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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휴열 / 몸으로 그려 나간 그림, 접신의 그림

박영택

미륵 신앙의 본거지로 알려진 모악산은 김제 평야 동쪽에 우뚝 솟은 영험스러운 산이다. 그 산자락 아래에 살고 있는 유휴열의 그림에도 분명 그 산의 정기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그곳 어딘가에서 수많은 굿판이 벌어졌듯 유휴열의 작업실에서도 매일 그림 굿이 펼쳐진다. 화려한 색상과 빠른 속도감과 힘을 지닌 붓질, 그리고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펼쳐지는 색과 질료의 향연은 그대로 굿판에서 접하는 이미지와 춤, 소리 등을 환영처럼 떠올려준다. 아니면 무신도나 단청, 탱화나 꽃상여 등의 이미지도 연상된다.



生·놀이(장생도), 알루미늄, Oil Color, 90x180cm, 2008


하여간 그의 그림은 주체할 수 없는 모종의 기운, 신명으로 혼곤하다. 그것은 그림, 미술이라기보다는 한바탕 굿이나 푸닥거리, 살풀이와도 같다. 그는 영락없이 물감과 붓을 가지고 굿을 하는 무당이다. 주어진 캔버스를 마당으로 삼아 그 위를 종횡으로 누비고 다니며 색채를 지닌 물감의 질료성을 극대화하고 격렬한 붓질, 몸짓을 감행한다. 그대로 퍼포먼스이자 춤이고 가락이다. 그림의 외형은 서구의 액션페인팅, 추상표현주의와 유사한 듯 하지만 유휴열의 경우는 신명난 놀이, 춤사위와도 같은 한국의 전통적인 연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거의 타고난 기질이나 유전적인 데서 비롯된다.


그는 전북 지역의 향토성과 그 지역의 끈끈한 문화적 전통을 질펀하게 삭혀내는 편이다. 각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작가들은 많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 지역성을 작품 안에 오롯이 품어내고 있는 작가는 매우 드물다. 단지 그 지역에 거주한다고 지역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주는 문화적 전통이 깊은 고도이자 예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그 맥은 창백하다. 유휴열은 전주를 대표하는 진정한 지역작가다. 그 지역에 살아서가 아니라 전북 지역의 문화유산과 그곳에서 아득한 세월을 살아왔던 선조들의 생의 이력과 애환, 신명과 한 등을 그러모아 그리고 만들고 채우고 세워놓는다. 그렇다고 그것이 옛것의 박제화나 단순한 차용에 머물지 않는다. 전통적인 소재를 즉물적으로 화면에 재현하는 게 아니라 한국인의 기질과 심성, 토착적 세계인식과 종교, 색채감각과 생의 인식, 신명과 한 등을 세련된 회화적 어법으로 수렴하기에 그렇다.


이처럼 그의 그림은 현대미술의 어법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 저간에는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우리 전통미술의 특성과 한국인의 기질 같은 것들이 마구 요동친다. 화면은 그 박동을 격렬하게 들려준다. 그것은 거의 색채와 붓질로 이루어진 춤이고 노래이고 판소리 사설이고 구음과도 같다. 동시에 모든 생명체가 방사하는 기운이 가득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화면 가득 흘러넘치고 부유한다. 선이자 색채이고 이미지이자 질료이며 구상이자 추상이다. 그는 이성과 주체에 기반 한 화면구성이나 이분법을 죄다 지우고 철저하게 감각과 감성, 자신의 몸으로 그린다. 그는 화면 밖에 있지 않고 그 안에서 산다. 그에게 대상과 화면은 결코 타자가 아니다. 그는 모든 것들과 접신된 경지를 그린다. 이 접신의 능력이 그의 그림의 본질이고 힘이다.


유휴열은 영락없는 시골 사람 특유의 맘씨 좋게 생긴 얼굴과 다부진 기질, 넉넉한 품성을 품고 그야말로 신들린 듯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번 전북도립미술관의 초대전은 그간의 그의 화업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가 오랜 세월동안 일관되게 밀어 붙인 미술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새삼 생각나게 해준 전시였다. 지역 미술관의 본연의 업무인 지역미술인이 조망과 해석이란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전시이지만 진정한 지역작가, 아니 진정한 한국 작가의 개인전이었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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