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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딸, 방혜자 온 몸과 영혼으로 부르는 노래

김종근


방혜자 작가가 동의하든 안 하든 나는 그녀의 정신적, 예술적 스승은 자연과, 색채회화의 혁명가,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작품은 출발에서부터 앙리 마티스의 예술적 이념을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늘에서, 나무와 꽃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지, 또 힘든 하루와 빛이 우리를 둘러싼 안개로 빠져드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배워야 한다.' 고 마티스는 주장 했다. 마티스의 이 좌우명처럼 방혜자는 어린 소녀시절인 여덟 살 때 우연히 개울가의 물 위에서 햇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저런 것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이 평생을 빛의 모습을 그리는 숙명적인 화가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리하여 방혜자는 개울가에서 햇빛의 빛나는 모습에서 행복을 이끌어내는 법을 마침내 배웠다.

그녀의 예술철학과 마티스의 명언은 여기서도 묘하게 일치한다. 
“모름지기 그림이란 가장 황당한 모험과 부단한 탐구를 일컫는 말이 아닌가 ?”라고 마티스는 반문하면서 “내가 꿈꾸는 것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거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주제를  갖지 않는 것이다. 균형과  순수함과  고요함의 예술 두뇌의  진정제 같은 예술 그 육체적인 피로를 풀어주는  편안한 안락의자 같은 예술.“을 추구했다. 나는 방혜자 화백이 개울가에 반짝이는 빛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다는 예술가적 열망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어떻게 그 오묘하고 기묘한 빛을 화폭에 표현 할 것인가 ? 의심한다. 이러한 의지는 “황당한 모험이며 그 탐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욕심이야 말로 마티스가 말한 가장 “황당한 모험과 부단한 탐구”를 일컫는 말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방혜자 화백이 수십 년 동안 작품을 통하여 그 어린 시절 그가 보았던 빛을 위하여 그리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빛은 우리가 볼 수도 읽을 수도 없다. 빛은 다만 파동이고 입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방혜자가 빛을 표현하고 노래 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 한 일이며 그것은 예술가들이 꾸는 꿈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빛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햇빛이 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면 빛이 내 마음이 되고 나는 빛이 되어 그림 속에 들어가 노래한다 둘이 하나 되어 노래 부른다”.고 수없이 인터뷰를 통해서 토로했다. 그녀가 빛을 노래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미술사적으로 더 엄밀하게 방혜자는 폴 세잔느가 도저히 평면 위에 표현 할 수 없는 입체를 평생의 작업을 통하여 그리려고 했던 불가능에 대한 도전의 열망에 다름아니다. 결국 세잔느는 자연의 모든 대상을 평면 위에 마침내 입체적으로 표현 했다. 그러나 그것은 평면이지 결코 입체는 아니었다. 방혜자가 빛을 향한 수십 년의 피나는 헌사의 노래는 정말 세잔느의 이념과 너무나도 꼭 닮아 있다. 

이처럼 방혜자의 빛에 대한 표현과 예술적 열정은 그 누구보다도 훨씬 플라토닉하고 아가페적이며 더욱 종교적이다. 성경의 요한복음에 “빛이 있는 동안에 빛의 아들이 되려거던 빛을 믿어라.”라고 했던 것처럼 그녀는 사실 그 빛을 따라 살아온 <빛의 딸>이다. 50년동안 그러니까 1961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국비장학생 1호로 파리유학을 떠나 파리국립미술학교, 파리 국립미술 학교에서 수학하고 정착한 후 프랑스, 한국, 독일, 미국, 캐나다, 스웨덴, 벨기에, 스위스,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전시회를 가지며 그녀는 <빛의 화가>로 우리들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아니 그녀는 평생을 순간순간들을 정말 기도하는 마음으로 빛이라는 그 마법의 오로라에 영혼뿐만 아니라 모든 인생을 걸고 바친 순수한 예술가이다.


그 심정이 어떠했는가를  그녀는 “빛을 한 점 한점 그릴 때 마다 이 세상에 사랑과 평화의 밝은 씨앗을 심는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다”고 결연한 심정을 술회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가의 정신과 자세는 다른 어느 예술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절대적이며 헌신적이다. 그의 이런 마음가짐을 가장 극명하게 묘사한 글이 <마음의 침묵>에 실린 소설가 박경리의 묘사이다.

'냉정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지만 그의 행동은 헌신적이다. 그의 그림은 우주적이며 유현(幽玄)하다. 조그맣고 가냘픈 모습을 떠 올릴 때 크고 깊은 그림 세계가 신기하기만 했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수직(手織)의 무명 같은 것, 그런 해뜨기 전의 아침을 느낀다. 이 글은 방혜자에 대한 내 애정이며 참된 예술가에 대한 존경이다.' 이것 말고 그녀가 얼마나 인간적이며 진정성 있는 참된 우리시대의 빛의 딸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 나는 그녀의 작업과 삶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예술가라기 보다는 수도승의 모습을 문득 문득 발견한다. 그런 청교도적인 삶속에서 그녀가 50여년의 세월을 빛의 드러냄에 관해 투쟁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고 존경스럽다. 

