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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미술관의 설립에 관한 제언과 제안

윤진섭

 첫 단추를 잘 꿰어야 매사가 순조롭게 돌아가듯이, 공공미술관도 첫 삽을 뜨기 전부터 미래에 대한 비전과 고유의 운영 철학이 있어야 한다. (가칭) 수원시립미술관(이하 ‘수원시립미술관’으로 칭함)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서 깊은 수원시는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성에 둘러싸인 도시이다. 작년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총회 및 학술대회 현장에서 보여준 회원들의 문화도시 수원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것처럼, 수원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 있는 천혜의 관광 자원을 갖춘 도시이다. 수원이 세계 속의 수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전략의 수립이 요청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문화ㆍ관광 인프라에 덧붙여 시립미술관과 같은 예술 관련 시설의 확충이 필수적이다. 
 이번 수원시립미술관의 건립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그보다 먼저 건립된 타 지역의 공공미술관 건립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문제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비전을 창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후발주자가 갖는 장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과연 시행주체인 수원시가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수원시립미술관을 ‘특성화된 전문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수원시에 대한 나의 이러한 요청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연유한다.

 첫째, 변화하는 새로운 문화ㆍ예술의 환경에 대한 인식이다. 특히 디지털 문명이 이끄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응하는 미래 비젼형 전략 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이 필수적이다. 
 이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대변되는 SNS(Social Networking System) 하에서 관람객의 수용자적 측면을 고려하는 미술관을 지향할 것을 의미한다. 즉, 기존의 미술관 업무의 관행인 미술품의 전시를 통한 일방적 강요가 아니라 수용자인 관람객의 입장을 고려한 ‘상호작용적(interactive)’인 측면을 중시하자는 것이다. 
 이미 1960년대 후반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 1915-1980)가 ‘저자의 죽음’을 설파한 이후, 제왕적 문화예술 창조자로서의 작가의 절대적 위치는 추락하는 상태에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봇물이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창작에서의 ‘인용’의 전략이나 컴퓨터나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는 하이퍼텍스트에 의한 글쓰기조차 이미 한물간 창작방법론으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관객의 참여 형태가 창도하는 예술 현장은 과거의 아날로그 패러다임 하에서의 양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령, 관람객의 존재는 다음과 같은 예에서 그 변모된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이 스마트폰 소지자인 오늘날의 관람객들은 전시 현장에서 사진을 찍은 후 이를 다양한 형태로 가공하거나 전송,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즉, 모바일폰으로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 상에 올려 전파하는 제2의 언론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홈페이지, 블로그, 인터넷 카페 등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간접적 홍보자(기자)의 위치에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볼 때 관람객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야말로 현재의 미래의 미술관이 성공할 수 있는 관건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특성화된 전문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이다. 이는 건립 초기부터 다각적이고도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구체화해나가지 않으면 안 될 사안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2년 현재 한국의 등록 박물관 및 미술관은 916개인데, 그 중 미술관은 173개에 달한다. 그러나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국공립ㆍ사립미술관의 현황을 살펴보면 태반이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에 있다. 이른바 ‘그 나물에 그 밥’인 소장품 내용이 그렇고 전시기획 역시 중복되거나 아예 기획의 개념조차 분명치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특성화된 전문미술관으로서의 이미지 구축은 지역의 미술현장과 연계해 초기부터 면밀히 설계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이 명실공히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으로 자리매김하려면 무엇보다도 수원 현대미술의 역사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물론, ‘수원 현대미술’이라고 할 때,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무엇을 수원 현대미술이라고 할 것인가? 