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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클어진 풍경의 진주 같은 눈물 > - 유부강

김종근

<헝클어진 풍경의 진주 같은 눈물 > - 유부강


김종근 (미술평론가)

 

 

그림을 본다는 것은 우리들 가슴과 그림이 만나는 것을 허락한다는 행위이다.

그러기에 그림은 우리에게 즐거움 때로는 놀라움, 기쁨 또는 가슴 벅찬 희열을 가져다 준다.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는 예술의 본질은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 형상을 버리고 마지막까지 추상회화를 보여준 마크 로스코 조차도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을 인간과의 소통에 둔 것은 놀라운 일이며 그것이 추상회화의 힘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 앞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작가의 간절함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위로와 치유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유부강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로스코 그림 앞에서 느꼈던 그런 경련과 떨림을 보았다. 솔직히 슬펐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마음이 아팠다.

물론 그는 화폭 속에서 아무 말도 강요나 지시하지 않았지만 작품 속에서 작가의 절규하는 음성이 아프게 들려왔다.

그가 화폭 위에 펼쳐놓은 수많은 제스처는 참으로 아득했고,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온통 표현주의적이다. 마치 미술사가 로버트 린튼이 '인간의 모든 행위는 표현적이다. 제스처란 의도적인 표현행위이다. 모든 예술은 작가와 그 상황의 표현이며, 그 중 특히 감정이나 정서적 메시지를 방출 또는 전달하는 시각적 제스처를 통하여 우리를 감동시키고자 하는 예술이 바로 표현주의 예술이다라고 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 했다.

100호를 웃도는 한지와 종이의 대작 라이프 시리즈 Life Series 에서 풍겨오는 강렬한 첫 인상, 전후좌우로 가로 지른 선들은 이 그림을 그린 작가가 설마 여류작가라고? 의심을 할 정도로 검고 붉은 선들로 난무하고 있었다.

이 작업들이 주는 인상으로 보아 화면은 오히려 조형적인 미보다도 감정이 훨씬 강조된 열정과 목소리가 돋보였다.

태풍처럼 아니 허리케인처럼 휘감는 그의 격정의 회오리는 강렬하게 휘두른 선들과 겹침으로 더욱 회화는 요동치는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했던 유부강 풍경화 작품에 빛의 표현이나 추구는 점진적으로 가려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 어떤 표현의 욕망이 화폭 가득 흘러 넘쳤다.

이렇게 회화는 선이고, 색채이며, 제스처로 이루어진 것임을 유부강 작품의 이미지들이 명확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리하여 수십점의 그림들은 격정의 순간과 감정의 정점에서 흘러내리는 결정체로 아픈 진주 같은 눈물로 내게 다가왔다.

아마도 작가에게 예술이란 인간의 본능적인 외침이나 표출 등과 동일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여졌다.

우리가 표현주의 화가나 추상 표현주의 작품들에서 그런 특성을 빈번하게 보아 왔음은 결코 우연의 일치만의 아닐 것이다.

치열함이 화면을 격정적인 선의 붓질로 가득 차게 하고, 색채가 마그마처럼 화폭을 뒤덮는 뜨거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림을 보는 내내 궁금증이 쓰나미처럼 덮쳐왔음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특히 원색적인 색채와 검은색과 흰색이 중첩되며 만들어 내는 색채 대비나 하모니는 그의 언어가 주고 있는 의지와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예를들면 외롭고 쓸쓸하게 펼쳐진 겨울풍경 같은 스잔함과 앙상함이 때로는 신경질적인 선들과 부딪치며 충돌하는 작가 내면의 심경을 더욱 요동치게 하고 있다.

그것은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일조한 불안, 증오, 애정과 같은 인간의 본성을 격한 색채와 왜곡된 선으로 나타냈던 화법과 동일한 맥락으로 읽혀진다.

이 모든 것들이 주저 없이 내려친 붓질과 어울려 흡사 잭슨 폴록의 화폭처럼 폭발하고 있었다. 이렇게 그의 테마는 불투명하고 추상적이다. 야외 풍경을 그린 풍경화도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 풍경들조차도 서정적이고 자연적이기 보다는 플롯(plot)을 비틀어 음악적 긴장감을 성취 할 만큼 거친 리듬감으로 멜랑콜리하거나 을씨년스럽다.

혹시나 낭만적인 표현을 기대했던 사람들도 이내 폭발적이며 뜨거운 뚜렷한 음색으로 인해 신경질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연주처럼 아픔을 느낄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가 주목 할 만한 작품인 150호 크기의 연작형태인 <Existence I, II, III>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세 명의 인물이 각각 서있는 입상의 작품인데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터프한 붓 터치에 감춰진 무표정의 인물들에서 비애와 알 수 없는 작가의 비극적인 스토리가 포착된다.

그럼에도 유부강은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면서 격정적인 표현의 심경표출로 그의 작품에 존재감을 극명하게 실현하고 있음은 우리가 가장 지켜 볼만한 부분이다.

풍경 작업들이 다분히 구상적인 경향에 채도 높게 표현되고 있지만 추상 작품들은 파토스적인 색채와 제스처로 충실한 감정의 작품세계에 전적으로 몰입하고 있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화면 가득히 투박하고 거친 선들과 강렬한 원색의 색채를 덧입혀 강인한 감정의 호소력을 얻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지금 작가는 이국땅에서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화폭 속에서 빅뱅처럼 발산하고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날카롭게 비틀린 야산의 풍경 속에서도,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빛의 분광 속에서 다른 작가에게서 볼 수 없는 정직함을 토해내는 과정에서 그러한 상상은 입증된다.

그런 면에서 유부강의 작품세계는 진지하고 솔직하며 진실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알몸 그대로 보여주는 절대 추상표현 작가 군으로 분류되어도 좋을 것이다.

김영호 교수가 지적한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화면을 기조로 난무하는 붓 터치와 세밀한 선들이 거칠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그가 작품 속에서 명백하게 빛의 세계를 암시하는 <Sunrise>, <Sunset>, <White Mountain> 테마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빛의 세계에 머물기보다는 본능적인 인간의 모습에 서있음을 이 작품들은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신시내티라는 미국의 낯선 땅에서 거주하는 에뜨랑제, 이방인으로서의 살아가는 추억과 삶, 그 대지와 하늘 아래서 날마다 가슴속에 펄럭이는 고향의 향수, 그리움, 인간의 숙명, 예술가로서 타고난 뜨거움. 그 모든 것을 노스탤지어에 실어 피처럼 토해낸 것이 바로 그녀의 피 같은 작품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려는 침묵으로 가득한 내면의 울림, 그 헝클어진 풍경 앞에선 인간, 그 쓸쓸함에 고개 숙이고 그 아픔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위로 받고 치유 받는다.

그리고 그것이 유부강 회화가 우리에게 건네주는 진정한 위로, 진주 같은 눈물의 힘이자 생명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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