뿐만아니라 그 그림의 재료들 또한 모두 우리 것이라는 것에 그녀의 한국적 감성과 고집을 엿보게 된다. 방혜자 작품의 기본 재료는 닥종이와 한지에 천연 재료이다. 한지는 무엇보다 뛰어난 흡수력을 보여주며, 또한 표현에서 농담처럼 번짐을 통해 회화가 가지는 그윽함의 깊이를 지니며 그 색들이 종이에 스치거나 배어 들어갈 때 절묘한 색감의 떨림을 가져다 준다. 그러기에 작가가 추구하는 그 개울가의 조약돌에 빛나는 빛의 느낌에 순간들을 담아내기에 그것은 최적의 적합한 재료인 것이다.

왜 그녀가 한지와 닥종이에 천연염료를 쓰게 되었는가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수십 년을 외국인과 프랑스에 살면서 그녀는 정체성에 대해 깊게 고민하면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살리기 위해 캔버스를 멀리하고 한지에 유화붓이 아닌 서예 붓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조금만 주의 깊게 그녀의 작품 표면에 질감을 보면 이내 우리는 왜 그녀가 이런 천연재료에 필연성을 지켜야하는지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대로 빛의 표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애틋한 동양적 정서>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가장 방혜자 다운, 빛의 딸로서 방혜자의 운명이라고 판단된다. 특히 <색채에 대한 검색가>라고 불리는 그녀는 식물성 천연염료나 흙, 석채, 모래 같은 자연 안료를 한지나 부직포에 그녀가 원하는 색이 발색 될 때까지 수 없이 많은 색을 더하며 얹히며 입혀나간다. 


그리고 그 방법도 일상적인 채색의 기법이 아니라 한지의 양면에 색을 칠하는 배채화법으로 작업을 하는데 이 배채 화법은 고려시대 불화에 사용된 기법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다. 여기에는 작가가 작품을 뒷면에서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설치하여 작품을 통해 내보이는 빛의 세계가 “창조이자 생명, 자비의 광명의 빛”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 된다. 

그 모습을 작가는 깊고 그윽한 스밈과 고요함이 주는 색들의 하모니로 빛을 불러내고 있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은 방혜자의 작업은 유화 물감이 아니라 석채, 광물, 식물성 염료, 흙(프랑스 지방에서 얻은 회색과 오렌지색의 황토) 라는 점이다. 그는 그것을 무직천의 앞뒤에 스며들도록 수없이 반복 하여 마침내 수채화 같은 배어들고 마르고, 다시 칠하는 과정을 통해 방혜자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질감을 빛으로 연출한다. 그리하여 그녀 작업의 비법은 앞 뒤,상하를 구별하지 않고 통섭하는 과정이기에 전면회화 all over painting  , 혹은 전후회화라고 불러져야 옳을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 작가가 수십년을 이방인으로 살면서 가슴 속 깊이 숨겨놓은 빛에 관한 마지막  진실을 발견한다. 커다란 화폭에 펼쳐지는 부드러움과 속삭임, 닫힘과 열림, 이어짐과 끊어짐 ,어울림과 배려등 이 모든 인간 삶의 언어들이 깊은 밤에 은하수처럼, 개울가에 빛나는 햇빛처럼 우리들 가슴에 떨어져 그대로 빛의 감동이 된다. 어떤 것들은 빛이 되고, 어떤 것들은 사랑이 되고 ,어떤 것들은 기쁨이 된다. 그것이 방혜자가 부르는 영혼의 빛에 관한 메시지와 노래이다 . 그 그림들 사이에는 색과 빛의 환상적인 흐름이 우리 내면으로 돌아와 서로 만나 상처가 아물고 사랑하는 힐링의 향기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총체적으로 방혜자의 그림을 통하여 다시금 발견하는 것은 그의 그림 어디에서든  평안함과 거치를 것 없는 부드러움의 화음이다. 이것으로 보아 그녀는 화가로서 갖는 숙명의 화두 < 평화, 사랑, 기쁨>을 노래하는 빛의 전사이다. 작가는 스스로 그가 얼마나 빛으로 인해 축복 받은 화가이며, 행복한 존재라는 가를 아주 겸허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는 빛으로부터 왔고 빗속에서 살다가 빛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빛은 생명의 원초적인 에너지로 빛의 숨결, 생명의 숨결을 그림에 담아 그리며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가 빛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그런 그의 빛을 표현하기 위해 한 치열함을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본 사람이면 그녀가 왜소한 체구에 초인적이고 놀랍도록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 같은 작가라는 사실에 전율할 것이다. 세계적인 미술평론가들이 한결 같이 그의 빛에 관한 탁월한 작품들을 호평하고 있어 그녀의 작품을 평하는 것이 나는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평론가인 삐예르 까반느, 질베르 라스코, 올리비에 제르맹 또마,삐에르 꾸르디옹 등에 의해  <방혜자는 자연채색을 이용하여 다양한 재료와 방법론을 통해 자신이 창조해 낸 빛의 세계에서 호흡하고 대화하며, 그의 빛의 창조 안에 항상 존재하는 호흡, 숨결 속에, 작가의 삶과 작품 안에, 내면의 미소, 빛의 숨결을, 시간을 초월한 영원을 추구한다>라는 평가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극찬은 “빛'을 따라 오로지 '빛'을 추구하며, 평화와 경건함에 그가 머물지 않고 빛을 통한  숭고한 아름다움의 세계에 도달하고 싶어 하는 열정이야말로 방혜자의 진정한 매력과 예술적 가치이다.

