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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남 / 외연도에서 보낸 시간

박영택

섬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문득 육지에서 벗어나 사방이 트인 고립무원의 공간에 스스로를 ‘위리안치’ 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가시로 담을 쌓는 대신 망망한 바다로 몸을 감싸 뭍으로부터의 완벽한 고립을 꿈꿔보는 것이다. 그 모든 관계의 망으로부터 자신을 끊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육지의 끝을 건너 섬으로 들어가면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새로운 생을 가설하고자 하는 의욕을 키워보기도 하고 오로지 수평선만을 안기는 바다에 시선을 투항해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무로 돌려 버리는 것이자 자기 내면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거대하고 장엄한 자연 속에 하찮은 육신을 마구 던져버리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섬은 그 자체로 고독한 공간이지만 역설적으로 섬에서 육지를 보면 육지가 결국 섬이기도 하다. 사람들도 저마다 고립된 영역을 지닌 섬 같은 존재다. 그래서 사람들은 섬을 찾고 섬을 갈망하는 한편 섬과 관련된 무수한 이미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리라. 해서 섬을 떠올리면 평생 바다와 섬만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던 김영수가 생각나고 박고석의 뜨거운 흑산도 풍경그림도 떠오르고 보길도로 들어가 그곳 풍경을 그리는 윤해남, 제주도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의 삶을 기록한 김옥선의 다큐먼트 사진, 육명심의 제주도 검은 모살뜸 사진 등이 연상된다. 그 외에도 섬을 다룬 여러 이미지들이 마구 덤벼든다.

섬은 작은 왕국 같다. 그 왕국에 찾아들어가 잠시나마 육지와 도시에서의 고단한 생의 회로와 무수한 인연과 제도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모든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거친 바다바람에 마구 흔들리고 싶은 것이다. 오로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밀려드는 파도에 몸을 던져 그렇게 실감나는 실존의 감각만을 만끽하면서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김재남은 서해안에 위치한 외연도를 찾았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리 소재의 작은 섬이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연기에 가린 듯 까마득하게 보인다고 해서 외연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나는 가보지 못한 섬이고 해서 상상 속에서만 어른거린다. 외연도는 동쪽 끝에 봉화산, 서쪽 끝에 망재산이 솟아 있고, 가운데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안은 남쪽과 북쪽에 각각 깊은 만과 큰 돌출부가 이어져 있다고 한다. 중국 대륙에서 무척 가까운 섬이라서 그곳의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고도 한다.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는 없다. 옛날 중국 제나라가 망할 때 전횡 장군이란 이가 5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피난을 와 정착했다가 돌아갔다는 설이 있어서 지금도 그의 사당이 남아 있고 매년 그를 추모하며 풍어를 기원하는 제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도 한다. 이런 전해오는 이야기들은 무척 흥미롭다. 사실 이 섬도 나름의 깊고 아득한 역사와 사연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보낸 수없이 많은 이들의 생을 기억하고 있는 공간인 셈이다.

