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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소리의 사이에서 안영일의 반(半)추상 회화의 세계

윤진섭


Ⅰ.                         
  안영일의 <물(Water)> 시리즈에 대해서는 2015년 서울에서 열린 [KIAF전] 출품작을 중심으로 상세히 논한 바 있기에, 여기서는 그 이전에 그린 반(半) 추상적 화풍의 작품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분석의 대상이 되는 작품들은 <새(Birds)> 시리즈를 비롯하여 <사랑(Love)> 시리즈, <캘리포니아> 시리즈, <해변(Beach)> 시리즈, <음악가(Musicians)> 시리즈 등이다. 그러나 이 일련의 반 추상적 계열의 시리즈 작품들과 <물> 시리즈에 앞서 살펴봐야 할 것은 초기 추상화이다. 왜냐하면 1950년대 후반, 앵포르멜 계열에 속하는 초기 추상화에서 이미 안영일 회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나이프 페인팅 기법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안영일의 회고에 의하면 일찍이 중학생 시절부터 나이프를 사용,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가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집안 환경에 기인한 바 크다. 그의 부친 안승각(1908-1995)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태평양 미술학교를 졸업한 화가이다. 일본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그림을 그리는 한편, 청주상고에 미술교사로 부임하여 후진을 양성하였다. 


 유년시절에 아버지가 보던 세잔의 화집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등 조숙했던 안영일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인 1958년 무렵에는 화단에서 앵포르멜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안영일 보다 약간 위 세대에 해당하는 현대미술가협회 회원들은 유럽의 앵포르멜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등의 영향 하에 6. 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겪은 체험을 격정적인 미술의 조형언어로 풀어가고 있었다. 1958년에 미술대학을 졸업한 안영일은 앵포르멜 운동의 주역인 현대미술가협회 회원들 보다는 덕수궁 돌담벽에 캔버스를 걸어놓고 전시를 한 <60년 미협>의 회원들과 동년배이나 그는 이 전시에 참여하지 않았다. 


 안영일의 50년대 후반 작품인 두 점의 앵포르멜 풍 추상화는 페인팅 나이프로 그린 것이다. 두꺼운 유성물감의 마티에르가 특징인 이 작품들은 향로나 제기(祭器)의 형태를 연상시킨다. 푸른 색조과 회색조로 처리한 전체적인 색감과 나이프를 사용하여 물감을 두껍게 바른 기법은 당시 유행한 앵포르멜 화풍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들에 나타나고 있는 스타카토 식으로 똑똑 끊어서 나이프로 칠한 물감의 흔적은 안영일 특유의 스타일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앞에서 이미 중학생 시절부터 나이프의 사용을 익혔다고 밝힌 바 있거니와, 이 나이프 기법이야말로 안영일의 회화를 특징짓는 가장 큰 요소인 것이다. 그는 물감을 화면 위에 뿌리거나 선을 긋는 등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붓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나이프는 시작과 끝이다. 오랜 경험과 숙련으로 인해 그는 나이프의 다양한 기법에 매우 익숙하다. 붓과 달리 나이프는 캔버스 위에 물감의 자취를 매끈하게 남기는데, 이처럼 똑똑 끊어서 바르는 나이프 기법은 <물(Water)> 시리즈에 와서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게 된다. 

Ⅱ.
 앞에서 언급한 앵포르멜 시기의 두 작품은 푸근한 느낌을 준다. 그것들은 당시 대다수의 앵포르멜 작가들이 보여준 것 같은 격정적이거나 거친 느낌과 거리가 있다. 비록 나이프로 두껍게 바른 마티에르가 눈길을 끌긴 하지만, 그것들은 이른바 ‘서정적 추상’에 가깝다. 그것은 필경 안영일의 개성 혹은 기질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남 앞에 잘 나서지 않고 조용한 성품인 그는 전위미술 운동과는 무관하게 담담한 조형언어로 자신의 내면 풍경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때 그가 보여준 서정적인 화풍은 그 후에도 일관되게 나타난 정서상의 기조(基調)가 되고 있음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1958년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 안영일은,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작품을 팔아 창작 생활을 영위할 만큼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1957년, 뉴욕 소재 월드 하우스 화랑의 초대를 받아 당시 한국의 화단 실정으로는 획기적인 수혜를 누린 그는 급기야 10년 뒤 미국에 정착하기에 이른다. 그 시기에 안영일은 서울의 반도화랑에서 그림을 팔아 생활을 했는데, 이 때 한 미국인 컬렉터가 그의 작품에 매료돼 집중적으로 구입을 했다. 스탠리 히텔라(Stanley Hietela)라는 이름의 이 미국인은 그가 서울에서 만난 외교관이었다. 그는 마치 친형처럼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격려를 해 주었다. 그러나 이 좋기만 했던 인연이 훗날 그가 로스앤젤리스에 정착했을 때, 긴 소송에 휘말리게 되는 악재로 작용할 줄 당시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스탠리는 소장하고 있던 안영일의 작품들을 한 화랑을 통해 판매를 했는데, 마침 10년간의 계약을 체결한 안영일의 전속화랑이 그를 고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수년간에 걸친 송사 기간 동안 안영일은 마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 되고 말았다. 분쟁이 풀릴 때까지 작품을 팔 수 없었기 때문에 재정적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은인’이라고 불렀던 스탠리가 소송에 져 그 괴로움은 더욱 배가되어 갔다. 실의에 빠진 안영일은 그림에 대한 의욕도 잃고 허구한 날 바닷가에 나가 고기를 낚는 것이 일과였다. 

