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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성 / 이상한 복장, 불안한 징후

박영택

정용성은 제주에 사는 전업 작가다. 그는 자신의 일상에서 빈번하게 마주쳤던, 순간적으로 스쳤던 이들의 얼굴표정, 몸짓, 그리고 복장을 그림에 담았다. 어떤 깨달음이나 전언 같은 것을 안겨주는 몸들, 너무 많은 생각거리가 맴도는 몸들이 있기 마련이다. 작가는 길가에서 그런 몸들을 찾았고 만났다. 그러는 순간 주머니에서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내들어 30초에서 1분 남짓한 시간동안 스케치를 했다. 길거리에서 지나는 행인들을 바라보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과 생애를 살펴 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일이다.

그런 예로서 원주에 사는 김진열이란 작가가 떠오른다. 그는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곳을 오가는 이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각박하고 힘겨운 삶의 하중을 떠올려보는가 하면 시대의 모순도 겹쳐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용성 또한 무심코 걷던 어느 길가에서 그저 잠깐 스쳤을 뿐인 이들을 그렸다. (나무화랑, 2.22-3.2) 쇼핑 나온 아줌마, 자동차 정비공, 스파이더맨복장을 하고 세일 선전을 하는 알바생, 마도로스, 시인, 차심부름을 하는 후보운동선수, 잠녀, 어부, 여학생, 빈지갑을 든 백수청년, 공사장에서 유도신호를 하는 인부아저씨, 중국집배달부 등이 그들이다. 커다란 종이에 몸 하나를 가득 채운 후 포스터칼라로 그렸다. 하단에는 이들의 직업을 반듯하고 크게 쓰고 서명을 했다. 흡사 조선시대 초상화처럼 다가오지만 그림 안에 담긴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우리 시대의 대중들이다. 각종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자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이들의 생애를 격려하듯, 그 몸들을 위무하듯 기념비적으로 키우고 평면적인 붓질과 가라앉은 색상으로 채운 후 전시장 벽에 기대놓았다.
내 눈에 들어온 이 <여학생도>는 긴 단발머리를 하고 작은 안경을 걸친 모습이다. 상의는 교복을 입었고 짧은 검정 치마를 걸쳤다. 반면 치마 안에 무릎이 튀어나온 회색 체육복을 입고 흰 양말에 ‘삼디다스’슬리퍼를 신었다. 한쪽은 끈이 끊어져서인지 초록색 포장용 테이프로 단단하게 감았다. 왼손은 허리춤에 올리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아마도 야간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시간에 흔히 취하는 복장일 것이다. 이 복장은 동시대 한국 여학생들의 전형성을 희화적으로 그러나 어딘지 우울하게 보여준다. 이 ‘이상한’ 복장을 한 여학생은 입시교육에 의해 찌든 몸이자 동시에 강제되는 제도의 틀과 이를 위반하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 ‘낑겨’있는 상황을 불현듯 발설한다. 좋은 그림은 그런 징후를 기어이 포착하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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