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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인의 개성, 14개의 독자적인 회화세계 'Korean Abstract Art: Early Works by 14 Masters' 전의 의미

윤진섭

14인의 개성, 14개의 독자적인 회화세계 'Korean Abstract Art: Early Works by 14 Masters' 전의 의미 

윤진섭 | 미술평론가

 최근 국제미술 현장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단색화(Dansaekhwa)’의 붐이다. 한국의 현대 추상회화를 대변하는 단색화는 1970년대 초반 이후 한국에서 전개된 모더니즘 미학의 정수(精髓)를 담고 있다. 물론 한국 모더니즘이라고 했을 때 거기에 해당하는 미술운동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중반까지 전개된 비정형(Bijunghyeong : Informel) 회화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유럽의 앵포르멜(L'art Informel)과 미국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한국전쟁(1950-1953)이 가져다 준 참혹한 전쟁체험을 유성물감을 비롯하여  석고, 시멘트 등 거친 물질감에 담아 표현코자 했다.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등 당시의 20대 젊은 작가들은 [현대미술가협회전](약칭 ‘현대전’)를 통해 이를 하나의 미술운동으로 전개해 나갔다. 그리고 이들은 훗날 70년대에 이르자 단색화 운동의 주역이 된다.  

 K옥션이 이번에 뉴욕 전시에서 선보이는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김기린, 서세옥, 정상화, 이성자, 남관, 이승조, 권영우, 정창섭, 하종현, 이동엽 등 14명의 작품들은 한국 모더니즘 회화, 그 중에서도 특히 추상화의 정수(精髓)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리고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서세옥, 이성자, 남관을 제외하면 모두가 단색화 계열에 속하는 작가들이라는 점이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또한 연령적으로 볼 때도 대부분의 작가들이 80대의 원로에 해당한다. 

 김환기(1913-1974), 이성자(1918-2009), 남관(1911-1990) 등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한 작가들은 한국 미술사에 그 족적을 확고히 남겼다. 권영우(1926-2013), 정창섭(1927-2011), 윤형근(1928-2007), 이승조(1941-1990), 이동엽(1946-2013)은 1세대 단색화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이들 작고작가들과 함께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박서보, 김기린, 서세옥, 정상화, 하종현 등은 한국 현대미술의 원로로서 국제무대에 그 이름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김환기는 60년대 후반부터 청색계통의 단색화를 시도한 선구적인 작가이다. 뉴욕 허드슨 강 부근의 작업실에서 캔버스 위에 묽게 갠 청색 안료를 사용, 붓으로 무수한 점을 찍어나가는 독자적인 추상화 양식을 수립하였다. 그는 조국에 두고 온 친지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점을 찍어나갔다. 1970년에 제작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36x172cm)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우환은 일본모노파(Monoha)의 이론적 지주이자 작가이다. 일찍이 1970년대 초반부터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연작을 통해 단색화를 시도한 그는 회화의 기본 요소인 선과 점의 문제를 서예의 기본이 되는 ‘일획론’을 통해 풀어가고자 하였다. 이우환의 단색화는 주역에 뿌리를 둔 우주의 심오한 묘리(妙理)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서보는 1970년대 단색화 운동의 주역이다. 그의 <묘법>은 캔버스에 엷은 회색조의 유성물감을 칠한 뒤 연필로 사선을 긋는 단순한 동작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반복적인 수행을 통해 ‘자연과 함께’ 하는 특유의 회화적 방법론을 수립하였다. 한지와 유채색의 사용 등 그의 작품세계는 후반으로 갈수록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윤형근의 <엄버 블루> 연작은 수신에 기반을 둔 동양의 유교철학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서법에서 출발한 그의 단색 회화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깊이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그림은 고뇌에 찬 그의 인생이 응축된 결과이며 과정 그 자체이다. 한국의 수묵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그의 작품은 화포에 물감이 침투하여 번지는 특유의 선염의 세계를 보여준다. 