 안영일의 <물> 시리즈는 이때 겪은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때 산타모니카의 바닷가에서 작은 보트에 몸을 실은 안영일은 대양을 향해 나아갔는데, 소송 건으로 인해 만사가 귀찮은 상태에서 몰려오는 고기를 잡을 생각도 않고 흔들리는 배에 몸을 맡긴 채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방이 짙은 안개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안개는 너무 짙어서 바로 앞의 손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순간, 죽음이 찾아온 것 같은 공포심에 젖어 광대한 대양에서 점점 ‘무(nothingness)’의 세계로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고뇌에 빠져 무의식 중에 “아아!”하고 탄식을 했다. 
 생사를 오가는 공포를 겪은 끝에 마침내 찾아온 평온, 눈 앞에 전개된 것은마치 진주를 펼쳐놓은 것 같은, 수만 가지의 영롱한 색깔로 빛나는 바다의 모습이었다.  

Ⅲ.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다와 관련된 <물(Water)> 시리즈에 대한 분석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생략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남다르게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안영일에게 있어서 그가 평생의 대부분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풍광과 평생의 취미가 된 음악이 그의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새(Birds)> 시리즈는 새를 소재로 삼아 반(半) 추상화 풍으로 그린 것이다. <Birds, Sunny Afternoon 09>, <Morning Bird 10>, <Morning Bird 10>, <Two White Birds 02> 등 중에서 맨 마지막 작품을 제외하고는 열을 지어 모여있는 새를 소재로 삼았다. 이 <새> 시리즈는 안영일의 반추상화 중에서 대상의 형태가 가장 명확히 드러나 있다. 이 <새> 시리즈는 안영일이 미국에 정착한 초기에 L.A의 재커리 웰러 갤러리의 전속이었을 때, 컬렉터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팔아 작가로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화실에 새를 기르며 새 소리를 들으면서 작업을 했다. 서로 마주보며 정겹게 정담을 나누는 것과 같은 새의 모습은 마치 인간세계를 향해 무한한 애정을 담아 화합을 촉구하는 것 같다. 바탕을 흰색의 물감으로 채우고 이와 선영한 대비를 이루는 검정에 가까운 새들의 모습은 평화를 위한 메시지처럼 들린다. 
 <Two White Birds 02>는 극도로 추상화(抽象化)된 새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회색, 청색, 검정, 빨강, 노랑, 짙은 회색 등 다양한 색채가 난무하는 가운데 화면의 중앙에 두 마리의 새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연대가 표기돼 있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으나 새 시리즈 중에서 비교적 후기의 것으로 보이며, 이 무렵부터 추상화(抽象畵)에 가까운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짐작된다. 즉, 화면이 평면적으로 변하면서 전면적(All-over)인 화면구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97년에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Umbrella 97>은 다시 대담한 화면구성을 취하고 있어 주목된다. 베이지 색으로 말끔하게 다진 캔버스 바탕위에 검정, 노랑, 빨강, 청색 등 다양한 색상의 우산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의 페인팅 나이프에 의한 대담한 터치에 의해 형상화된 우산은 화면의 중앙을 크게 차지하며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랑(Love) 연작은 각각 빨강(<Love 4-98>, <Love 01-98>) 과 청색(<Love 8-98>)을 주조색으로 삼아 검정, 노랑, 연두 등과의 대비를 통해 강렬한 색감을 자아내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정적 추상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특히 청색을 주조로 한 작품은 페인팅 나이프로 유성물감을 두껍게 발라 불규칙한 형태의 색편(色片)들이 전체 화면을 뒤덮고 있다. 그 사이에서 빨강, 노랑, 녹색 등의 작은 색점들이 보색의 대비를 이루며 마치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우리들 각자는 같은 색이라도 완전히 다른 색으로 느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에 봤던 색과 다르게 느끼게 되는데, 시간과 감정, 빛 이 모두가 색 속으로 함께 들어오기 때문이다.”

