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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세인 / 텍스트에서 출구찾기

박영택

 어린 시절 큰어머니는 늘 나를 데리고 주일의 종교집회에 참석하셨다. 이른바 전도를 하셨던 것이다. 큰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성경의 구절을 암송하고 책자를 열심히 읽었다. 무신론자인 우리 집은 늘 타박의 대상이었고 사탄의 무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종교적 차별은 어린 내겐 너무 큰 상처였다. 특정 종교를 믿는냐 아니냐에 따른 그 차별과 편견이 못내 원망스럽고 두려웠던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내내 종교와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 며칠 전에 영은미술관에서 인세인박의 전시를 보았다. (영은미술관, 4.28-5.20) 문자가 주를 이루는 텍스트 작업이었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소망이니라'라는 문구가 프린트되어 걸려있다. '사랑'이 '소망'으로 바뀌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순간 소망교회와 그 출신의 권력자들이 어른거렸다. 그런가하면 '주 예수'를 '(주)예수'로 치환한 작업에서는 오늘날 기업화, 상업화 된 대형교회의 거대한 건물이 떠올랐다. 우리사회의 교회들이 명맥을 이어나가려면 신도들에게서 지원을 받아야 하기에 그들을 확보하기 위한 온갖 상술이 경쟁적으로 벌어진다. 하느님이 없는 사회는 지상의 지옥이 될 거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입에 담고 사는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엄청나고 밤이 되면 온 도시가 공동묘지로 돌변하는, 붉은 십자가로 가득하며 장로가 대통령인 대한민국은 과연 평화롭고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정의로운 사회인가? 필 주커만은 <신 없는 사회>라는 책에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나 강렬한 종교적 감정이 널리 퍼진 나라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적 건강이 확보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종교가 건강하고, 평화롭고, 부유하고, 속속들이 선한 사회의 필수적 요소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종교보다는 오히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세속주의가 도덕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인세인 박은 특정 종교를 폄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주어진 사회시스템이 강제하는 온갖 권력적인 텍스트의 체계, 말씀의 성찬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의식과 마음을 왜곡시키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그는 텍스트의 행간에 개입해 우연적인 것처럼 문자를 슬쩍 지우거나 흔든다. 그런 유희의 결과 세로로 쓴 '조중동'은 '좆도'가 되는 식이다. 이 세계는 온갖 텍스트와 이미지로 가득하고 우리는 그로부터 한 발짝도 자유롭지 못하다. 인세인박은 그 'text'에서 'exit'를 부단히 찾아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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