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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선 / 길 위에서 접한 식물들에 대한 애도의 시선

박영택

장용선: 길 위에서 접한 식물들에 대한 애도의 시선

 


장용선은 자연에서 수집한 풀과 씨앗을 조각적 재료로 다루었다. 그것은 발견된 오브제이고 식물성의 레디메이드인 셈이다. 부드럽고 가변적이며 천연의 재료인 풀과 씨앗은 일정한 시간의 경과 속에서도 거의 변함없는 형태, 색감, 질량을 유지한 체 다소 낯선 구조로 다가온다. 전시장 내부의 벽에 걸친 선반 그리고 바닥과 천장에 설치된 풀과 씨앗은 자연에서 빠져나와 전시장 공간 안에서 산포되고 번식되어 부풀어 오르는 형국을 연출한다. 우선 기존 조각의 재료가 보여주는 견고한 질량감과 덩어리 감을 대신해 부드럽고 가변적인 자연재료가 하나의 단위가 되고, 이것들이 반복적으로 배열되어 다소 낯선 물성을 이루고 있는 구조다. 이 형태와 물성, 색감은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고 작가는 다만 그것들을 선택하고 수집해서 다시 보여준다. 작은 씨앗들은 투명한 용기 안에 담겨 있고 풀들은 바닥에 놓이거나 허공에 모빌처럼 매달려있다. 혹은 발광하는 조명기구와 접목되어 있어서 빛을 발하고 있기도 하다. 점멸의 과정을 보여주는 조명장치로 인해 흡사 황금빛으로 빛나는 강아지풀이 따스한 불빛 아래 부풀어 오르다가 서서히 사라지기를 거듭하는 환각적 장면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른바 디밍제어 시스템’, 이른바 조명제어 시스템에 의한 장치다. 그러니까 강아지풀이 유기적인 형상을 지닌 덩어리로 자리하고 있고 그 안에 자리한 LED디밍시스템은 주변 사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설정해 놓은 속도에 의해 점등과 소등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마치 작품 스스로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호흡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형국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또한 관객으로 하여금 대상을 수동적으로 관조하기 보다는 자신과 대등한 차원의 생명체를 마주하고 있는 체험을 안기는 한편 근접해갈수록 살아있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좀더 직접적으로 목도하게 하는 효과를 발산한다. 작품을 마주한 관객의 신체와 이동, 거리의 조건이라는 것이 작품에 있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시대 예술적 체험이란 사물과 공간이 각각 분리된 지각에 따른 관조나 판단이 아니라 사물과 공간 속에서 더불어 작용하고 반응하는 우리 몸의 특수한 조치임을 경험하게 하는 작업과도 나름 연관성을 지닌 작품인 셈이다. 한편 허공에 매달린 기이한 형태를 지닌 강아지풀이 스스로 발광하고 점멸하는 과정은 식물성의 존재가 생명체를 보존하고 이어가는 경이로운 과정을 목도하게 함과 동시에 작고 흔하면서도 경이로운 풀과 씨앗(자연)의 존재성을 새삼 주목하게 해준다. 다시 말해 이 작업은 전적으로자연미술적인 재료이고 그에 견인되는 익숙한 방법론을 보여준다. 인공물이 아닌 자연에서 직접 가져온 재료를 사용하고 있고 그것들을 조각적인 방법론 아래 조율하는 동시에 주어진 공간에 설치화해서 장소에 개입하는 전략 또한 구사하고 있다. 한편 그 공간에 들어 온 관객의 신체와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작품을 선보이는 한편 자신의 주변에서 발견된 자연과 생명체에 대한 나름의 생태학적 상상력과 단상을 선보이는 작업이다.

 

작가는 씨앗과 풀을 모은 작업에 모두 <보물>이란 제목을 달아주었다. 하찮고 흔하며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편 도시에서 배제되고 격리되는 아픔을 늘상 겪는 그런 풀과 씨앗들이다. 작가는 우연히 접한 그 풀과 씨앗을 수습하고 이를 집적시켜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것들을 또 다른 물성적 존재로 변환시키고 있다. 이 과정은 풀과 씨앗으로 공간을 채우는 과정이자 그것들에게 새로운 몸을 부여하고 덩어리와 질량을 채워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길에서 채취한 식물들이 집적되어 종자 병에 담겨있거나 천장에 매달려 있거나 바닥에 수북하게 쌓여 있다. 전시장 입구 바닥에는 사각형의 프레임, 얕은 박스형 구조물이 있고 그 안에 풀들이 펼쳐져있다. 관객은 그 풀을 밟고 전시장에 들어서야만 한다. 바닥에 놓인 사각의 틀은 일종의 화면, 프레임이자 전시장 바닥을 축소시켜 놓은 공간이기도 하다. 사각형 안에서 풀을 다시 보여주는가 하면 풀을 채워 넣은 공간, 풀을 입체화시킨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전시장에 들어온 관객은 부지불식간에 풀을 밟고 들어서면서 풀의 존재성을 자신의 신체로 확인하는 동시에 바닥에 깔린 풀을 자신의 몸무게로 눌러주면서 풀을 틀 안에 채워 넣는, 다져넣자 덩어리로 만드는 일종의 조각적 행위에 동참하게 된다. 그렇게 밟힌 풀들은 진한 날것의 비린내를 풍기며 전시장에 들어온 이들의 몸에 덤벼든다. 전시장 전체가 풀의 내음으로 가득해 마치 풀 섶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부여받을 수 있다. 그렇게 풀/식물성이 존재는 시각과 촉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기관에 조응하면서 자기의 존재성을 강하게 인지시킨다.