 안영일의 위와 같은 발언은 그의 전체 작품에서 색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는 관객에게 어떤 각도로 그림을 바라봐야 할지 강요하지 않는다. 관객으로 하여금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 그것은 곧 보는 자의 감각이 반응하는 대로 몸의 순수한 느낌을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자연의 경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듯이, 순수한 상태에서 순수한 감각의 기쁨을 느끼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격랑에 휘말린 듯 파동치는 붓놀림에 의해 격정적인 느낌을 표현한 <캘리포니아> 시리즈는 나이프로 바른 연한 베이지색의 바탕 위에 난무하는 듯한 필흭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선들은 리드미컬하게 파동을 쳐 마치 빠른 템포의 음악을 들을 때처럼 강렬한 감흥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격정적인 느낌도 <해변에서(At the Beach)> 연작에 이르면 다시 안정적인 모습을 찾아간다. 연한 베이지색에 약간 푸른색 기미가 감도는 바탕색을 배경으로 빨강, 파랑, 검정, 노랑색의 비치 파라솔들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반추상의 형태로 돼 있어, 그것들이 딱히 비치 파라솔이라기 보다는 삼각형들의 집합으로도 읽혀진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형태란 것은 시지각적 관습에 의한 하나의 트릭일지도 모른다. 안영일은 추상적 형태와  구상적 형태의 사이에서 시각적 관습에 대한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색채와 형태 사이, 선과 면 사이, 점과 선 사이 등 회화의 요소와 이를 둘러싼 시각적 원리에 기울여 온 안영일의 끊임없는 탐구는 그림이 단지 눈에 의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적 대상, 즉 지적 탐구의 대상임을 은연중 암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의 그림들은 인식을 넘어서 온 몸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각을 완전히 열어놓은 상태에서 대상을 온전한 기쁨의 대상, 즉 경이(驚異)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연을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순수한 시각적 즐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음악의 선율이 논리를 초월하여 하나의 정신의 전율로 다가오는 것처럼, 그의 그림들은 순수한 몸의 언어인 것이다. 

Ⅳ. 
 안영일은 그림을 쉴 때면 피아노를 치거나 첼로를 연주하거나 클라리넷을 불며 지낸다. 음악은 이제 그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는 음악에서 영감을 얻고 소재를 구한다. <음악가> 시리즈는 그가 얼마나 음악에 심취해 있는가 하는 점을 잘 말해준다. 캔버스 전체에 잠길 듯이 침잠된 검정색 바탕에 첼로를 켜는, 같은 검정색의 인물상은 어렴풋이 보이는 인물의 윤곽선만 없다면 한편의 단색 추상화에 가깝다. 짙은 어둠 속에서 악사는 첼로를 켜고 있다. 그것은 한편의 드라마, 즉 절대 고독을 대변하는 것과도 같다. 그 침잠된 깊이에서 영혼의 울림이 흘러나온다. 고뇌와 고통, 그런가 하면 환희로 범벅이 된 영혼의 울림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회화만이 가지고 있는, 감각의 힘이다. 
 앞에서 장황하게 묘사한 바다에서의 체험 이후, 약 30년간에 걸쳐 안영일은 <물> 시리즈를 제작해 오고 있다. 어느덧 그의 나이도 80대 중반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뇌졸중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멈출줄 모르는 그의 창작열은 새로운 변화를 위해 오늘도 식지 않고 달린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곱게 삭아 평온한 관조의 세계를 보여주는 안영일의 <물> 연작은 60여 년에 이르는 그의 화업이 쌓은 금자탑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말한다. 나의 작업은 변화의 연속이라고.


- 주석
1) 안승각에 대해서는 자세한 사항이 알려져 있지 않다. 기록에 의하면 세 차례(1933, 1934, 1936)에 걸쳐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입선한 경력이 있으며, 1974년에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원로작가초대전 : 한국근대미술 유화-근대를 보는 눈전]에 초대를 받아 <피난민>이란 제목의 유화를 1점 출품하였다. 2015년에 충북문화재단이 충북문화관 숲속갤러리에서 주최한 [충북 연고 작고작가: 예술과 정신 조명전-2부]에도 작품이 출품된 바 있다. 

2) 국전의 제도적 권위와 아카데미시즘에 반발하여 결성된 재야단체로서 1957년에 창립. 참여작가는 김서봉, 김영환, 김창렬, 김청관, 김충선, 나병재, 이명의, 이양로, 이수헌, 박서보, 안재후, 장성순, 전상수, 정건모, 조동훈, 하인두(이상 무순) 등이다. 

3) 회원은 같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인 김대우, 유영렬, 김봉태, 윤명로, 손찬성, 최관도, 이주영, 김응찬, 박재곤, 김기동, 김종학, 송대현(이상 무순) 등이다,   

4)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기생인 조용익의 증언. 조용익은 안영일과 달리 앵포르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현대미술가협회와 악뛰엘(Actuel) 그룹의 대표위원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5) 안영일, <물> 시리즈의 기원(Origin of The Water Series), 안영일 화집, 15쪽, 2014. 

6) <물(Water)> 시리즈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안영일 화집(2015)에 수록된 필자의 글 “In Pursuit of Nothingness, aPlace for Contemplation and Silence : The World of Young-Il Ahn”을 참고할 것.

7) 정숙희 기자, ‘팔순에, 물빛은 설렘으로 일렁인다’, 미주 한국일보, 2015. 1. 9일자. 

8) 안영일, <사랑 시리즈에 관하여>, Brochure of Sackville Gallery London,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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