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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과 꽃의 이중주 -하진희 작품

김종근

화가에게 있어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물음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작품세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주제의 선택은 향후 작품세계는 물론 이념이나 특질과도 관계되기에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하진희 작가의 주제와 구성은 독창적이며 다소 이채로워 보인다. 화면 가득 그려진 불상과 그 위에 놓인 커다란 꽃과의 만남이 그렇다. 그런 하진희 작가의 작품이 주목 받은 것은 제15회 대한민국여성 미술대전 수채화 부문에서 ‘오랜 기다림’의 작업으로 대상을 대한민국 수채화 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 하면서 부터이다. 그녀의 작품은 장르에 있어서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수채화 작품이기에 더욱 그러한 측면이 있지만 주제에서도 각별하였다. 

이미 작품의 첫 인상에서 그녀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충분한 수련을 필요로 하는 수채화로 불상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담아냈다. 보통 수채화하면 아주 가볍게 그리는 그림 정도로 치부 해버리기 쉬운데 상대적으로 작품의 완성도 못지않게 실패율도 높은데 전혀 그러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바위의 질감이나 꽃의 형상에서 진짜 불상처럼 똑같이 묘사하는 표현력이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 옆에 한문으로 불경의 글씨를 한자씩 써 놓아 그간의 경륜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처럼 대부분의 작품들에 테마가 불상과 주를 이루고 그 옆에 불경이 가지런하게 안진경체로 마치 서각처럼 새겨져 있다. 화폭 그 위로는 꽃, 특히 모란과의 작약이 특징처럼 자리 잡고 있다. 가끔 불교의 석가를 의미하는 연꽃과 조화를 이룬 작품도 등장 한다. 이러한 모티브의 선택은 역사성에 대한 그 향기에 관심도 있겠지만 불상과 꽃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와 상관성도 무관하지 않다.

먼저 불상은 불교의 상징으로 작가의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 옆에 등장하는  작약은 서양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보통 성스러운 꽃 혹은 온전한 행복 혹은 행운을 상징한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그림 속에 빈번하게 등장한 것을 민화나 궁중화에서 발견 된다.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 대표작품이 그녀에게 큰 명예를 가져다준 <오랜 기다림>이다.이 작품은 그 특유의 불상으로 경주 남산의 칠불암을 소재로 한 것인데 그녀가 오래전부터 끈질기게 불상과 불경, 그리고 그 위에 꽃을 겹쳐 놓은 듯한 구성으로 안정된 구도와 차분한 색조로 풍경을 담아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특히 실제 불상을 촬영한 듯한 리얼리티한 감각으로 깊이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평가에서 그녀 작품의 기본적인 완성도를 잘 엿볼 수 있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와 같이 수채화의 다양성을 살려 불타 모습과 불경 서각이 나란히 자리하고, 그 위에 연분홍 꽃이 성스럽게 숭고함을 자아내고 있다.

그런 화풍에서 하진희의 작품은 성스러운 종교적인 감정을 뿜어내고 있다. 아마도 그녀의 작품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이 주제들은 은유와 상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종교적 신념과도 깊은 관계가 있어 보인다. 현재로서 그녀의 작품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불상과 꽃의 조화로 비쳐지는데 좀 더 특징적인 모티브의 구성으로 조화로운 분위기를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예를 들면 초현실주의적 기법의 화면구성이나 모던한 하모니즘 스타일의 선택이 그 방법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제 선택에서도 좀 더 평면적이지 않고 다양한 구성이 함께 한다면 그녀의 묘사력만으로도 충분히 만족 할 만한 불상과 꽃의 화음을 이룰 것으로 생각된다. 불상이라는 테마가 한정적이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화가 앤드류 와이어즈가 화가들이 고민하고 있는 주제에 대하여 매우 명쾌한 답안을 내린 것을 염두에 둘 필요도 있을 것이다.


“나뭇잎 하나, 나뭇가지 하나, 말똥 한 덩어리, 뭐를 그리든 상관없어요. 그것이 드리우는 그림자조차 멋들어질 수 있습니다” 는 말을 상기할 때 테마가 꼭 절대적으로 문제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유화에 비해 맑고 경쾌한 맛을 주는 하진희의 수채화는 유화처럼 풍부한 깊은 맛을 담아내고 있다. 보통 수채화가 여백을 둠으로써 그 시원한 인상을 주는데 그것을 배제하고 주제의 부각에 훨씬 무게를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특성도 흥미롭다. 작가는 중국에서 20여년을 생활하다 귀국하여 작업한 탓인지 보수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림 속에 그 보수성은 여전히 일상적인 풍경보다는 늘 불상이나 불경의 글자들이 새겨진 그림들을 지속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일관성이다. 그것은 불상이라는 주제와 꽃이라는 테마를 집약적으로 다룸으로서 독자적인 양식을 가지려는 작가의 세계로 해석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진희 작가의 그 열정과 의지는 마치 시인 헤르만 헤세가 그림을 통해서 인생의 커다란 시련을 치유하고, 수채로 그림 그리기에 심취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찾은 것을 상기시킬 만큼 강렬하다. 무엇보다 그러한 의지와 집요함이 하진희의 독창적인 불상과 꽃의 이중주의 예술세계를 더욱 크게 꽃 피우고 확장 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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