있었다. 이 가시모양의 나무 오브제 작품은 수년 전 회화 중심의 개인전을 통해 화랑 안에서 선보인 적이 있는데, 벽에서 불쑥 솟아난 가시 오브제들은 그 환치가 주는 충격이 강하게 느껴지는 작업이었다.  

 최성열은 야외작업에 열정을 쏟는 한편, 회화 작업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그리고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회화의 모티브는 역시 자연과 관련돼 있다. 그는 폭포를 소재로 오랜 기간 작업을 해 왔고 단색의 평면 위에 펼쳐지는 폭포의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매우 강렬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묽게 갠 다양한 색상의 아크릴 물감을 여러 차례에 걸쳐 캔버스에 뿌린 다음, 그 위에 빨강, 파랑, 녹색 등 단색의 물감을 칠한 뒤 이를 닦아 나가는 과정을 통해 바탕의 수많은 점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을 구사하는 그의 작업은 자연의 생성과정을 닮았다. 이는 마치 숲속의 버섯이 돋아났다가 성장한 뒤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자연의 이법에 대한 하나의 유비처럼 읽힌다. 그렇게 함으로써 최성열은 자연의 자연스런 이법을 동양적인 시각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거기에 다시 장대한 물줄기로 쏟아지는 폭포의 이미지가 얹혀진다. 빨강, 파랑, 녹색의 화면 위에서 장쾌하게 쏟아지는 폭포의 하얀 물줄기는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관념적인 허구라는 점에서 사실적인 형태로 묘사된 기존의 폭포 이미지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는 마치 전통 산수화에서 묘사된 폭포가 실제의 폭포에 관한 모방이 아니라 ‘관념화된 폭포’의 성격을 지니듯이,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관념적 이미지로서의 폭포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단색과 관련시켜 볼 때 그는 평면이라는 회화의 존재론적 조건을 용인하면서 그 위에 폭포의 이미지를 그리는 모던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성열은 주변에 폭포의 형성을 암시할 만한 어떤 장치를 마련해 놓지 않음으로써, 그가 묘사한 폭포가 기실은 폭포가 아니라 일련의 붓질들의 중첩에 지나지 않음을 인식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그의 회회가 지닌 매력이 아닌가 한다. 단색의 평면 위에 묘사된 폭포의 이미지는 주변에 바위나 풀, 나무와 같은 사물들이 부재함으로써, 그림 속의 폭포는 실제의 풍경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이미지와 물감이라는 두 개의 요소(이미지는 허구, 물감은 실제)가 맞물리면서 일으키는 환영의 문제를 통해 인간의 오성이 이끄는 지각의 신비한 현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제시하는 하나의 선례가 되고 있다.

 최성열의 <트인 곳-생태의 역설-도> 연작은 의미론적으로는 자연의 생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오랜 기간 ‘물’을 소재로 다루면서 자연의 문제에 대해 천착해 왔다. 이는 또한 그가 오랜 기간 [대성리전]을 비롯한 야외설치미술제에 참가하는 가운데 자연과 벗하게 되면서 자연을 관찰한 결과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그의 자연을 소재로 한 작업들은, 야외설치작업이건 회화건 간에,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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