김기린의 검정회화는 캔버스에 한지를 바르고 그 위에 검정색 유성물감을 칠하는 반복적 행위의 결과이다. 그는 그 위에 번질거리는 느낌을 주는 린시드 기름을 제거한 유성물감을 테레핀으로 희석시킨 후, 스프레이건으로 여러 차례 분사, 특유의 아우라를 풍기는 검정회화를 구현하였다. 그의 작품은 검정 단색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서세옥은 일찍이 60년대 초반에 묵림회를 결성하는데 주역을 맡았으며 동양화 분야에서 추상화를 시도한 선구적인 작가이다. 한국 수묵화의 대표작가이며 원로인 그는 선염법에 기초한 단순한 묵(墨)의 세계를 수립하였다. 인간은 서세옥 회화의 가장 중심적인 소재이다. 확고한 화론에 의해 펼쳐지는 서세옥의 수묵의 세계는 단순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정상화는 정신성, 촉각성, 수행성으로 대변되는 단색화의 요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이다. 평생을 전업작가로서 작업에만 매진하고 있는 그는 그 결과 놀라운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캔버스를 사각형으로 모듈화하고 그 안을 여러 겹의 물감으로 채워넣고 뜯어내고 다시 채워 넣는 지루한 작업을 반복하여 ‘몸성(Monsung)'을 구현하고 있다. 

이성자는 일찍이 1951년에 도불, 파리를 중심으로 확고한 명성을 쌓은 작가이다. 회화를 중심으로 판화, 입체, 타피스트리 등 다양한 매체를 구사하는 그녀는 음양사상에 기반을 둔 동양의 심오한 철학을 바탕으로 폭넓은 우주의 세계를 추상화 양식으로 담아냈다. 고향에 두고온 가족을 생각하며 창작에 임한 그녀의 작품세계는 다양한 색조를 통해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준다.   
 아마도 남관만큼 동양적 문화유산을 격조 높은 추상화의 형식으로 녹여낸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프랑스에 머물면서 가령 신라시대의 금관이나 서예와 같은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자신의 회화에 도입하였다. 유럽에 오랫동안 체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는 서양적 정서보다는 동양적 분위기가 짙게 풍기는데, 이는 동양문화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1960년대 초반이후 한국에서 기하학적 추상을 추구하는 작가들의 모임인 ‘오리진’ 그룹의 창립멤버이기도 한 이승조는 평생을 ‘파이프’를 소재로 한 추상화의 세계에 몰입하였다. 그의 기하학적 추상화는 한국 화단에서 선구적인 위치에 있으며, 말년에 그가 제작한 작품들은 검정색을 주로 사용한 단색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권영우는 1960년대 초반부터  한지에 대한 회화적 실험을 시도하였는데, 이는 시기가 가장 이른 선구적인 작업이었다. 화판 위에 붙인 채 물이 덜 마른 화선지를 손가락으로 밀어 찢기고 밀리는 다양한 표정에 주목한 그는 겹겹이 바른 화선지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는 등 다양한 실험을 전개하였다. 

 정창섭 역시 한지작업에 주력한 1세대 단색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일찍이 한지가 지닌 물성적 측면에 주목한 그는 특히 닥지 원료를 사용, 닥이 지닌 풍부한 표정을 회화적으로 풀어가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물에 젖은 닥을 캔버스에 손으로 펼치는 가운데 손의 맛을 드러내고, 때로는 엄격한 사각의 기하학적 형태를 남기는 등 다양한 조형적 시도를 전개하였다.

 캔버스의 뒤에서 걸죽하게 갠 유성물감을 나이프로 밀어 넣는 ‘배압법’을 창안한 하종현은 한국의 토담벽에서 보는 것 같은 소박한 단색화의 세계를 이루어냈다. 그의 그림은 회화의 원초적 몸짓을 보여준다. 캔버스 위에 송골송골 맺힌 유성물감의 알갱이들을 특수하게 고안된 도구로 뭉개거나 긋는 원초적인 동작을 통해 독자적인 화풍을 수립하였다. 

 이동엽은 40여 년에 이르는 작품 활동 시기 중 거의 대부분을 <사이> 연작에 몰두한 작가이다. 흰색으로 깨끗하게 칠한 캔버스 표면 위에 넓은 붓을 사용하여 흰색과 검정색 사이의 회색 톤으로 미묘한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냈다. 그는 특히 그림의 여백에 관심이 많았으며, 색과 색의 사이에 존재하는 틈에 주목,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회화가 무수한 사이들의 결합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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