그 연대설정과 범주, 실체, 기점 설정에 대한 논의도 다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학술 세미나를 통해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갈 의제이지만, 수원시립미술관이 기존의 타 미술관과 분명한 차별화를 이루기위해서는 미술관의 정체성 확립이 우선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셋째, 미술관의 소장품과 관련된 사안이다. 주지하듯이, 미술관의 꽃은 전시이며, 미술관의 품격은 소장품의 내용과 질의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즉, 훌륭한 소장품을 다량으로 확보한 미술관은 그 만큼 관람객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다. 현재 소장품이 거의 전무한 상태인 수원시립미술관은 시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인 만큼, 시의 예산을 투입하여 미술품을 구입해야 할 처지에 있다. 그러나 국내 타 지역의 시립미술관 연간 소장품 구입예산이 고작 10억 여 원 안팎인 점을 고려할 때 수원시립미술관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품격 높은 양질의 미술품을 확보할 것인가?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도출될 수 있다. 가령,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도 가능하고 국내외 혹은 지역의 미술인들로부터 기증을 받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광주시립미술관의 경우, 재일실업가 하정웅이 기증하여 형성된 ‘하정웅 컬랙션’이 광주시립관의 소장품 중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술품 소장의 형성에 미치는 기증자의 역할은 매우 크다 하겠다. 기업의 후원은 메세나 운동과 연동돼 소장품의 양적 확대를 이룰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수원시 관내 혹은 경기도 일원에 소재한 기업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하정웅의 미술품 기증이 이렇다 할 연고가 없는 포항시립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에서도 이루어진 점을 감안할 때, 반드시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소장품 확보와 관련하여 볼 때, 개인이나 기업의 후원을 이끌어내는 일은 무엇보다 시의 수장인 시장을 비롯하여 미술관의 운영 책임자인 미술관장의 역량에 달려있다. 연간 미술품 구입 예산이 10억 원 안팎인 현실에서 양질의 미술품을 소장한다는 것은 미망에 불과하다. 이는 이우환의 700년대 <점으로부터> 100호 작품 한 점이 22억 원을 호가하는 미술시장의 현실을 놓고 볼 때, 매우 설득력이 높다. 이는 국내의 척박한 문화예술 환경에서 우수한 미술관을 형성, 유지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점을 말해주는 사례이다. 
 아울려 밝혀둘 것은 이른바 작품의 기증과 관련된 문제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기증을 원하는 작품이라고 해서 다 소장 가치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소장되길 원하는 작품이 태작일 수도 있고, 또 작가가 자격미달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구성되는 것이 바로 소장품 심의위원회이다. 미술관장에 의해 위촉되는 소장품 심의위원회 위원은 반드시 사계의 전문가들(미술평론가, 미술사가, 큐레이터 등)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작품 소장의 방향성을 수립하는 일이다. 내가 이 글의 서두에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고 한 말은 여기서도 통한다. 첫 소장품을 잘 구성해야 성격이 있는 소장품 목록이 이루어지는 자명한 사실이다. 성격이 없이 중구난방으로 작품을 구입하다 보면, 결국에는 특색이 없는 소장품 내역이 되고 말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넷째, 미술관 ‘아카이브(Archive)’의 구축이다. 이는 미술관의 고유 업무 영역인 작품 소장과 전시, 교육, 미술품의 복원 및 수리 등에 뒤지지 않는 주요 항목이다. 최근에 미술 아카이브(Archive)에 대한 국내 미술관계자들의  관심이 점증하면서 ‘한국아카이브협회(회장 김달진)’가 창설된 바 있듯이, 미술관 업무에서 이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해도 지나치지 않다. 
 작가를 비롯하여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큐레이터, 미술품 소장가, 화상, 미술기자 등 이른바 ‘미술계(art world)’를 이루는 이들과 관련된 일체의 기록물(작품, 서적, 비평글, 신문 및 잡지기사, 사진, 메모, 일기, 비디오, 영화,  등등)을 총칭하는 아카이브는 비평과 미술사 기술에 기초가 되는 유형의 기록물들로 구성된다. 이는 미술관에 부속된 도서관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요소로써 향후 미술관이 반드시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될 필수 요건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직제에 전문 아키비스트의 채용을 공식적으로 명문화함으로써 전문미술관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작가에 대한 보다 전문적이고도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고, 그것은 또한 전시와 연결되어 한층 더 관람객의 이해를 돕게 될 것이다.    
