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 스스로 타자화 되고 삶

박영택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 스스로 타자화 되고 삶


박영택 (경기대교수,미술평론가)

 


3만 년 전 그림의 역사가 시작될 때 동굴의 벽면에 그려진 최초의 이미지는 현생 소의 먼 선조라고 하는 오로크스 내지는 순록 등을 묘사한 것이었다. 이후 미술사에서 동물의 형상은 주술이나 신화, 종교, 권력 등과 결부되어 다양한 상징으로 출몰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개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생애를 함께 해온 가장 친근한 반려동물이었던 관계로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도 매우 빈번하게 그림 속에 재현되어왔다. 개가 인간의 파트너로서 사랑을 받는 애완동물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부여받게 된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였다. 이른바 기술 중심적 노동 세계가 익명성을 지닌 채 생동감을 상실하고 오로지 짜여 진 계획에 따라 무미건조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초래하자 이로부터 의도적으로 벗어나려는 욕망이 반려견을 필요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인간이 현대 사회의 소외 조건들로 인하여 갈수록 고립되어 외로운 처지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 개가 애완동물이자 자녀의 대용물로 격상되게 된 것이다. 인간 상호간의 관계가 갈수록 계산된 목적성을 띠면서 냉랭한 소외감을 드러내는 이 시대에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율적이고 따뜻한 인간적인 접촉을 필요로 하지만 인간 상호간에 그와 같은 접촉이 이루어지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대신 아무 조건 없이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애완동물을 점점 더 찾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배신당하고 굴곡심한 감정으로 인해 사람과의 관계가 두려워질 때 개는 그 빈틈으로 파고 들어와 대체된다.

그래서인지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에서 반려동물에 대한 여러 작업을 접하고 있다. 자신이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회화를 선보인 노석미와 박형진, 다양한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윤정미의 사진작업, 한때 반려견이었다가 이후 잔인하게 버려진 유기견을 다룬 윤석남 등의 작업이 그렇다. 이들은 작업을 통해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최근 인구동향자료를 보면 반려인의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족구성원이 적어서 반려 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결혼이나 가족관계를 맺는 대신에 동물과 사는 삶을 적극 선택하고 있음을 자주 접한다. 인간과 동물이 특별한 인연,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오늘날 도시인의 상당수가 이전과는 다른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반려동물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외로움을 극복하거나 상처를 치유하는가 하면 나름의 행복을 도모하는 일의 강도가 무척 쌔졌다는 점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불특정 다수와의 피로감 높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을 대신해 그 자리를 반려동물로 대체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그만큼 무한경쟁사회로 초래된 인간간의 피로감, 굴곡 심한 감정의 교류와 왜곡되고 피곤한 소통으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인간에 대해 여러 환멸을 지닌 사람들이 인간 대신 차라리 언어적, 문자적 소통으로부터 자유로운 반려동물을 사랑과 애정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정황의 방증이다. 인간과의 매우 까다롭고 성가시며 공을 들여야 하는 감정적, 언어적, 욕체적 관계에 절망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나머지 상처받지 않는 반려견과의 관계를 선택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인간에서 벗어나거나 스스로가 타자화 되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의 삶보다는 인간과 반려동물의 삶이 늘어나고 있거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분명 반려동물들은 인간이 안기는 상처와 배신, 치욕 대신 즐거움과 위안을 준다. 물론 그만큼 배려와 돌봄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여간 저마다 행복하게 살고 싶고 외롭지 않기 위해 반려동물에 집착하고 있는 이 현상은 결국 그만큼 현대인들이 인간으로부터 너무 많은 상처를 받고 있고 삶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뜻일 게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