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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옥이 사랑한 운명적인 ‘달 항아리’

김종근

도대체 예술가들에게 있어 백자 달 항아리의 치명적인 매력이 무엇이 길래 그토록 많은 작가들이 달 항아리에 매달리는 것일까 ?

만약 어느 작가가 달 항아리를 회화의 모티브로 줄기차게 물고 늘어진다면 그것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봐야 할 일이다.

국내외의 무수히 많은 예술가와 애호가들이 백자를 찬미했지만 이 달 항아리를 칭찬한 사람들 가운데는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와 영국의 도예가이자 컬렉터인 버나드 리치(Benard Leach)가 한국을 방문 후 달 항아리를 싸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 라는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명품 컬렉터로 알려진 이우복 회장도 오래전 당시 집 한 채에 버금가는 달 항아리를 구입 해놓고는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그 달 항아리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고 털어 놓은 적이 있다. 

무엇이 이토록 달 항아리 하나가 컬렉터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대영박물관의 달 항아리를 본 영국의 여배우 쥬디 덴치(Judo Dench)는 박물관에서 가장 맘에 드는 한 점을 고르라면 수많은 전 세계의 유명한 국보들을 마다하고 이 달 항아리를 고르겠다고 했다.

그 이유란 것이 '하루 종일 이것만 보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다. 보고 있자면 세상의 근심걱정이 사라진다.'라고 했다니 이 얼마나 달 항아리의 매력과 가치를 콕 찌르는 말인가 싶다.


김연옥 화가의 경우도 비록 출발은 다를지라도 백자의 매력에 빠져서 달 항아리를 줄기차게 그리는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경우는 그 달 항아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운명적인 무엇이 보태져 있다. 

뜻밖에도 김연옥의 부친은 여주에서 도자기 사업을 하였고, 그녀는 젊은 시절 아버지의 공장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유약을 바르고 투각을 하거나, 직접 그림을 그리는 등 아버지의 사업을 무려 7년이나 도왔다.

어린 시절 수년간 가마에 머물면서 그녀가 자연스럽게 달 항아리 같은 품격 있고 은근한 백자의 매력을 듣고 눈여겨보았을 것이고 그러한 영향이 지금의 달 항아리에 푹 빠지게 되는 필연적인 숙명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작가 알랭 드 보통도 『영혼의 미술관』이란 에세이에서 유독 조선의 백자 달 항아리를 소개하면서 표면에 작은 흠도 많고 부분적으로 변색되고 윤곽선도 완벽하지 않은 그 달 항아리가 “겸손(modesty)의 이상”을 보여 준다고 했다.

우연히도 김연옥도 백자 작품에서 그 겸손을 어쩌면 절대적으로 공감 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그녀는 그보다 더 백자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발견하고자 했다.

그녀는 겹- 하늘에서 자연의 그 창공을 떠올리고 ,겹- 길조에서는 황금 빛 무엇인가 좋은 징조를 예감한다. 그가 직접 해보았던 투각의 도자기에서는 모든 인간이 꿈꾸는 부귀를 상상하는가 하면 , 백자에서 여인의 단아한 모습, 부귀영화와 때로는 초연함과 무거운 침묵을 발견해 모두 그림으로 담아낸다. 

알랭 드 보통이 “항아리는 궁색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에 만족할 뿐.”이라는 발언과 18세기 조선시대 달 항아리를 두고 “나의 예술은 모든 것이 조선 백자와 백자항아리에서 나왔다”고 김환기는  격찬했다.

이후에도 너무나 많은 예술가들,예륻들면  강익중, 정광호, 김병진, 손석.이승희, 고영훈,주세균, 황혜선, 구본창, 신동원, 박영숙, 한익환, 박부원, 노세환, 신철, 박선기, 이동엽 이들 모두가 백자 달 항아리를 나름대로의 어법으로 풀어내고 있거나 도자기를 창조하는 작가들이다.

그러나 아직 백자 달항아리의 예술적 영감과 그 영향은 시들지도 않았고 끝나지도 않았다. 

김연옥은 이제 김환기 이후 많은 위에 열거한 달 항아리파 작가들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많은 상징성과 의미를 담아낸 김연옥의 작품에는 흰 바탕색과 어울리는 욕심이 없이 너무나 순정적인 백자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넉넉한 형태미와 착한 선으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재현 해 내는 전통성을 충실히 계승하고도 있다. 

마치 희고 깨끗한 살결과 둥글둥글한 생김새가 보름달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달 항아리라는 그 참 뜻을 김연옥은 온전하게 그의 화폭속에 담아내려 다양하게 시도한다. 

그가 표현한 달 항아리 속에는 이렇게 모든 삶의 의미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난번 전시에서 김연옥은 “흠”(欠)이라는 윤곽이 이상적인 형태의 원의 괘도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겉 표면에 작은 흠집과 변색이 있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 무관심의 달 항아리 연작을 통해 자신의 겸허와 슬기로움을 담았다는 평가를 충분하게 받았다.

최근에 작품들은 부쩍 더 근본적으로는 전통적인 달 항아리의 형태에 충실하게 다가가면서 한국인의 정서와 미의식 ,정신 등을 작품 속에 투영시키려는 변별성을 추구하고 있다. 

너무나 부드럽고 우아하면서 격조 있는 전통의 향기를 그대로 품으면서 새로운 미감을 뿜어내려는 의욕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마치 달 항아리만이 간직한 고유의 단순함과, 여백, 부정형이 갖는 무심한 아름다움의 극지를 절정으로 하여 우리만의 정서와 미의 의미론적 본질을 캐내려하듯이 말이다.

작가는 편안하면서도 넉넉한 인상을 주는 달 항아리에 각각의 명예를 부여하는 형식으로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표현의 세계에 차별화를 정착 시키고 있다.

그녀의 그림이 다른 작가들과 다른 점은 바로 겹-온유에서 보이는 부드러움과 순결한 달 항아리 하나로 화면 가득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완벽한 구형이 아니라 일그러진 형태로 빚어진 달 항아리 특유의 여유로움, 그 위에 간결하게 내려놓은 선들이 그것과 교차하면서 조선 백자의 그 지극한 아름다움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그 내면에는 동시에 그녀가 숙명적으로 만나고 사랑했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도 모른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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