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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선 / 차이의 공존

박영택

 한국의 근현대미술은 낯선 타자와의 만남을 전제로 이루어졌다. 낯설음은 호기심과 두려움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동반한다. 동양인이 갖는 서구에 대한 심리도 그렇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서구인들이 동양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매혹과 두려움의 공존을 핵심으로 한다. 20세기에 강력하게 추진된 한국의 근대화는 타자인 서구문화가 일방적으로 전통문화를 대체해 온 과정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근자에 들어 모더니티가 설정한 이분법이 폐기처분되면서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에 주목하는 것 같다. 더 이상 강력한 하나의 중심은 설정되지 않는다. 유일한 기준, 규범, 틀과 획일성은 도전받는다. 그 자리에 차이의 의미와 그에 대한 존중이 싹튼다. 알다시피 생명체나 문화는 차이를 통해 생존한다. 삶이란 그 차이를 보존하려는 활동의 구현이기에 그러한 활동이 멎으면 죽는다. 차이가 없다는 것은 획일성이고 이는 결국 죽음이다. 예술은 무수한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획일성에 대들고 개별성과 고유함을 증거 한다. 미술은 단일성과 통일성을 목표로 하지 않고 개별성과 무수한 차이를 확인하는 장이다. 미술이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소소하고 구체적인 활동들의 집합인 것이다. 그러니 문화와 예술의 교류와 만남은 어느 하나로 동화되거나 일방적인 수용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확인하고 그 차이를 통해 문화/미술이 차이의 집합임을 깨닫는 일이다. 따라서 그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들이 지닌 문화를 반성해보고 나아가 그 다름의 의미도 헤아려 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차이를 생성시켜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정환선은 바로 그 문화적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선 작가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에 주목하고 그 차이가 서로간의 필연성을 바탕으로 배태되었음을 인지한 후에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 문화의 상황에 주목한다. 그런 인식을 그림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따라서 작가의 그림은 사고의 도상화에 해당하는데 이를 위해 그녀는 기존 도상을 뒤집는다. 전통회화의 하나인 민화라는 텍스트를 갖고 놀이한다. 아울러 재료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실험된다. 작가는 동양화와 서양화 재료를 한 화면에 동시에 구사하고 전통 민화와 현대적 기물이 공존하는‘이상한’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동양화도 아니고 서양화도 아닌 그런 그림이 되었다. 기존의 이분법적 체계를 흔든다.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물건은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반면 민화(책가도)는 동양화 물감으로 공들여 그렸다. 현대의 문물은 서양화의 재료와 화법으로, 그간 소외되었다고 여겨진 동양적인 것이나 자연물은 동양화 재료와 화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두 화법의 이질적인 성질이 부딪쳐 어딘지 불안정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자아내고 있다. 그 차이는 우선 표면의 질감으로부터 벌어진다. 껍질의 차이는 위장무늬처럼 교묘하게 뒤섞였다. 이는 동ㆍ서양 문화가 혼재된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한 은유인 셈이다. 겉으로는 무난해 보이는 전통의 차용 내지 책가도를 흥미롭게 변용시킨 사례로 보이지만 기실 그 안을 살피면 꽤나 날카로운 메시지가 가시처럼 박혀있다. 

 결국 책가도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차용되었다. 동시대 수많은 작가들이 민화를 끌어들여 재맥락화 하거나 비틀고 해체하고 있다. 다소 획일적으로, 재미삼아 다루면서 ‘전통과 현대’의 결합이라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도식의 해결이라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생각이다. 정환선은 조금은 다른 장치를 통해 진부한 알리바이의 혐의로부터 구멍을 낸다. 

 책가도 본래의 맥락은 비틀리고 그 안에 낯선 장치들이 잠복해 자연스럽게 놓이면서 묘한 동거를 보여주는 것은 동서양의 문화가 넘나들고 동서 두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현재 우리네 삶을 반영하는 표현이다. 이미 우리 사회가 동ㆍ서양 문화가 혼돈된 이른바 다문화사회이자 열린사회로의 진행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불편한 동거가 어쩌면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이고 우리 미술의 기이한 초상인지도 모르겠다. 이 낯선 민화는 결국 이질적인 두 문화의 기이한 공존을 보여주면서 동시대 한국의 문화 상황 또한 발설한다. 그것은 어느 하나로 통합되고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차이의 존중이고 공존의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각자의 차이, 즉 고유성을 강조함으로써, 그 고유성에 의해 각자가 모두 존중받길 바란다는 뜻이다. 작가는 말하기를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 세계의 만남 이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와 다름의 강조가 아니라 ‘조화를 위한 조율’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하나의 그림을 이상하게 마주하고 있다. 전략적인 조화의 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 서로 다른 것들의 조화란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것이 그 길이 될 것인가는 무척 곤혹스러운 문제다. 정환선은 무엇보다도 타자들 간의 소통과 만남, 대화를 얘기한다. 각자의 고유한 모습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인정하고 발현시키는 것이 작금의 다문화시대에 요청된다는 메시지다. 그리고 그 같은 인식이 지금의 작업으로 출현한다. 따라서 이 책가도는 여러 겹의 장치, 텍스트를 깔고 있는 의미 있는 도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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