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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수행으로서의 그림

윤진섭


 최근에 불고 있는 단색화의 열풍 속에서 열린 최명영과 이동엽 두 작가의 개인전은 단색화를 둘러싼 화단의 판도 변화에 하나의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우선 거시적으로 보면,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주최의 [한국의 단색화]전 이후 정창섭,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 박서보, 윤형근, 이우환 등 1970년대의 1세대 원로 단색화 작가들 위주의 독과점적 전시가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징후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연령별로 보자면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중반 태생의 작가들과 그 후속세대인 40년대 출생 작가들로 대별할 수 있다. 후자에는 최명영, 이동엽을 포함하여 서승원, 최병소, 이승조(작고), 허 황, 이정지, 김진석(작고) 등이 있다. 또한 똑같이 1세대 원로 단색화 작가군에 속하나 그동안 충분히 조명을 받지 못한 김기린, 권영우, 김종근(작고), 김홍석(작고), 최대섭(작고), 정영열(작고), 조용익, 김형대, 안영일(재미) 등도 가세할 것으로 예견된다.  


 단색화를 둘러싼 이러한 판도 변화는 종국에는 한국 화단의 색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그 이유는 국제갤러리 등 일부 메이저급 상업화랑이 주도하고 있는 현재의 협소하게 정예화된 소수의 작가군 만으로는 단색화의 풍부한 스펙트럼을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단색화의 외연을 넓혀야 하는 이유는 항간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반짝 특수’가 어느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외의 옥션이 주도하는 단색화 열풍은 단색화에 대한 비평적 내지는 학술적 조명이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그 풍향을 가늠할 수 없는 불안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만일 단색화가 지금처럼 이론적 토대가 빈약한 상태에서 미술시장의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빠져든다면 존립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이동엽초대전은 관객들에게 단색화 1세대 작가로서 그의 존재를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동엽은 1970년대 단색화의 본격적인 출범을 알린 작가다. 그는 1972년에 열린 제 1회 [앙데팡당]전에 유리컵에 담긴 얼음이 녹는 상황(명제 역시 ‘상황’이다)을 시리즈로 1백호짜리 세 폭의 캔버스에 담아 전시했다. 당시 전시장을 찾은 동경화랑 대표 야마모토 다카시 사장이 이 작품을 보고 “조선의 백자를 연상시킨다.”고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동엽은 이 작품으로 당시 심사위원인 이우환에 의해 파리비엔날레 참가 1석으로 뽑혔으나 설치와 오브제, 퍼포먼스 위주의 실험과 전위적 성격을 지닌 파리비엔날레 측이 참가를 거부, 이태 뒤에 열린 [카뉴회화제]에 참가하여 ‘3인 공동 국가상’을 받았다. 
 이동엽은 약관 20대 중반의 나이에 국제전에서 수상을 하고, 또한 1975년에 열린 동경화랑 주최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에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허황과 함께 초대를 받는 행운을 누렸다. 이 전시는 일본이란 타자적 시선에 의해 한국의 흰색이 미적 특수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이벤트였다. 
 그러나 이동엽은 작고하지 전까지 불운의 작가였다. 그의 작품이 팔리기 시작한 것은 2천년대 후반으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에서 창작의 혼을 불살랐다. 전업작가의 표본인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작업실에 칩거하며 그림을 그렸다. ‘사이’라는 일관된 명제로 유채색을 쓴 짧은 시기를 제외하곤 오로지 흰색과 회색 등 무채색만을 사용했다. 
 이동엽의 그림에서 회색의 계조가 드러난 색역(色域)은 여백을 드러내기 위한 회화적 장치이다. 거기에서 깊은 울림이 나온다. 소리의 공명과도 같은 색의 미묘하고도 아련한 색의 자취들, 이 때 물질적 작용을 정신적 작용으로 전환시키는 기제가 바로 이 자취들인 것이다. 
 작품의 제작자(작가)로부터 향수자(관객)에게 전이되는 마음의 문제는 그가 추구한 회화의 본질이었다. 상호소통을 전제로 한 이 초(超)논리의 세계가 이동엽 회화의 근본을 이룬다. 이때의 초논리는 ‘있음(有)’과 ‘없음(無)’의 대립과 길항관계에서 파생되는 긴장감을 낳는다. 그것이 시각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회색의 띠와 순백의 여백 공간이 상접하는 부분이다. 