 작품의 수장고가 미술관의 심장이라면 도서관과 아카이브 룸이 딸린 학예연구실은 인체의 두뇌에 해당한다. 아무리 우수한 큐레이터라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 실력을 갖춘 전시 디자이너와 아키비스트, 큐레이터가 원만한 협업을 이룰 때 수원시립미술관은 훌륭한 전시로 관람객을 맞게 될 것이다. 

 수원은 서울과 근거리에 위치한 입지적 조건 때문에 미술과 관련시켜 볼 때 전시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실정이다. 이는 인천이 처한 지리적 환경과도 유사한 상황이다. 즉, 대중의 문화예술의 향수가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인 셈이며, 이는 수원 문화예술의 인프라의 낙후와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차제에 수원시립미술관의 설립은 수원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숙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미술관의 명칭을 둘러싼 시민들의 다양한 반응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미술관 건립의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기업이 예술 메세나의 차원에서 베푸는 것이라면, 어떤 조건 없이 지원을 하는 통 큰 배려가 필요하다. 시행 주체인 기업과 이를 바라보는 지역민의 요구가 충돌할 때, 상호 이해는 민주사회에서 필요선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갈등은 해당 기업에 대한 시민들의 적대감을 낳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피차 한 발의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의 합리성을 추구하게 되면 상호 이익을 가져오게 되는데, 가령, 기업은 소장품 구입에 필요한 적정 예산을 특정 기간 동안 제공하고 그에 따라 시민들은 적정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는다면 반드시 나쁜 해결 방안은 아닐 것이다. 

 수원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실험미술 단체인 ‘컴 아트’ 그룹과 ‘슈룹’을 낳은 고장이다. 이경근, 김석환, 김중, 황민수 등에 의해 1990년에 결성된 컴아트 그룹(Com Art Group)은 90년대 초반, 수차례에 걸쳐 [교감예술제]를 개최하면서 그룹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1993년에 ‘지금, 東의 夢(Now, Dream of East)’이란 주제로 경기도문화예술회관과 장안공원에서 전시회를 갖는 한편, 한중일 3개국의 미술평론가들이 모여 학술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이 단체는 또한 1933년 1월, 북경 소재 중국미술관에서 한국과 중국의 미술인들이 연합한 [한국 현대미술의 육성(肉聲)-장안문에서 천안문까지]전을 갖는 등 일찍이 수교 이후 중국과의 문화교류를 추진하기도 했다. 실험미술의 게릴라그룹으로 칭할 수 있는 이들의 활동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중국과의 교류전이다. 이 사건은 문호가 완전히 개방되기 전인 1993년에 민간차원에서 중국과의 수교를 결행했다는 점에서 한중미술교류사에 기록될 중요한 포석이다. 이 무렵은 1992년에 대만과 단교를 한 한국이 이어서 중국과 수교를 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일의 추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난히 난관을 극복하고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이다. 이듬해인 1994년에는 한중일 3국의 작가들이 북경에서, 다시 1995년에는 일본의 재팬 파운데이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 성과를 올렸다. 
 1994년 10월에 중국 북경수도사범대학 미술관에서 열린 제2회 [국제교감예술제]에는 한국, 중국, 일본의 작가들이 대거 참가하였다. 이 전시에 이르러 한중일 3국의 작가들이 모여 토론을 벌여 전시를 3국이 돌아가며 열기로 합의를 보았고, 그 이듬해에 일본에서 [새로운 아시아의 미술(New Asian Art Show-1995/China Korea Japan)]전이 열리게 된다. 
 일찍이 나는 컴아트 그룹의 저돌적인 활동을 가리켜 ‘문화게릴라’라고 특칭한 바 있다. 수원 화성의 역사성을 근간으로 중국과 일본을 향해 뻗어나간 이들의 문화 소통 전략은 그만큼 선구적인 데가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시립미술관이 문을 여는 시점에서 이들의 지난 활동을 되짚어 보는 일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수원을 거점으로 활동을 펼친 또 하나의 미술 그룹은 ‘슈룹’이다. ‘순 우리말로는 ‘우산’을 뜻하며 인도 산스크리트어로는 ‘높은 곳에서 전체를 조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슈룹‘은 1982년에 태동되었다. 수원에 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를 만든 몇몇 미술인들이 모여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실험적인 미술을 모색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창설된 것이다. 그러나 이 명칭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1992년에 이르러서이며, 그전에는 수리미술연구소(1988, 산본)와 서울 대학로에 있던 소나무갤러리의 여러 전시나 세미나 활동들이 여기에 속한다. 
