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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에서 절개로의 변신, 타시스트 권기자.

김종근

얼룩에서 절개로의 변신, 타시스트 권기자.

거대한 전시장 공간에 100–200호 크기의 대형작품들이 여러점 이웃하여 자리하고 있다. 그 색채는 , 빨강, 파랑, 혹은 검은 색 바탕위에  다양한 컬러의 물감 색선들이 위에서 아래로, 좌우로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Natural (2011-16) 시리즈의 작품들이다.
혹 감상자들은 이게 뭐지? 작가는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할까? 왜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물감들은 흘러내릴까 ? 
권기자의 작품 앞에서 서면 그런 질문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러나 이 작품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잠시 1950년대 프랑스의 미술운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Félix Fénéon)은 기존의 아카데미즘 화풍에서 탈피,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추구한 일련의 인상파 화가들을  얼룩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뜻의 <tacheist.타시스트>라고 명명했다. 
그 이후 20세기 초 화면에 등장하는 얼룩진 물감들의 작품을 통틀어 거친 터치의 표현주의적 요소인 “tache 얼룩”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1953년에는 비평가 피에르 게강(Pierre Guéguen)이 샤를 에스티엔(Charles Estienne)이 기획한 전시회에 대해 야유와 조롱 섞인 표현으로 이 단어가 쓰이면서 마치 앵포르멜 개념처럼 통용되기도 하였다. 
이 미술운동에 가담한 대표적인 작가가 장 미셀 아틀랑(Jean-Michel Atlan), 조르주 마티유(Georges Mathieu), 앙리 미쇼(Henri Michaux),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 안토니 타피에스(Antoni Tapies)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기하학적 추상에 대한 심한 반발로 이들은 엄격한 화면 구성을 거부하고 작가의 창조적인 직관에 따른 자유분방한 붓놀림을 진정한 미술의 특징으로 삼았다. 
권기자에게도 이러한 기존 평면 회화의 개념에 대한 화면구성을 거부하려는 저항적 시선이 작품 전체에서 발견된다. 
자연을 주제로 하지만 그 자연을 한정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좀 더 폭넓은 의미로 확장, 해석하면서 마음속에 자연을 예술의욕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물감을 흘린다.
그리하여 화면을 휩쓸듯이 그리기도,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거나 흘러내리게 하면서 장엄한 화폭을 연출하는 타시즘(Tachism) 미술에 동의하고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는 권기자의 화폭에 등장하는 물감 흘러내리기의 출발이 현대미술의 어느 지점에서 시작 되었는지 어느 정도 해명 되었다. 앵포르멜의 선구자 장 포트리에(Jean Fautrier)처럼 권기자의 제작 스타일은 종종 튜브에서 직접 짠 물감을 그대로 캔버스 위에 올려놓는 것에서 펼쳐진다.
어떤 물체를 묘사하거나 그리기보다는 위에서 아래로 ,물감과 오일을 자연스럽게 떨어뜨려 흘리는 과정을 반복 한것 임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스런 선이 만들어지고, 이 선들이 쌓여 릴리프적인 줄긋기의 평면이 형성되고 마지막엔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한다. 
권기자의 화폭에 이 물감의 흘러내리기 기법은 적어도 최소한의 규칙과 이미 자연스레 맡겨진 형태로 창조되는 순수한 과정을 거친다.
생성시대 (2000-2009)를 지나 Space life(2009-2011) 연작에 도달하기 까지 작가는 실험과 도전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특히 Space life 시기에는 다분히 서정적 추상화풍을 떠올리는 우연한 효과를 구름과 같은 이미지들을 화폭 속에 두면서 우주의 생성과 순환 그리고 빛 등을 지속적으로 다뤄 온 것에서도 분명하게 제시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권기자의 작품은 화면 가득 물감을 메우는 전면회화 (all over painting)에 훨씬 근접해 있다. 그러고 보면 90년대 초 그가 추구해온 흘러내리기의 `자연(nature) 시리즈는 이런 타시즘의 모든 스타일을 아우르는 스펙트럼형 작가임을 말해준다.
그의 이러한 의도적 행위는 물감의 우연한 속성과 어울리며 생생한 리듬감 넘치는 회화를 만들어 또 다른 자연의 세계를 의미하는데 화폭에 불규칙적으로 그러나 자연스럽게 그어진 선들은 마치 직조된 반복무늬의 타피스트리를 떠올리게도 한다.
마침내 이 무수히 많은 선들이 한 줄씩 모여 생생한 리듬으로 승화하면서 우리에겐 또 다른 내면의 숨결을 호흡하게 만든다.

작가는 초기부터 끊임없이 모든 생성과 순환, 흐름을 자연의 질서에 두고 그 질서 속에 숨겨진 생명력과 에너지를 화폭에서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바 있다. 
그래서 캔버스 안에 생명과 에너지가 감지되고 존재와 자연의 활력과 운동이 공존을 주장하는 이 모든 작품들을 `자연`이라고 그는  부른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전적으로 모두 타시즘에만 의존해 있지는 않아 보인다. 어떤 작품에서는 바탕색을 칠한 후 다양한 빛의 아크릴 물감을 붓끝으로 캔버스에 조심스럽게 떨어뜨리는 치밀함도 지키고 있다. 
그 “떨어진 물감들이 서서히 흐르다가 맺히고 맺히다가 흐르면서 덧붙여지고 겹쳐지면서” 아름다운 선들이 절묘한 느낌으로 탄생한다. 이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 낸 선들이 거대한 파노라마의 리듬감으로 또 장엄함이 연출 되는 것이 곧 그의 작품에 본질이다.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색감도, 변화, 다양한 재질감, 우연의 효과로 추상적 형상이 창조된다.
이미 권기자 작가는 “바이털리즘, 우주에서 자연으로 무한 순환하는 작품의 강렬한 색채로 필연성과 우연성을 동시에 담아내면서 간결성과 누적된 리듬감으로 현대성이 잘 담겨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의도적인 흘러내리기와 필력과 거친 붓 터치, 붓에서 뚝뚝 떨어져 생긴 물감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즉 오일을 위에서 떨어트리는 작업에서 한 단계 나아가 아래로 떨어진 것들을 모아 칼로 자르는 단면 보여주기를 결행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동일한 흐름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작가로서는 매우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변용의 행위에 해당한다.
권기자의 타시즘적 흘러내리기 화면에서 이제는 아래로 떨어져 쌓인 물감을 횡으로 과감하게 절단하는 형식을 선택한 것이다.
나는 작가의 치열한 이 변형을 매우 인상적이고 혁신적인 아방가르드적 행위로 판단, 정의한다.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형식과 정신을 요구한다. 그 흘러내림의 형식에서 진보 된 그 집적 된 물감에 대한 절단은 그만큼의 
각오와 작가정신을 요구 한다. 
그 변화 자체만으로도 어려운 것인데 무엇보다 그 변화가 매우 인상적이며 흥미 있는 표출이란 사실에 그 변신은 탁월하다.
그것은 마치 조각가 아르망이 시계나 악기를 집적하는 작업패턴에서 사선 형식으로 자르는 과감한 표현방법에 필적 할만하다. 
문제는 권기자의 흘림에서 그것을 다시 모아 절개하는 그 프로세스의 시각적 효과와 표현결과가 놀랍도록 근사하고 신선하다는 
사실이다. 권기자의 그 이상적 혁신의 용기로 태어난 그 신작들을 그래서 난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김종근(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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