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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숙 서문

박영택

조정숙 서문


       

조정숙은 장노출 (노출시간은 ND 100필터를 사용해서 2~8초 정도를 주었다)의 사진을 통해 흐르는 물의 표면을 건져 올렸다. 경주 보문정 호수와 팔공산 치산계곡의 수면을 반복해서 찍었다. 치산 계곡의 경우는 컴컴한 산 속의 깊은 계곡으로 파고드는 빛에 의해 드러난 오전 11시~오후 3시 사이에만 촬영했다. 빛이 있어야 대상은 보이고 이는 사진이 사진일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다. 특정한 시간, 빛에 의해 수면은 다채로운 변화현상을 현기증 나게 안겨준다. 사람의 눈은 그 흐름을 정지시키지 못하고 다만 흘려보낼 뿐이지만 사진은 순간의 시간을 응고시켜 놓는다. 막 사라진 흔적들, 지나가버린 것들의 뒤늦은 현존이자 늘 사후적인 결과물이 모든 이미지의 운명이자 사진의 필연이다. 

사진 속에는 물의 흐름이 어지러운 선묘를 남기고 있고 수면으로 난반사 된 외부세계가 다채로운 색상으로 얼룩져있다. 아울러 그 위로 떠 있는 여러 부유물 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흐름이 다분히 몽환적인 이미지, 흔적을 안겨준다. 명시적 존재성이 슬쩍 뭉개진 자리에 빛과 색채로 얼룩진 자취만이 돌연 멈춰 있는 장면이다. 얼핏 그 장면은 모네의 수련 연작이나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회화적 이미지로 다가온다. 모네는 오로지 표면만을 안기는 수면을 캔버스의 존재론적 조건인 평면성과 일치시키면서 그 평면 위에 표면만의 세계를 옮겨 놓았다. 조정숙 역시 화면의 수면을 일치시키면서 그 수면위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현상을 기록하고 그 수면 위에 떠 있는, 몰려다니는 다양한 존재들의 부유를 기록하고 있다. 끊임없이 흐르고 몰려다니는 물 위에 떠있는 존재들은 주변의 나뭇가지와 풀, 꽃들이다. 바람에 의해 수면 위로 낙하한 것들은 물의 격렬한 또는 지속적인 흐름에 의해 함께 흔들리고 선회하며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와 대지에서 분리된 것들이 물의 흐름 속에서 막 사라지는 중이다.

결국 작가가 찍고자 한 것은 물 위에서 부유하는 존재들로 보인다. 봄날 벚꽃 나무에서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꽃잎과 수면 주변에 자리한 나무와 풀, 꽃 등 자연에서 날아와 떨어진 것들의 운명이 사뭇 감상적으로 안겨준다. 작가의 사진은 수면에 떨어진 것들이 죄다 물의 흐름에 의해 급속히 쓸려가고 끝내 사라지고 소멸하는 순간을 응시한 결과이다. 자연은 부단히 변화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넘어가면서 무수한 생명들을 산포시킨다. 움직임 속에서 하나의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로 쉬지 않고 옮아간다. 그렇게 쉼 없이 움직이면서 기존의 형태를 만들고 부수며 소멸시키고 다시 생성시킨다. 인간은 그 같은 자연의 생명활동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반추한다. 자연의 이 무한영역에 자신의 유한한 생을 은밀히 비춰보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과 생명체들을 본다는 것, 그것들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관찰한다는 것은 인간이 절대적 주체의 자리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성의 타자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한 여정을 따라가는 일이 바로 예술의 길이기도 하다. 불교는 시공간을 초월한 어떠한 실체도 인정하지 않는다. 세계는 커다란 운동이다. 살아있고,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그대로 있지 않고 변화한다. 이른바 제행무상이다. 제행은 만물이 아니다. 물(物)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행이며, 살아있는 일체는 그 행으로써 무상한 것이다. 이러한 무상은 슬픔에 앞서 진리이다. 세계는 무상함으로 인해 슬프다. 그리고 이 슬픔 때문에 인간은 사람다운 비애를 간직하고 그 슬픔이 사람다운 삶을 가능하게 한다. 


아마도 작가는 수면에 떨어진 생명체의 운명을 통래 여러 상념에 잠겼던 것 같다. 

“물위에 떠있는 주검들이 바닥으로 가라앉아 부패를 시작하거나, 어느 한갓진 여울에 떠밀려 존재를 버리는 과정들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다. 유속의 시간위에 떠있는 꽃잎, 나뭇잎들이 물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소멸해 가는가를 살피게 되었다. 눈길 주지 않는 곳에서 자라나고, 꽃피우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지만, 제 생을 다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식물의 마지막 모습은 아름다웠다. 물로 태어나 다시 물로 돌아가는...하늘하늘 흘러내리는 꽃잎의 매혹적인 흐름은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은 아닐까.” (작가노트)

물 또한 지속해서 사라지는 중이다. 동일한 물은 없다. 그 물위에 떨어진 생명체들 역시 물과 함께 일시적 생을 마감하고 사라지는 중이다. 이 두 존재는 맹렬한 시간의 흐름, 속도 앞에서 속절없이 소멸하고 있다. 