우연한 기회에 외연도를 찾아간 작가는 그곳을 여러 번 답사하고 이를 토대로 몇 가지 작품을 제작했다. 대천항에서 배를 타고 외연도로 찾아가는 여정은 흡사 낯선 땅을 여행하거나 그곳에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세우는 흥분감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그 섬에서 며칠씩 보내면서 외연도가 남긴 인상을 추려보았다. 작가는 말하기를 섬에 들어가면 마치 어린 시절 집안 장롱에 몰래 들어가 숨었던 놀이의 추억이나 엄마 품으로 들어가 안기던 그 따뜻하고 편안하고 안락한 경험을 떠올려준단다. 그것은 양수 속에 잠기던 원초적 느낌, 질 속으로 들어가는 혹은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나 몰래 잠입하고 은거하는 다소 들뜬 느낌도 동반할 것이다. 어쨌든 작가는 그 섬에 들어가 하얀색의 깃발과 붉은 텐트를 갖고 설치를 했다. 바닷가 바람에 펄럭이는 작고 흰 삼각의 깃발이 꽂혀있고 그 옆에는 둥근 반원형의 풍뎅이 등 같은 붉은 텐트가 쳐져있다. 텐트는 거주공간이자 섬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외부로부터 자기 몸을 지켜주는 안락한, 최소한의 시설이다. 그것은 아주 작은 나만의 영역이자 개인성의 표식이고 초록으로 가득한 섬의 울창한 숲에서 삶을 이어가는 강렬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미친 듯이 휘날리는 깃발 역시 한 개인이 열망하는 자유의 함성을, 떨리는 실존의 욕망을, 그 어떤 제도와 규율에 속박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시각적으로, 촉각적으로 알려주는 신호다. 어쩌면 사람들은 저마다 섬이든, 도시든 그곳에서 자기만의 작은 왕국을 가설해서 맹렬히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재남은 외연도의 인상을 세 가지 색으로 추렸다. 초록색은 외연도의 산과 숲, 식물로 가득한 자연환경을 표상하고 파란색은 바다와 하늘, 붉은 색은 그 섬에서 살다 간, 살고 있는 이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아울러 작가는 외연도에서 받은 그 인상과 느낌을 회화와 사진, 동영상 그리고 오브제 작업으로 연출했다. 전체적으로 김재남의 작업은 마치 연극세트를 접하는 듯 하다.

우선 캔버스에 목탄으로 그려진 파도그림은 극사실로 묘사되면서 외연도로 밀려드는, 감싸고 있는 드라마틱한 파도의 생생함을 감동적으로 재현한다. 짙고 어두운 배경에 흰색, 여백으로 드러나는 파도는 마치 흑백사진처럼 정교하다. 이 재현과는 또 다른 회화는 추상인데 그것은 외연도를 색채와 질감만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각각 녹색과 붉은 색, 푸른 색 물감의 단일한 색상으로 칠해진 화면은 앞서 언급한 그 색채의 상징적 내용을 동일하게 감싸안으면서 매우 환상적인 화면이자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는 표면을 만들어 보인다. 사진은 외연도 내부의 숲을 찍었는데 그 안에 작가가 설치한 텐트와 꽂혀진 깃발이 펄럭거리는 장면이다. 이는 영상작업으로 동일하게 재현된다. 우리는 그 영상작업을 통해 흡사 외연도로 여행 온 듯한 가상의 체험을 맛보면서 섬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간다.

또 다른 영상작업(두 개의 섬)은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한, 수직의 빌딩으로 가득한 가상의 도시와 외연도 형태의 섬이 서로 오버랩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마치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새의 이동의 시선으로 포착한 이 장면은 외연도 속으로 도시의 빌딩이 혹은 도시 속으로 외연도가 가라앉거나 떠오르거나를 반복하면서 극단의 공간을 충돌시킨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 극단의 두 공간을 넘나들며 살아가고자 욕망한다.

마침 사진작업 밑에는 외연도에서 주워온 나무토막과 몇 개의 돌들이 놓여있다. 특히 이 나무토막은 사진과 동영상 촬영장소인 외연도의 상록수림 숲에서 자란 동백나무의 편린이다. 천연기념물 제136호인 그 나무토막의 표면에 작가는 외연도의 윤곽을 새겨 넣었다. 비릿한 바다 내음과 눅눅하고 서늘한 숲의 체온, 아득한 시간에 의해 그렇게 닳고 깍인 나무토막과 그 표면에 부감되는 외연도의 실루엣을 보는 이들에게 안겨주면서 새삼 외연도란 섬, 더 나아가 저마다 고립된 사람들의 왕국, 그리고 그들이 모여 사는 국가와 사회 안에서의 자유와 희망 같은 이야기들 역시 들려주는 것이다. 가득한 안개의 질감과 거칠게 펄럭이는 깃발소리와 격렬한 바람과 파도소리를 동반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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