입구에서부터 바닥에 주목하게 만든 시선은 이후 공중에 매달린 풀들의 체적화가 이룬 묘한 형태감에 꽂힌다. 내부에 네트를 이룬 구조물을 만들고 이 안에 강아지풀을 꽂아 만들었다. 강아지풀이 오브제가 되고 대지에서 추출된 풀들은 또 다른 터에 자리 잡아 비교적 거대한 덩어리로 부풀어 올랐다. 묘한 질감과 피부로 이루어진 이 강아지풀의 체적화, 그러니까 반복과 집적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강아지풀은 특이한 물성을 지닌 조각이 되었다. 또한 전시장 한쪽에는 초록의 풀들이 무덤의 봉분 형태로 수북이 쌓여있다. 버려진 풀들을 모아 그 잔해를 기념하고 애도하는 심정으로 무덤을 만들어준 것도 같고 초록의 풀들로 뒤덮인 실제 봉분을 목도하는 체험도 준다. 이 풀들은 이른바 도심 녹지대 정비사업의 일환에 따라 양방향 차선 사이에 자리한 가로수와 관목, 그리고 가로등 사이사이에서 자라난 풀들을 제초기로 제거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결과물이다. 도시에서 버려지거나 제외되어야 할 식물의 존재를 우연히 발견한 작가가 그 풀들을 수습했고 그것들을 모아 봉분형태로 쌓아두거나 사각의 틀 안에 깔아둔 것이다. 그리고는 주변에 흩어진 다양한 씨앗들도 함께 수습했다.

그러니까 이 작업의 계기는 이른바 도시정비사업이란 명목 아래 도시 미관을 해치거나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혹은 거추장스럽게(?) 자라난, 무성하게 자리한 풀들을 깨끗하게 정돈하고자 제초해나가는 과정에서 잘려나간 풀의 존재에 대한 사유로부터 가능해진 것이다. 도시 공간이란 자연을 밀어낸 자리에서 가능했다. 도시는 자연을 지워낸 자리를 바탕으로 서식하고 풀들을 악착스레 밀어낸 자리에서 피어난다. 그러나 자연은 악착스레 그 경계에서 분주히 퍼져나가고 빈틈을 메꿔 나가기도 한다. 도시 공간 곳곳에는 그렇게 지워지고 사라지는 자연과 사라지지 않으려는 자연간의 긴장감 있는 투쟁이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산과 나무와 풀이 삭제된 공간이 도시가 되고 자연은 그 주변부로 밀려나가거나 도시 공간에 가축화된 상태로 관리되는가 하면 무심히 방치된다. 도심에 자리한 나무와 풀은 도시와 공생하는 자연, 아니 도시에 기생하는 기이한 자연이고 그것들은 끊임없이 보호와 훼손의 극단 속에서 처리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거주 공간 근거리에 위치한 신도시와 그곳에서 광폭하게 벌어지는 난개발, 그로인해 초래한 자연파괴와 생태계의 혼란,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서도 악착스레 자신의 생명력을 키워가는 풀의 자생력 등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불구적인 자연’, ‘훼손된 자연에 주목한 작가는 그 현장에서 제초된 풀과 흩어진 씨앗들을 수습해왔고 이를 집적시켜 전시장에 설치했다. 그로인해 강아지풀과 그 주변에 산개한 작은 씨앗들이 모종의 작품으로 나앉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작업의 배경에는 어떤 기준으로 자연을 선택, 배제, 훼손하는가라는 질문이 들어 있다. 인간의 자의적인 편견과 자본의 관점에 따라 특정 식물은 보호되는가 하면 다른 존재는 버려지고 지속해서 배제되고 차별화되는 과정에 대한 물음과 반성이 들어있다고 본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인간의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기준에 의해 바라보는 자연이 아닌 그 모든 자연의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표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작가는 제초된 풀과 씨앗들을 모아 조각적으로 몸을 만든 후 <보물>이란 제목을 붙이는 한편 이를 잠재적 천연기념물이라고도 본 것이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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