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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과 상식에 반하는 아이들의 그림

박영택

통념과 상식에 반하는 아이들의 그림

 


근자에 어린아이들의 그림을 심사한 바 있다. 드물게 이런 심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내게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다. 유치부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의 그림은 기발하고 희한한 게 다수 있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가는 순간 그림들은 거의 다 경직되고 도식적이며 따분해진다. 희한한 일이다. 교육을 받을수록,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림을 망친다는 얘기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린이란 근대기에 태동된 새로운 개념이다. 서구의 경우 중세 유럽에는 지금과 같은 어른어린이의 구별이 없었으며 오직 어른작은 어른이라는 크기상의 차이만 있었다고 한다. ‘어른에 대한 아동기의 출현은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는 17세기 중반, 근대적 가족의 성립과 궤를 같이 하는데, 이때부터 작은 어른들은 새롭게 귀여움을 받고보호되는 대상으로 재해석되었다. 여기서 사회적 약함이나 의존성이 특별히 강조된 어린이다움이 나타나고, 어린이는 시민사회의 도덕과 질서를 따르도록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가정과 학교에 둘러싸이게 되었으니 이른바 아동'이 탄생한 것이라고 아리에스는 말한다. 근대 국가는 아동을 국민구성원으로 훈육하고 양성하는 일을 조직, 체계화해 가정, 학교에서 맡도록 하였다. 아이들은 주어진 사회현실과 체제가 요구하는 인간형으로 길러져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아동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고 성숙되지 않았으며, 어른이라는 질서로 향하는 도중에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있고 동시에 아이들을 어른의 일방적 시선 아래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른들이 원하는, 체제가 요구하는 인간형으로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어린이들 역시 자기다움을 감춤으로써 질서 안에 편입되어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아동을 교육시킨다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교육시킬 수 있는가, 과연 어른의 시선으로 어른이 원하는 대로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고 충분한 것이냐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창의력과 상상력, 사물과 세계를 보는 길들여지지 않는 눈을 요구하는 미술의 경우는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어린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칠 수 있느냐,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미술이란 사물과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기르는 일이고 인습적이고 상투화된 사고, 안목, 감각을 벗어나는, 뛰어넘는 것이자 그런 몸을 가꾸는 일이다. 종래의 나와는 다른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교육의 힘이란 사람을 한 가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하고 때때로 아주 고통스럽고 고민스럽게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도록 강요하는 일이 된다. ‘성장 과정을 통해 암암리에 훈육되고 다져진 인식의 터전을 흔들어 혼란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또한 미술교육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해하고 있는 사물과 세계는 모두 특정한 가치나 신화, 이념, 욕망에 의해 매개되어 있어서 그 본래의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기 눈과 의식으로 세상을 보기 보다는 이미 주입받은, 학습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코 자신의 눈과 사고로 대상을 바라보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대상에 대해 배운 대로, 학습된 대로 경험한 대로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자기 눈으로 보고, 반복해서 보면서 깨닫는 것이다. 기존 미술계에 공식화된 어른중심의 미술언어를 아이들에게 추종하게 하거나 익숙하게 훈련시키는 것은 진정한 미술교육이 아니다. 좋은 미술작품은 사물과 세계에 드리워진 모든 편견과 허위의식을 거둬 내는 일이며 그로 인해 그 아이만의 독특한 감성과 감각의 힘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따라서 그런 그림은 학원 등에서 관습적으로 만들어주는 그림이나 어른들이 손을 댄 그림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세상과 대상에 대한 관찰력을 키우고 자발적으로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를 자기 식으로 담아내는 그림을 그리도록 해야 한다. 당대의 지배논리가 현실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동일화된 감성에 순응하지 못하고 그것과 불화를 일으키고 저항하는 사유를 지닌 아이들을 길러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아이들이 결국 한 개인으로 살아남으며 상상력과 창의성을 지닌 인간, 예술가적인 인간이 된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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