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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삼순 / 소나무가 전해주는 말

김종근

소나무가 전해주는 말


주삼순의 푸릇푸릇한 소나무 작품을 보면서 문득 추사가 제주도의 유배지에서 그린 한 폭의 세한도 그림을 떠올린다. 이 그림은 공자가 말한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 -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는데서 연유한 그림이다.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다며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 보내준 그림이다. 소나무와 같은 굳은 기개의 우정에 대한 보답으로 김정희는 세한도를 보내면서 서로 오래도록 잊지 않는 친구로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장무상망이라는 인장으로 남겼다.

주삼순의 소나무는 필법과 테크닉, 재료와 구도에서 추사의 세한도와는 전적으로 그 의미와 형식을 달리한다. 또한 기존의 소나무를 그리는 몇 명의 작가와도 그 형식과 패턴을 달리한다. 예를 들면 기존의 중국의 동양화나 한국의 그림처럼 원근법적 구도도 없을 뿐더러 소나무 전체를 묘사하면서 소나무의 이미지와 풍경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작품의 동양화와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사의 그림이 떠오르는 것은 이 대작의 소나무 그림들이 주는 선명한 인상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는 매우 정교한 필치로 솔잎을 묘사하고, 소나무를 우리들 눈앞으로 끌어당긴다. 보란 듯이. 그리고 그의 소나무는 정조 있고 기품과 격조를 갖춘 소나무의 부분을 전면에 리얼리티하게 부각 시킨다.

그런데 그녀에게 여전히 의문점은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어떤 이유로 그녀가 소나무에 흥미를 갖게 되었는 가이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소나무를 즐겨 회화의 모티브로 삼는 것은 우정이나 의리에서 흔한 일이지만 여류작가가 그리는 것은 아주 드물고 귀한 편이다. 아마도 그녀에게 이 주제는 다른 모티브에 비해 귀중한 존재로 인식되었음은 확실해 보인다. 중국에서도 소나무는 백년 계획으로 심는다고 할 정도로 고귀하고 숭배 되어진 대상을 염두에 둘 때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가가 처음부터 이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한 소나무를 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회화로 전향한 그녀는 풍경화에서 시작하여 정물로 그리고 꽃그림으로 10여년 이상의 다양한 주제를 섭렵한 화력을 지닌 작가이다.

그러기에 그가 모티브로서 선택한 우리의 소나무는 분명 그 의미를 곱씹어 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더 작가에게 묻지 않았다. 그 대답으로 인하여 그림이 주는 의미를 축소시키거나 제한할 실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소나무는 특히 우리 선조들이 지조·절개·충절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여긴 대상이었으며 대나무·매화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라 숭앙했던 대상이 아닌가? 작가는 그러한 지조와 절개 충절을 상징하는 속마음을 들어 내보이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요즘의 변절스런 세태와도 크게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세상이 척박하고 변덕이 심할수록 되새겨 볼만한 소나무의 절개가 그리워 진 탓은 아닐까. 이렇게 소나무는 우리에게 상징적 표현 이외에도 오랫동안 삶과 죽음을 잇는 영원한 수목으로 신과 인간이 만나는 ‘통로’로 간주된 중요한 테마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이 테마를 훨씬 다양하고 풍부하게 열어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벼랑 끝의 바위틈이나 바닷가 모래땅 같은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며 온갖 풍상을 시달리며 의연하게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이 소나무이다. 작가는 이러한 소나무의 생명력을 보여주고 싶은것이다. 이미 그녀는 여성작가 답지 않게 강인한 남성의 상징적 이미지에 주목하고 있고 향후 그의 작품에 전개 될 스케일이나 방향에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시조에서 읊어지듯 ‘낙락장송’이나 ,‘독야청청’ 같은 푸른 소나무의 생물학적인 성질이 그대로 그림 속에 담긴 사실이 그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 푸름의 독야청청 속에 작가는 선비의 고고한 정신과 기개를 내면의 의지와 일체화 시키는 것으로 작가의 목적성을 두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주삼순이 그린 소나무는 자연의 일부를 넘어선 정신적인 사의를 전달하는 동양적 매개물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의외로 화폭 속에 소나무는 우리가 흔히 보았던 흔한 소나무의 단면은 아니다. 소나무의 전체를 생략하고 부분적으로 일부를 담아내며, 소나무의 훨씬 리얼한 생태를 다부지고 꼼꼼하게 그려낸다. 푸릇한 표현이 그렇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잘 정돈된 소나무의 이미지가 주삼순의 특성을 돋보이게 한다.

나무의 줄기도 곧게 하늘로 뻗어 있으면서 그 곧음을 둘러싸고 솔잎들이 차분하고 정리된 모습으로 클로즈 업 된 것들은 그만의 특징이 될만하다. 한결 부드럽고 담백하게 처리된 소나무 나무껍질도 용의 비늘처럼 섬세하고 매끄럽게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 화폭을 가로지르며 중간에 당당한 나무 모습은 이미 보통의 인상을 지닌 소나무가 아님은 쉽게 짐작하게 한다. 또 나무의 솔잎마다 정성스럽게 세심하게 그려놓은 솔잎의 개체들이 모여져 숨 쉬는 생명체처럼 층층의 색깔로 생생하게 보는 이의 시선을 즐겁게 한다.

그러기에 이 소나무들은 현실적인 풍경이며 그 모습을 통하여 자신의 의지와 감정을 세우려는 의지를 지닌 대상으로 이상향의 소나무이다. 그러면서 잡목 숲처럼 절개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거친 삶의 태도를 은근히 직시 한다 그가 아주 명료한 시선으로 소나무의 상징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거나 조명하지는 않으면서 소나무의 특질과 조형미를 포착 하면서 사물의 구체성에 실현 시키는 과정은 흥미롭다. 충분히 그림 속의 소나무에는 송백의 무성함도 담겨있고 ,변함없는 푸르름도 있다. 또한 지조와 절개도 아우르고 있어 지난 30년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 1위가 소나무였다는 이유와 사실을 다시금 눈돌리게 한다.특히 소나무가 우리 조상들에게 늘 정신적인 안정감, 의존의 대상이 되어 온 것처럼 그의 소나무는 그런 정직함과 담대함을 준다. 물론 소나무에 인격을 부여하는 차원의 소나무보다는 실체 존재를 돋보이게 하는 형상화에 그의 그림은 더 가깝지만 말이다.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특별한 상징으로서 주삼순의 소나무는 오늘날 우리에게 그림이 가진 내면의 현실의 삶의 태도와 의미를 돌아보라고 말하는듯 하다. 또한 청색으로 강인한 느낌을 주면서 조화를 이룬 소나무, 적색과 화해면서 부드러운 감성으로 품에 안은 소나무 이런 다양한 구성들이 일관되면서 강렬하게 우리들 내면을 흔든다.

물론 이러한 높은 상징성의 의미와 구체적 표현의 균형 속에서도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조롭게 표현된 솔잎과 좀 더 분명하지 않은 기법의 일반성이 그의 회화를 덜 회화적으로 보일 우려가 있으며 그의 화풍을 애매하게 정착 시킬 염려도 있다. 그러나 아주 명확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가진 소나무만으로 첫 개인전을 갖는 작가에게 이러한 철저한 주제의식은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작가의 자세이다. 세월을 변함없이 한자리를 지키면서도 신성을 지닌 소나무, 한민족의 강인하고 끈질긴 근성과 의지를 푸르름으로 보여주는 기개와 풍유의 정신이 그의 그림에서 더욱 진하게 풍겨 그 향기가 오래도록 그의 예술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


김종근 | 미술평론가 . 아트앤 컬렉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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