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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관광 인프라의 구축과 신화 발굴의 중요

윤진섭



올해는 창원이 낳은 조각가 우성 김종영 선생(1915-1982)의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즈음하여 그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기념사업이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다. <불각의 아름다움-조각가 김종영과 그 시대>라는 큰 제목 하에 김종영 생가를 비롯하여 김종영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등에서 열리는 전시 및 학술세미나 행사가 그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예술과 학술분야를 중심으로 아카이브(archive) 붐이 일고 있는데, 문화예술의 관광자원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비쳐볼 때,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문화, 그 중에서도 기록문화는 그것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놓고 볼 때,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우성 선생처럼 뿌리 깊은 유교 가문에서 태어난 경우, 가문의 방대한 역사적 사료(史料)를 발굴, 현재화하고 여기에 의미를 덧붙이고 해석하여 우성의 생애와 예술에 연결시킨다면, 우성 선생만을 단독으로 조명하는 것보다 훨씬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창원’이라는 지역을 거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쉽게 비유하자면 창원이라는 무대 위에 우성 김종영 선생을 비롯하여 창원, 마산, 진해 지역 출신의 저명한 문화 예술인들을 올리는 경우와도 같다.
 

한반도의 남부에 위치한 창원은 1960년대 조국근대화 정책에 힘입어 형성된 계획도시의 전형이다. 2010년 7월 1일, 창원, 마산, 진해 등 기존의 3개 시가행정구역 자율통합으로 창원시로 개칭됨에 따라 인구 108만 명의 전국에서 가장 큰 기초지방자치단체로 부상했다. 산업은 옛 창원의 창원국가산업단지, 마산의 마산자유무역지역, 진해의 진해국가산업단지 등이 창원시로 흡수됨에 따라 경상남도 중부 지역 산업경제의 중추로 자리 잡았다. 창원시로의 통합은 경제부문에서 큰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지역 총생산(GRDP)은 21조 7639억 원에 이르는 바, 이는 광주광역시와 대전광역시를 능가하는 전국 기초 자치단체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창원시가 지닌 이러한 경제적 토대는 문화예술의 관광자원화 사업을 가능케 한다. 거시적이며 치밀한 문화 전략에 의거하여 지역의 관광자원을 연구, 개발하여 여기에 관광객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덧붙여 가공해 낸다면 멀지않은 장래에 창원은 유명한 관광명소로 거듭 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의 도시로서 창원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우선 창원이 지닌 역사성을 들 수 있다.
마산과 진해를 아우르는 창원지역은 넓은 해안 평야를 바탕으로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선사시대의 유적이 많은 곳이다. 반계동 유적지를 비롯하여 외동 지석묘, 성산패총 하층유구 등 청동기시대의 주거지와 지석묘 등이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외동 성산패총은 기원전 3세기의 선사유적지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야철지(冶鐵地)를 포함한 성곽의 유구와 각종 유물이 출토돼 이때 이미 농경문화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삼국사기 내해왕(奈解王 209) 조와 삼국사기 물계자(勿稽子) 전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이 지역은 포상팔국 중 골포국(骨浦國)에 속해 있었으나 뒤에 가야 세력권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시대에는 굴자군(屈自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의안군(義安郡)으로 개칭되었고, 마산지방의 골포현은 합포현으로 개칭되어 의안군에 영속되었다.
필자는 본고의 집필을 위해 자료를 찾다가 위키백과에서 처음 접한 ‘포상팔국’이라는 국명에 무한히 매료되었다. 약 2천 년 전, 한반도의 남쪽 해안에서 탄생한 골포국, 칠포국, 고사포국, 사물국, 보라국 등 이름도 생소한 나라들이 현재에 연결되기를 고대하고 있지 않은가! 까마득히 먼 옛날 이 땅에 살아 숨쉬던 조상들이 오늘에 다시 태어나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다시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이를 명실 공히 한국의 일리어드, 오디세이로 만들 한국의 호머를 기다리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우연의 기막힌 일치이듯 일리어드와 오디세이가 탄생한 그리스와 한반도는 그 지형에 있어서도 서로 닮았다. 내륙을 끼고 굽이굽이 도는 리아스식 해안과 그 안에 자리잡은 평야와 나지막한 연봉들, 그 안에서 신화는 잠자고 있지 않겠는가?
차이가 있다면 그리스는 호머(Homeros, Homer : 기원전 8세기 경)라는 탁월한 이야기꾼을 낳은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라는 훌륭한 역사적 전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추출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일리어드와 오디세이가 구전된 이야기에 바탕을 둔 서사시이듯, 이제부터라도 창원을 비롯한 남동부 해안에 떠도는 구비설화, 민담, 신화, 무가(巫歌) 등을 적극 발굴하여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으로 각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학, 철학, 문학, 미술사, 고고학, 인류학, 민속학, 과학, 영화, 미술, 음악, 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학제간 연구와 통섭을 통해 인문학적 접근을 꾀할 필요가 있다. 소설가 김훈은 ‘난중일기’를 전거로 ‘칼의 노래’라는 유명한 소설을 쓰지 않았는가. 우리에게도 세계적인 역량을 지닌 문인, 화가, 무용가, 배우, 학자들이 많이 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인물을 키우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장한 예술인들을 활용하려는 좋지 못한 습성이다. 고(故) 백남준이나 이우환을 둘러싼 지자체들 간의 치열한 미술관 유치 경쟁은 이의 한 예이다. 필자는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인물을 육성하기 위해 기울이는 지자체들의 문화예술 정책 내지는 컨텐츠 개발 그 자체가 훗날 보면 하나의 훌륭한 스토리텔링이요, 우수한 아카이브의 구축이란 것을.


상상력이 탁월한 어린이들을 교육시켜 훌륭한 이야기꾼으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장기적인 문화 인프라의 구축에 필요한 투자이다. 문화예술 인프라의 구축은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숙성을 필요로 한다. 지자체의 장은 자신의 임기 중에 거대한 사업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을 버리고 하나의 초석을 놓겠다는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의 졸속진행에서 오는 폐단이 따른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유사 사업(예 : 지자체 주최의 축제들)의 중복 투자에 의한 예산의 낭비는 물론 대중의 예술 향수에도 식상한 인상을 낳는다.
 

문화관광 진흥을 위한 정책이나 전략이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의 마음이 딴 곳에 가 있으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다.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이나 실천하는 사람들, 여기에 참여하는 참가자 모두가 한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일은 마치 불경을 베끼는 사경(寫經)의 일처럼 일종의 수행으로 정성껏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괴테 하우스가 괴테의 유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괴테가 산 시대를 잘 구현해 놓았듯이, 창원시는 우성의 고택을 잘 활용하여 유교에 바탕을 둔 조선시대의 인문과 예술의 전통을 우성 김종영 선생의 고매한 인품과 예술 세계에 접목, 후세 교육을 위한 산실로 만들어야 한다. 그 일은 참으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소중한 일이다.

<김종영탄생100주년기념 학술세미나 원고, 경남도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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