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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친 그리움의 끈. 기억 - 관계

김종근


“안녕하세요. 이렇게 답신 드려 죄송합니다. 답장을 쓰기 싫다든가 뭐 그래서가 아니라 쓰려고 펜을 잡을 때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뭘 써야 할지 모른 채로 그냥 앉아만 있게 되더군요. 바람이 세게 불더니 어느새 금방 가을이 흘러 가버렸습니다 .노란 잎사귀들을 찍으러 카메라를 들고 나가야지 하고 맘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시간이 나서 나가보니 시들은 나무 가지들만 남아 있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한때 화려하게 물들었던 나무들이 밤사이 불은 바람으로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고 황토색이었던 흙과 셀 수 없이 많은 색깔의 잎사귀들이 서로 얽혀 옷감을 짜내 었습니다......“ 

이 편지는 2010년 12월 7일 새벽 4시 47분 .
중국의 최고화가 쟝 샤오강이 그의 침대 앞에 붙인 편지의 일부이다. 

이 글 속에는 작가 이영균의 작업과 일맥상통하는 정신이 흐르고 있다. 바로 그 공통된 키워드가 작가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 어떤 기억에 대한 집요함과 바로 잔상이다.
이영균 작업의 출발은 어린 시절 그가 철없이 뛰어 놀던 뒷산의 성황당에 둘러쳐진 색색의 끈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을 그의 화폭으로 불러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인앤 아웃>등을 줄기차게 그려온 작가 쟝 샤오강 또한 기억에 대한 지속적인 변화를 탐구하면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업으로 그만의 독창적인 예술적 세계를 이룩했다. 뿐만 아니라 <기억과 망각>의 연작에서는 과거의 기억에 아파하는 인물들의 기억을 그리움으로 묘사했다. 이론가 못지않은 철학적 지식과 논리적 분석력을 지닌 그의 그림에 마지막 남은 진실은 기억에 대한 그의 견딜 수 없는 상처에 대한 흔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나에게 있어 작품은 인생의 증거며 모든 체험이 녹아 있는 삶이다.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삶인 것이다.” 

이영균의 작업도 그와 동일한 키워드를 지니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의 예술적 정체성을 인간의 삶과 죽음 혹은 그 관계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추구했고 , 생명력 찾기를 시도 했고 기억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사람들 사이에 얽혀진 하나의 관계였다. 그녀는 그것을 끈(cord) 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기억이란 기억은 모든 예술 표현의 이유였고 ,원천일 뿐 아니라 목적이자 작업의 중심이었다. 그녀는 그 기억을 머릿속에서 어떻게 기록하고 담아낼까를 고민했다. 초기 작업에서의 알록달록한 띠와 구성적인 배치의 화폭은 기억속에 자리한 성황당의 풍경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녀에게나 우리에게나 기억은 기억일 뿐이지 실재하는 잔상의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거나 기억하는 이미지는 편집되거나 걸러진 기억의 집적이었다.쟝 샤오강은 그것을 구상적인 이미지로 담아냈고 이영균은 가장 추상적인 단어와 형식으로 담아낸 것이 다를 뿐이다. 쟝 샤오강이 우리를 익숙한 인물의 표정과 사진 속 얼굴에 흔적으로 담아낸다면 이영균은 간결한 선들의 집적으로 낯선 추상적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초기에는 그녀가 다분히 시각적인 이미지가 강렬한 원색의 대립으로 조형적인 감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면, 최근 그녀의 작업은 보다 정제 되어 있거나 단순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구성에서는 미니멀적인 형태와 패턴적인 선의 흐름으로 그 조화가 만들어내는 유연한 선들을 마주할 때면 그녀의 기억이 얼마나 자신의 부대낀 세월을 통해 정제되어 걸러진 선이었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이 거부할 수 없는 기억의 흔적이 화폭 속에서 어떻게 지적인 언어의 메시지로 변환되는가에 끌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그녀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끈(Cord)의 정신적, 함축적 뜻을 지닌 상징성형상들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녀는 이 뿌리칠 수 없는 끈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 또 생명의 상징으로써 삶과 관계되며 연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역동적 에너지”를 드러내고 싶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만큼 인연 혹은 삶이라는 것이 인간이나 화가들에게 얼마나 지독한가를 보여준다. 이영균은 이 모든 예술의지와 고뇌의 순간들을 단순히 화면에 의존하기보다 지적이고 담백한 색채들로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탐문하고 있다. 화폭안에서 말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와 맞닿고 있는 지점이 어디이며 그것을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일이 예술임을 그녀는 비정형의 형태와 색채로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 깨달음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추상적이며 표현적이다. 이 기억의 잔상들이 어떤 때는 피어나는 꽃처럼 화사하게 아름답고 담백하게 다가오기도 하며 어떤 때는 너무나 조용하게 마치 무수한 실타래로 내려쳐진 안개 속에 가려진 추상적 풍경으로 등장한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추상의 지평으로 마침내 우리를 안내한다. 다만 우리는 그 기억의 편린 속에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녀의 작품은 우리가 그려낼 수 없는 혹은 기억 해 낼 수 없는 그리움을 이렇게 비춰주는 또 하나의 거울이 바로 그녀의 작품이 아닌가 여겨진다. 자유롭게 알록달록하고 형형색색 빛나던 끈들에서 시작하여, 가장 지적이고 이지적인 사유의 지평에서만 피어나는 기억의 생명체 그것이 그의 관계의 끈들인 것이다. 가만히 보면 그 끈들은 서로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중첩되며 수시로 교차된다. 때로는 가로지르며 사람과 사람들의 어울림처럼 혹은 인연처럼 혹은 나타났다 소멸한다.


우리가 모든 예술가들의 속내를 온전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소통 할 수 없듯이 그녀의 내밀한 공간에 이야기를 모두 다 들을 수는 없다. 설령 듣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지나온 그녀의 정제된 많은 시간과 공간을 지나온 관계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흩어짐처럼 아득할지도 모른다. 침묵하는 분위기의 색들이 만들어 내는 끝없는 흐름에 선들처럼 그녀의 작품들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기억의 한 층을 한꺼플씩 풀어내어 화폭에 풀어낸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그녀의 상흔과도 같은, 마음을 할퀴고 간 생채기가 얻어낸 빛나는 훈장 같은 것이다. 이영균의 화면은 치열하게 기억이라는 인간적 사유의 여지를 남겨둔 채 절제와 고요함으로 생명에 관한 오랜 이야기를 시각적 언어로 교감하고자 한다. 그자신이 회상했던 “유년기 놀이의 중심이 되었던 뒷산의 시각적 기억 이를테면 성황당, 색색의 끈 등에서 시작되는데 그 잔상이 리메모리(Rememory)되는 과정을 작품화” 했다고 했다. 그렇다 이영균은 우리의 아프고 사무친 기억과 그리움이 숨 쉴 수 있는 그런 집을 지어 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가 붙잡고 있는 끈이 삶과 작업을 연결하는 중요한 메타포가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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