동양희 산수화란 산과 물을 그린 것이고 양과 음을 표상화 한 그림이다. 그리고 이 자연 공간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존재의 운명성을 가시화 한 그림이기도 하다. 산수화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물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장면을 안긴다. 산과 강은 영원성과 변화를 암시하는데, 산 속을 소요하는 한 사람이나 하나의 거처로서 강 위에 표류하는 작은 배는 인간사의 짧음이나 무상함을 표현한다. 사람들은 산과 강에 의해 표현되는 공간과 시간 안에 놓인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알리는 동시에 산과 강의 풍경에 의해 상징된 우주 안에 한 사람을 묘사함으로써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알리고 있다. 물은 그 자체로 생생한 생명체이자 영성을 지닌 존재이다. 물을 창조력의 원천이자 풍요로운 생산성 또는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 그리고 정화력을 지닌 것으로 이해한 이들이 한국인이다. 옛사람들은 물이 음에 속하며 인체의 혈액과 동일한 것으로도 보았으며 침투와 부딪침, 씻김과 압착 등을 통해 산과 돌을 천태만상으로 만드는 존재로도 이해했다. 이처럼 동양인들에게 물을 모든 사유와 철학의 근간이었다. 물/자연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특히나 형태의 다양성과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 비상한 능력을 갖고 있는 물은 자연이 이치뿐만 아니라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일반적인 우주 원리들을 개념화하는 주요한 모델’(사라 알란)을 제공했다. 그래서인지 물을 그린 그림, 물이 들어간 그림이 전통회화(인물산수화 등)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물은 우주자연의 이치를 함축하고 있는 존재며 인간사유와 행동의 근거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인물산수화나 관폭도, 물을 그린 일련의 그림들은 물에 대한 철학이 도상화 되어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물 이미지를 빌어 자연의 천기(天機, 자연운행 속이 숨어있는 기밀 그 자체)를 감지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한쪽에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키는 것(산)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쉴 새 없이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것(물)이 있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과 가변적인 것이 대립하는 동시에 조화를 이룬다.  형상을 지닌 채 굴곡을 이루는 것(산)이 있고, 본래부터 형상 없이 사물의 형상과 어우러지는 것(물)이 있다.  눈앞에 바로 놓여 있어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산)이 있고, 다양한 방향에서 나오고 그 졸졸거리는 소리가 우리 귀에까지 닿는 것(물)이 있다  대립되는 요소들의 끊임없는 상호적 놀이  중국에서는 시각이 지닌 이러한 독점적 힘이 아닌, 세상을 긴장 상태에 놓이도록 하면서 펼쳐지도록 만드는 본질적인 극성(極性)을 강조  산은 “크고” “넓은” 것이고, 물은 “생명이 있는” 현실  산은 바로 굴곡과 연속됨이 다양하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속에서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숨결과 같은 것 또는 밀집된 에너지와 같은 것  모든 것이 “하늘과 땅 사이”에 펼쳐져 있는 기(氣), 즉 숨-에너지로부터 만들어지는 가운데, 산은 이렇게 계속되는 윤곽들 속에 존재하는 물리적 형상이다. 굴곡을 가로지르며 이를 펼쳐 놓는 힘의 선들을 중국어로 맥(脉)  수많은 압력과 긴장 속에 눌려 있는 산이란 것이 사실 가장 “넓고”도 가장 다양한 물리적 응축물  어떠한 강요된 형태도 지니지 않은 산은 가능한 모든 형태-발현들이 역동적으로 응고된 것  산의 경우 그 속에 모든 형태가 서로에게 해를 주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여 어우러진다. 산이랑 치솟으면서도 묵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전진해 나가면서도 자체적으로 응축되며 펼쳐져 나간다. 여기서 산이 “크다(ample)”는 것은, 그 안에서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풍경’이라 일컫는 것은 산과 물 사이의 상관관계로부터 나오는 끈끈함을 지니고 있다.  산은 물로부터 “생명력”을 얻어 낸다. 또한 물에게 산은 “얼굴” 또는 “앞면”이다. 그리하여 물은 산으로부터 “매력과 유혹의 힘”을 얻어 낸다.  중국의 회화와 사상은 산과 물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녀 이 풍경을 끊임없이 해체 

석도(石濤) 나와 풍경이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만든다는 공동 출산(coenfantement)의 개념  ‘나’와 ‘풍경’ 각각이 서로를 세상에 나오도록 만든다는 것이다[脫胎]  장자 “세상(天地)과 나는 함께 태어나니[共生]”, 나와 세상은 공동의 자연성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존재와 나는 하나”  “모든 존재는 나와 연루되어 있다[备于我]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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