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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 스페셜 이후, 그 불편한 진실

김종근


 얼마전 SBS TV 스페셜 프로그램에서 천경자의 <미인도>에 관한 스캔들을 취재, 방영 했다. 당시에 직간접으로 연루 되었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인터뷰를 하거나,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해가면서 모두가 침묵 해 왔던, 아니 쉬쉬 해왔던 그 미인도의 은폐 된 24년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쳤다. 처음부터 어떻게 왜, 누가, 어떠한 사정과 이유로 이 그림을 가짜로 몰 수 밖에 없었는가를 취재진은 당시의 희귀 자료들을 모두 들춰내 까발린 것이다.1991년 4월 어느 날 저녁 천경자 화백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한번 들러 달라고 했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그 문제의 <미인도>를 보았다. 선생님은 포스터를 내보이며 내 그림이 아닌데 내 그림으로 둔갑하여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전시에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느냐고 ....


수없이 목 놓아 세상과 화단을 향해 애타게“자기가 낳지도 않은 자식을 남들이 당신 자식이라고 윽박지른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괴로워하며 하소연 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 화랑협회, 감정협회는 냉정하게 선생님의 절규를 모질게 외면했다. 오히려 그림의 소장자가 권력자라 챙피하여 작품을 부인한다. 혹은 치매,혹은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라 모른 척 한다는 등 분위기로 몰아갔다. 선생님은 절필선언으로 항의했고, 예술원 사표를 내면서 큰 딸이 사는 뉴욕으로 떠났다. 그 사이 회고전을 갖고, 93점의 작품을 시립미술관에 기증하한 것이 마지막 이었다. 그리고 24년 후,지난 12월 불귀의 객이 되어 선생님의 시신은 허드슨 강가에 뿌려지고 영혼만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불편한 진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나 속상하다. 많은 내용들이 새로 공개되고 당시에 합리적으로 진행되지 못한채 은폐 되었던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침묵, 인터뷰 거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감정위원도 인간이기에 실수 할 수도 있다. 또한 당시의 분위기로서 불가피한 사정이나 정황이 있을 수도 있다. 어찌 사람 사는 세상에 피치 못할 사정이 왜 없지 않을까 ?  그러나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명확한 수습과 정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미스테리의 미인도는 공개도 재감정의 움직임도 없이 지지 부진 해 보인다. 그림을 목숨처럼 생각한 화가.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도 ,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치부하려 하지도, 그림으로 부자가 되길 꿈조차 꾸지 않았던 그 분의 일생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 그러기에 그 한 많았던 선생님의 일생을 생각하고 순간을 회상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어요.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했던 천경자. 그림을 팔았다가 판 그림 때문에 밤새 한잠도 못 잤다며 돈을 돌려주기를 부탁 했던 그녀. 이제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유골이 되어 그녀가 낳아놓은 93점의 자식들을 시립미술관에 기중하고 영원히 쓸쓸히 우리들 곁을 떠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우선 진실을 밝히고 정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직 국립현대미술관도 묵묵부답이다. 일상적인 관례였던 금관문화훈장 추서도, 재감정 의사도 없는 듯하다. 진실은 무조건 덮는다고 덮어질 일이 아닐터인데 ...뉴욕의 유족들이 미술관을 대상으로 최후 통첩을 보내면서 소송으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다. 이제는 은폐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선생님의 영혼이 더 이상 억울해 하지 않기 위해서, 또 하나는 우리가 잘못 앞에서 과감하게 용서하고 사과함으로 역사 앞에 당당해 지길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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