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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와 고흐의 꿈을 가진 화가의 꽃을 위하여

김종근

19세기 프랑스. 르누아르와 함께 인상파를 이끌었던 한 화가가 있었다. 그는 수련을 너무 좋아했고 60살이 되어서도 30년간 수련 연작을 무려 200여점이 그려냈다. 그가 인상파를 낳게 한 작가 끌로드 모네이었다.
 
“모든 물체에 고유색은 없다. 색채는 빛의 변화와 함께 한다.”며 빛이 비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동감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수련의 풍경을 매혹적으로 담아냈다.

그의 화폭에서 우리는 평생 자연과 꽃, 빛과 색채에만 몰입한 노 화가의 성스러운 모습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한 예술가의 아름다운 초상일 것이다
.  
여기 끌로드 모네와 반 고흐를 아주 흠모하고 좋아한 중년의 여류화가가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림을 시작한 것은 아니고 , 일찍부터 교단에 서면서 10년 넘게 채색화가 밑에서 사숙했고 마침내 50대가 되어서야 그녀는 소녀시절 꿈꾸었던 화가의 꿈을 이루었다. 바로 이 그림의 주인공 조은식 화가이다. 
그녀는 교장 선생님이었던 아빠를 따라 안면도에서 태어났지만 천안의 북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미치도록 푸른 하늘과 부대끼는 바람소리와 외롭게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마치 아를르의 별이 빛나는 밤의 반 고흐처럼 말이다.

그녀는 새들의 소리를 가슴속에 품고 모네 같은 화가가 되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어린시절 보았던 그 바람소리를 기억하면서, 그녀도 아빠처럼 어른이 되고 교장 선생님이 되었다. 그 철모르는 때 냇가에서 물고기 잡던 모습과 바람에 서걱이는 상수리 나무의 소리로 가슴앓이 했던 풍경들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화실에 가득 찬 다양하고 풍부한 이 그림들은 바로 그녀가 느끼고 감격했던 아름다운 순간들을 추억처럼 풀어낸 흔적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에는 맨드라미며 해바라기 안개꽃들로 화면 가득 채워져 있다.
풍성하고 아스라이 피어오른 수국이 있는가 하면, 기다란 수수밭의 대작 풍경, 그 외에도 달맞이 꽃 ,안개꽃, 연꽃 등이 화실 속에 넘쳐났다.  
아마도 그녀의 그림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매화를 그린 여러 편의 연작이다.
특히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梅日生寒不梅香)고 할 만큼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꼭 위와 같은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작가는 유독 매화와 수련의 풍경에 애착을 가지며 탐닉해 보인다.
특히 담백하게 묘사한 <매화> 작품은 문득 외롭게 살다간 빈센트 반 고흐의 매화 그림이 겹쳐질 정도로 담백하고 마음을 끌어 당겼다.
 “그림이란 감동의 순간들을 표현해야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그림이 지닌 의미는 그녀가 살아오면서 만난 꽃들을 향한 한없는 애정이자 소녀시절 보아온 것들에 대한 감동의 순간에 대한 헌화이다.

그녀는 아직도 여전히 매화에 빠져 있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언젠가 법정 스님이 머물던 순천의 선암사에 들렀을 때 그곳의 오래된 등걸에 가지런하고 단아하게 피어오른 매화꽃에서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고백처럼 펼쳐진 화폭에는 꽃들을 애무하듯 조용하고 고요했지만 열정이 그대로 화면에 녹아있다.
어떤 매화는 관능적인 환상성이 있는가 하면 색채가 절제된 모습의 매화도 있다. 
이러 매화들은 기본적으로는 강렬한 색채와 환상적인 분위기로 표현 되지만 어떤 작품은 알 수 없을 만큼 비구상의 세계에 까지 넘나들고 있다. 
아마도 그의 작업이 채색화인 때문에 수없이 많은 붓질과 덧칠들로 인해 색들이 겹쳐 불투명한 질감이 더욱 그러한 분위기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꽃들은 아주 분명하게 단순한 꽃들의 정물화를 넘어서 어린 시절 그녀가 보았던 시공간을 뛰어넘는 추억의 시선처럼 몽환적인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매화에 중독 된 것으로 보아 모네가 물을 너무나 좋아하여 배 위에서 죽고 싶다고 한 것처럼, 매화를 바라보며 매화꽃 위에서 죽고 싶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경이로울 만큼 침잠된 감정이 돋보이는 것이 소품이지만 나로서는 <매화>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가만히 보면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두 개의 특징을 보게 된다. 
하나는 구상 작품들이 매우 사실적인 화풍의 꽃그림들로 완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것은 수업시절의 철저한 묘사가 중심이 된 회화적 구성 때문으로 보여진다. 다른 하나는 형태가 모호하게 분 불명한 형태감이 뒤섞인 비구상 분위기가 그 하나이다.

특히 형태와 꽃들의 선이 겹쳐지면서 형태를 은밀하게 감춰두는 모호한 붓자국의 추상성이 그 하나이다.
이것들은 추상화면에서 배어나오는 층간의 공간감과 깊이를 색채의 뒤섞임으로 그만의 추상적인 평면을 만들어 내고자 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녀 작업의 방향성이 좀 더 분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기법과 주제에서. 그녀는 충분한 묘사력으로 매화의 형태와 절제된 색채 속에서 그만의 매화꽃을 충분히 담아 낼 역량을 가지고 있다.
 
결국 클로드 모네가 “소재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소재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것을 그리고 싶다.”고 남긴 말처럼 명확하게 조은식 작가는 인상 깊은 매화처럼 또 다른 매화의 꽃을 그릴 것이다. 
화실 문을 나설 때 그녀는 내게 나지막하게 멘트를 날렸다.

 “요즘 그림을 그릴 때는요, 나는 매화가 꼭 사람처럼 느껴져요” 그녀가 화폭에서 얼마나 그 대상들과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지 나는 그녀에게 되묻지 않았다. 이 말로 난 충분했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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