그녀의 또 다른 강점은 표현의 매체와 장르에서 풍부하고 다양하게 빛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거침없이 형상화를 이룩했다는 점이다.. 회화는 기본이고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 판화,설치까지 빛의 시작과 형태에서 모든 가능한 이미지로 빛의 형상을 아우르고 있다. 그런 과정 속에 나는 그녀가 무엇인가에 홀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나는 종교가 아닐까  생각한다. 방혜자 작품 속의 빛의 의미는 사실 상당히 종교적이다. 그에게 빛의 의미는 온전히 중세 르네상스 회화에서 보여지는 성스러움을 의미 하며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려는 제의적인 상징성을 포함한다. 그러기에 방혜자에게 '빛'이란 개념은 동시에 감각적인 빛의 근원이며, 내적이며 초월적인 빛처럼 해석된다. 이러한 방혜자 작품 속에 빛은 빛의 형이상학적인 관점을 아우르며 빛의 상징주의적 관점에서 자기 스스로를 넘어서 정신적인 것, 신적인 것을 드러내는 차원과 맞닿아 있어 보이기도 하다.

'오랜 고민과 좌절에서 나를 구원한 것은 빛이었어요. ..... 빛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아름다움과 숨결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예술이란 태초의 빛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이 말이야말로 그녀가 예술이 무엇인가를 가장 명료하게 지시하는 발언이다. 이런 목적에서 방혜자는 그림을 그리며 그림은 이 빛을 위해 봉사함으로 빛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을 바라 볼 때 마다 우리는 “빛의 탄생' '하늘과 땅에서' '대지의 빛' '우주와 자연의 숨결' 등 타이틀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어울림으로 한 폭의 서사시를 읽는 듯 가슴 설레며 감동에 젖어든다. 일찍이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빛이여 이 내 빛 , 세상을 채우는 빛 , 눈에 입 맞추는 빛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는 빛이여!....사랑하는 사람이여, ” 라고 빛을 노래한것처럼 그만큼 그녀에게도 빛은 삶과 사랑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알파와 오메가이다. 그러나 방혜자의 빛은 그렇게 소리 내는 요란한 빛이 아니며, 은근히 아주 오래 꺼지지 않는 영혼에 스며드는 찬란한 빛이다. 어두운 밤하늘에도 저 홀로 반짝 반짝 빛나는 그런 빛이다.

그런 점에서 방혜자는 한국의 렘브란트임이 틀림없다. 그는 ‘돌아온 탕자’에서 눈부시게 밝은 빛을 드러내어 ‘빛의 화가’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방혜자의 화폭에는 언제나 밝은 빛이 동양적으로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명백하게 렘브란트와 다르다. ‘빛’을 그리기 위하여 렘브란트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촛불을 환하게 켜놓고 작업을 했지만 방혜자는 밤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 자신의 가슴 속에 낮과 밤이 언제나 다 깃드러있고 빛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보이지 않는 빛을 창조한 미술사에서 첫번째 ‘빛의 화가’인 것이다.

방혜자는 한국의 끌로드 모네이기도 하다. 모네는 빛을 받은 자연과 사물을 자연의 표정에 따라 효과적으로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 모습을 캔버스에 잘 묘사하여 빛의 화가가 되었지만, 방혜자의 자연과 사물 속에 빛은 언제나 변색되는 그러한 빛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변하지 않는 빛의 진리인 것이다. 또한 방혜자는 한국의 윌리암 터너이다. 터너처럼 그녀는 색은 바로 빛의 표현이라고 믿었기에 말이다. 이제 우리는 그녀가 왜 평생을 통하여 그 불가능한 빛의 표현에 이토록 치열 했는가를 진지하게 동의 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우리들과 함께 있어 행복하고 그녀와 동시대를 함께 호흡 할 수 있어 나는 영광 스럽다. 더욱이 그가 창조해 낸 빛이 언제나 우리를 비추고 있기에 더욱 행복 할 수 있다. 그녀가 비로소 누구도 표현 할 수 없는 빛을 보여 주었기에 그녀는 한국미술사에서 소중하고 우리들에게 너무나 소중하다.



김종근 
(한국미협 평론 분과위원장. 고양국제 플라워 비엔날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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