 이동엽의 그림은 순환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자연 곧 우주의 본질인 극미와 극대의 세계를 관통하여 순환한다. 따라서 관객이 보는 시각적 현시물은 밖으로 드러난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을 뿐, 그 깊이를 보지 못하면 그것이 가리키는 본체에 접근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그의 그림이 마음의 반영물인 이유이다. 작가의 마음(作意)과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이 통할 때 제대로 된 감상이 이루어진다. 이 때 이동엽의 그림은 우주의 철리로 통하는 관문이 된다. 도덕경에서 노자가 말한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즉 ‘도가 말해지거나 설명될 수 있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며, 이름이나 명칭이 개념화되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라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관객이 그의 그림에서 굳이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할 때 대개는 감상에 실패하게 되는 이유다. 그의 그림은 의미의 다발이 아니라 오로지 직관에 의해서만 접근이 가능한 심미적 울림(共鳴)의 투명한 거소(居所)이기 때문이다.
 

 이동엽이 보여준 이러한 동양적 세계관은 최명영의 경우에 있어서도 양상은 다르지만 유사하게 표명된다. 두 사람 다 사유의 깊이가 도저하다. 이들이 보여주는 직관적 세계는 논리적 정합성을 바탕에 깔고 전개되는 도널드 저드나 솔 르윗, 아그네스 마틴, 프랭크 스텔라 등 서구의 미니멀리스트들이 보여주는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들이 다루는 세계는 이심전심적 차원에서 ‘마음의 영역’, 곧 마음에 관한 것이다. 
 1970년대 초반 이후 숙성된 최명영의 ‘평면조건’은 몇 차례의 방법론적 분절을 이루며 전개돼 왔다.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그의 작업은 우주의 세계를 회화의 모체로 삼는다. 어두운 밤하늘이 지닌 투명한 깊이,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 순백의 설원,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되는 대지 위의 사물들 등등, 그것들은 빛의 세계에 속하지만 그는 물감이란 물질로 이를 대체한다. 최명영의 그림이 자연, 즉 우주의 등가물이란 사실은 캔버스나 종이 위에 물감이 축적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며, 변형되고 소멸된다는 자연스런 현상에 기대고 있다. 


 최명영은 40여 년에 이르는 단색화의 회화적 도정을 통해 방법론이 서로 다른 매 분절기 마다 반복의 수행을 통해 작품을 육화시켜 왔다. 로울러를 사용하여 걸쭉하게 갠 물감을 수십 차례에 걸쳐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칠해 두꺼운 층을 형성하거나, 칠한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손가락으로 지우는 작업을 반복했다. 때로는 엷은 한지를 칼로 잘라 겹쳐 바르는 띠 작업을 시리즈로 시도하기도 했으며, 먹을 칠한 한지에 무수한 구멍을 내는 지루한 작업을 꽤 오랫동안 지속했다. 이처럼 다양한 회화적 방법론들은 반복을 통한 수행적 성격을 띤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경(寫經)을 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주지하듯이 불경을 베끼는 사경은 불가에서 행하는 수행의 한 방법이다.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고 부처님의 큰 뜻이 중생에게 널리 퍼지도록 마음을 모아 공력을 들여 행하는 이 사경의 수행법을 최명영의 작업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기울이는 초지일관의 자세는 마음의 격을 높이기 위해 행하는 수행과도 같다. 여기서 지행합일의 정신이 나온다. 마음을 비운다고 했으면 정말로 비워야지 그 빈 자리를 물질로 채우면 그것은 진정한 수행이라고 볼 수 없다. 지행합일과 언행일치 등의 유교적 덕목은 예술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정신임을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단색화가 삶의 태도에 있어서 유교적 덕목과 맞닿아 있음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물질과 세속적 영달로부터 초연한 자세를 유지했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꼿꼿한 선비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디 그러한가. 주변을 둘러보라. 


 최명영의 작품들이 은은하게 뿜어내는 기품과 고상한 아취는 그의 고매한 인품을 거울처럼 보여준다. 그것은 평소 겸손한 그의 삶의 태도와 언행과도 관련이 있다. 작품이 곧 작가 자신이라는 금언을 새긴다면 예술가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필요한 덕목은 실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최명영과 이동엽이 보여준 금욕과 절제의 미덕은 온갖 화려한 기호들이 창궐하는 현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트 인 컬처 201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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