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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 그리고 쓰고 새긴 듯한, 검은 그림

박영택

김정환의 그림은 검정색의 물질이 점유하고 있는 부분과 나머지 부분, 이른바 여백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종이위에 칠해진 영역과 칠해지지 않고 의도적으로, 우연적으로 불가피하게 남겨진 영역으로 형성된 이 미니멀 한 화면은 주어진 사각형의 평면을 다양하게 절개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재현하기 보다는 공간을 분할하고 나누고 의미 있는 구성으로 응고시켰다는 인상이다. 순간 칠한 부분과 남겨진 부분, 의미를 부여한 공간과 나머지 부분, 보여주는 부분(가시적 영역)과 의도적으로 은폐한, 억압한(비가시적 영역) 부분간의 상호작용, 길항관계가 이루어진다.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한 공간, 음양의 공간 대비가 흥미롭다. 또한 그것은 쓰기와 그리기, 문자와 그림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지우거나 그러한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원초적인 흔적과도 같다. 왜냐하면 이 그림은 그린 것인지 쓴 것인지, 회화적으로 칠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저부조(조각)로 물질을 마감한 것인지 애매한 느낌을 준다. 화면의 상당부분을 시커멓게 덮고 있는 검은 물질(검정색)은 거대한 흐름, 기운, 운동의 경로 같기도 하고 특정 형상을 남기려는 시도 같기도 하고 문자의 부분 같다는 인상을 준다. 동시에 그 어느 것으로도 확정되지 않고 미끄러진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에서는 칠해지고 남겨진 부분, 화면을 채운 검은색의 물성이 주는 힘과 그 색채의 의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오로지 단 하나의 색, 흑백의 구성만으로 전달하는 압축과 절제의 미학 같은 것들이 숨을 쉬고 있다.



묵음(黙吟, Poetry with Silence)16-03-19, 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 돌가루, 캔버스에 수묵담채, 117×80cm, 2016


종이의 일정 부분을 검은 물질이 단호하게 채우고 덮어나갔고 미처 다 메우지 못하고 남겨진 공간에 생겨난 자연스런 흔적이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그림이다.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캔버스에 한지를 3차례 붙여 긴장감 있는, '짱짱한' 화면을 만든 후에 그 위로 한 달 이상 삭힌 먹물, 이른바 퇴묵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그런 후에 돌가루(금강사)를 바인더로 붙여서 완성을 한다. 따라서 화면은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된다. 한지의 표면과 일체가 된 수묵과 그 위를 일정한 두께를 형성하면서 뒤덮고 있는 물질의 층은 이원적이면서도 마치 하나의 층 인 것처럼 보인다. 단단하고 힘 있는 검정물질이 덮고 있는 층의 바닥에는 먹의 번짐이나 얼룩이 불가피하게 배어나오면서 그 윗면의 물성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인위성으로 단호하게 칠해진 측면과 우연적,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자취의 대조! 마치 무거운 물질이 누르고 있고 그 압력으로 인해 먹물의 얼룩, 번짐이 밀려나오고 있다는 모종의 상황성을 안겨준다. 그러한 측면이 이 화면에 드라마, 서사성을 부여한다. 화면은 회화이자 동시에 조각적인 요소를 지니면서 다가온다. 두툼하게 발려진 돌가루(금강사)는 검은 색이자 물질이고 특정 형상, 선을 만들면서 동시에 마티에르를 형성하고 촉각적인 상태를 표면에 만든다. 그것은 손으로 더듬고 싶은 피부, 표면이 된다. 아마도 이는 수묵만으로 전달하기에는 물성의 힘이 약하다는 인식에 기인한 재료 선택인 것 같다. 동시에 그 표면은 조명을 받으면 빛을 발하면서 관자의 시선, 육체의 흐름, 시간의 추이에 조응하며 발산한다.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화면이지만 화면구성의 묘미가 좀더 필요해 보인다. 이른바 풍부한 회화성이랄까? 그리고 단호하게 칠해진, 마감된 금강사의 질감이 효과적인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그것이 수묵과 필의 맛을 그만큼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질감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면서도 먹이 지닌 검정의 그 유현한 맛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구현하느냐의 과제는 여전히 남을 것이다.



묵음(黙吟, Poetry with Silence)16-07-23, 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 돌가루, 캔버스에 수묵담채, 146×97cm, 2016


김정환의 화면은 마치 전각의 작은 사각형 안에서 구현되는 방촌의 미학이나 서예에서 엿볼 수 있는 검은색과 여백의 미감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작가의 다양한 이력에서 연유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서예를 했고 이후 서예작가를 위시해 전각 및 서예평론, 회화작업 등으로 영역을 넓혀온 이다. 현재 그는 서예와 전각을 기본으로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추상회화를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지 서예와 전각을 응용한 특정한 조형행위에 머물지 않고 그 저간에 자리한 특유의 조형론, 동양의 예술론 등에서 길어 올린 문제의식을 대상화하면서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검은 색에 의미를 부여하고 '검을 현'이 지닌 여러 뜻, 그 문자가 거느리고 있는 언어적 의미망을 반추시킨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수묵의 미학이 중심축일 것이다. 동시에 동양화론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언어와 회화의 관계(문자와 그림, 시와 언어) 또한 중요해 보인다. 동양문화권에서, 동양화에서 그림과 문자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근대 이후 문자와 그림은 별개의 세계로 나뉘었다. 이번 근작의 제목은 「묵음(黙吟)」이다. 묵음이란 '소리 없이 시를 읊다'라는 뜻이다. 그의 그림은 문자의 자취를, 시의 자리를 이미지화시킨다. 이미지와 문자는 상호보조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다. 옛 그림을 보면 이미지와 문자는 항시 화면 안에 공존하고 길항했다. 우리가 접하고 경험하고 추억하는 세계는 이미지만으로, 문자만으로 자립하기 어려운 세계다. 김정환은 흑백의 단순한 구성을 통해 마치 그리듯이, 쓰듯이, 새기듯이 무엇인가를 흔적화 했다. 그것은 문자의 어느 한 부분을, 전각의 어느 한 파편을, 그림의 어느 한 부위를 추측케 한다.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최대한 단순한 이미지와 검정색만으로 모든 것을 압축해서 전달하는 힘 있는 회화를 지향한다. 서예나 전각 같은 그림일 것이다. 서예나 전각이 현대회화로서 승화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작가의 의도가 투영된 그림이란 얘기다. 사실 이런 시도는 근대 이후 동양화가들이나 대다수 작가들이 한국의 전통미술을 서구 현대회화와의 충격 속에서 어떻게 계승, 접목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지난한 과제 속에서 매번 부딪쳤고 부대꼈던 문제의식이다. 사실 그러한 흔적의 결과가 한국 근·현대미술의 궤적이기도 하다. 김정환은 서예, 전각, 서예평론, 회화를 두루 관통해 온 이로서 그 모두를 아울러서 앞서의 과제를 구현하려 한다. 최근작은 그에 따른 의미 있는 결과물로 보인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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