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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이미지에 대한 디지털적 번안

윤진섭

                                      
                                                  

 이처럼 파당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가 서울에 올라와 작품을 발표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작품의 운송에서부터 설치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특히 지역에서는 유명할지 몰라도 서울 화단에 이름이 다소 생소한 작가의 경우, 모종의 심리적 부담감도 작용한다. 


 박종규의 경우, 서울 화단의 입성을 대대적으로 알린 리안갤러리에서의 이번 개인전은 그의 존재감을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그는 작년에 경북 영천에 위치한 시안미술관에서 가진 초대전이 큰 성공을 거둔 여파를 몰아 이번 전시에 임했다. 회화는 물론, 설치, 오브제, 미디어 아트에 이르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다양한 매체를 동원하여 지난 수년간에 걸쳐 관심을 기울여온 주제를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원래 시안미술관의 전시 프로그램 목적이 주목받는 지역작가를 선정하여 국제적인 작가로 육성한다는 데 있었던 만큼, 전시 규모 역시 타이틀에 걸맞게 대규모였고, 박종규는 그러한 목적에 부응하여 자신의 전 역량을 전시에 투여한 바 있다. 따라서 그의 이번 리안갤러리 전시는 말하자면 작년의 시안미술관 전시를 축소하여 서울에 선보이는 매우 의미있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상업화랑의 전시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최근 들어서 일부 메이저급 화랑들이 설치나 미디어아트와 같은 비정형적인 전시의 형태를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리안갤러리 역시 정통적인 회화의 매체인 캔버스의 틀을 벗는 과감한 시도를 감행했다. 1층 전관을 이용하여 벽면에 직접 작품을 설치하는 벽화 형태를 취한 것이다. 박종규의 이 작품은 자신이 수년 간 추구해온 컴퓨터 드로잉의 일부이다. 흑백의 선이 자아내는 과감한 시각적 콘트라스트가 압권인 이 거대한 설치 작품은 지하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전 긴장감을 유발하는 동시에 궁금증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박종규의 선과 점(dot)을 이용한 대형의 그림들은 사물의 이미지에 대한 디지털적 번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인코딩(Encoding)’은 박종규의 컴퓨터를 활용한 작업의 요체를 설명해주는 표제어이다. 흔히 ‘암호화하다 혹은 암호로 고쳐 쓰다’는 의미를 지닌 ‘인코딩’이란 단어는 실제의 세계를 기호의 세계로 변환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점자처럼 보이는 점은 점자가 의미하는 세계와는 관계없이 실제의 세계를 암호로 전환한 기호의 세계이다.  마찬가지로 바코드를 연상시키는 박종규의 선의 회화는 경제적 교환 기호체계로서의 바코드와 관계 없이 컴퓨터상의 픽셀(pixel)의 조합이 이루는 이미지의 세계이다.


 박종규는 컴퓨터가 수행하는 이 픽셀의 조합 원리를 사용하여 특정한 대상을 찍은 사진이나 심지어는 음악조차 ‘코드화’하여 이미지로 전환한다. 따라서 박종규의 점이나 선 그림들은 지극히 기계적인 성격의 회화인 것이다. 이처럼 박종규가 시도하는 새로운 회화적 방법론은 작가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순수한 기계적 드로잉이라 할 수 있다. 그 기계적 드로잉을 입체로 구현한 것이 이번 전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기계가 수행한 거대한 그림들과 각기 다른 장면을 보여주는 20여 개의 모니터가 매달린 구조물에 사운드와 시각물이 결합, 게다가 전시장에 들어온 관객의 모습이 투명된 모니터 등, 박종규는 특유의 융합적 사고를 통해 전시의 새로운 국면을 타개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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