 슈룹은 그 명칭이 의미하는 것처럼 높은 곳에서 아래를 조망하며 진로를 모색해 나간, 수원을 중심으로 한 자생적 미술 모임이다. 안드로메다미술연구소의 제1회 [습작]전과 세미나을 비롯하여, [생각中]전, [맨벽-토]전, [융합 21세기]전 등등의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이들은 초기에는 서양미술을 알기위한 목적에서 주로 서구의 작가들을 연구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한반도, 나아가서는 인도와 네팔, 티벳과 같은 히말라야 산맥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이곳 한반도는, 아직도 변방에 속해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젠가 세계의 중심세력으로서 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는 예술정신을 창출해야 살 것 아닌가” 하는 발언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독자적인 미술관을 수립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전시회의 제목에도 나타나 있듯이, ‘융합’은 이 그룹의 화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룹은 ‘미술계의 기존 조직이나 그룹이 표방하는 성격이나 구조와는 사뭇 다른 자유분방한 형식을 취해 왔다’는 발언에서 엿볼 수 있듯이, 회화를 비롯하여 입체, 설치, 퍼포먼스에 근간을 둔 이들의 활동은 수원을 거점으로 서울, 히말라야 등지를 옮겨 다니며 일상의 예술을 실천에 옮겼다. 이 그룹의 핵심인물인 김성배는 1996년 이후 백두대간과 히말라야를 슈룹의 핵심 화두로 삼아 ‘세계를 향한 꿈을 펼쳐나갈 유력한 중심축’으로 설정했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각적인 노력과 실천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활동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묻혀 버렸다. 현재 한국의 현대미술을 기술한 문헌에서 이들의 활동을 제대로 기술한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한국의 현대미술사가 서울 중심으로 기술된 관행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그동안 비평계가 이들의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탓도 크다. 수원시립미술관의 설립을 계기로 ‘컴아트 그룹’이나 ‘슈룹’과 같은 수원의 자생적인 실험미술 단체를 조명하는 전시기획 및 학술 심포지엄이 필요한 이유이다. 
    
 ‘컴아트 그룹’과 ‘슈룹’의 활동은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성격의 현대미술과 직결돼 있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70년대의 개념미술과 만나게 된다. 70년대 한국의 개념미술은 서구의 개념미술을 수용하면서 촉발, 형성되었지만 서구와는 다른 독특한 측면이 있다. 예술의 상품화에 대한 저항과 반발로 ‘팔 수 없는 예술’을 주창한 서구의 개념미술가들과는 달리, 한국의 개념미술가들은 자본의 형성이 안 된, 즉 미술시장이 미약한 상황에서 개념미술의 언어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이전에 앵포르멜이나 해프닝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국의 독특한 아우라가 낀 개념미술을 태동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국의 개념미술가들은 당대 한국의 사회 현실에서 구할 수 있는 오브제나 신체를 사용하여 작가의 아이디어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애썼다. 성능경의 ‘신문’, 이강소의 ‘닭’, 이건용의 ‘나무’, 김구림의 ‘삽’, 김용민의 ‘울타리’, 이승택의 ‘고드렛돌’ 등은 당대 한국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독자성을 지닌다. 
 7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한국 개념미술의 역사를 정리하는 전시의 필요성이 수원시립미술관의 건립을 계기로 제기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80년대 이후 수원을 중심으로 전개된 ‘슈룹’과 ‘컴아트 그룹’의 활동이 그 연계선상에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할 때 이들의 활동은 한국 주류 현대미술사에 당당히 자리를 잡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에 미친 영향 또한 판명되기에 이를 것이다.  
<2015 수원시립미술관 건립 학술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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