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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평론

박영택

작가는 산책길에서 자연의 편린을 수집했다. 꽃과 나뭇잎, 작은 열매들이다. 나무로부터 부풀어 오른 것들이자 스스로 그렇게 된 형상들이고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신비스런 생명의 결정으로 환하게 눈을 끄는 것들이다. 땅에 누워있는 그것들은 나무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으로 더 이상 깊은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수액을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해 말라가는 것들이다. 몸체로부터 절연된 것들은 죽은 것들이고 곧 사라질 것들이다. 중력의 법칙에 따라 바닥으로 추락한 이 작고 가벼운 식물은 제 작은 몸으로 생명체의 존엄함을 스스로 발설한다. 오묘하고 기특한 형태와 아득한 이치들이 저 작은 몸에 잔뜩 웅크리고 있다. 작가의 눈에 바로 그것들이 다가왔다. 그래서 동일한 동선의 반복되는 산책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들을 조심스레 수습했다. 수습한 것들은 종이의 갈피 속에서 약 일 년여의 시간을 지긋이 눌려 지낸 후 피사체로 호출되었다. 단독으로 설정된 이 작은 식물은 일종의 미라다. 이 사진작업은 죽은 것들의 기념이고 애도에 해당한다.




Gum bichromate, 25×20cm, 2015


하나 혹은 두 개가 적조하게 배치된 구성과 단색조로 물들인 화면 아래 식물들은 공허를 두르고 화석처럼 자리하고 있다. 정물이면서 식물도감의 성격 같은 것이 검출된다.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차분하게 바라보며 촬영했다. 관심과 무관심의 사이에 놓인 시선이다. 검바이크로메이트기법(검프린팅)으로 이루어진 이 작업은 실은 대상의 기계적 재현인 사진과 회화 사이에서 유동한다. 그것은 사진의 명확한 윤곽선을 뭉개고 회화가 미치지 못하는 객관세계의 재현을 실현한다. 동시에 서정적인 여운이 동반되는 색채를 힘껏 우려내면서 차가운 사진의 기록성을 넘어서고자 하며 소묘에서 접하는 자연스러운 맛을 끌어들인다. 사물을 통제해서 있는 그대로를 재현한 사진이지만 동시에 주변배경을 지우고 오로지 대상에 세밀하게 달라붙어 역설적으로 추상적인 공간에 놓인 기이한 사물과 맞닿도록 한다. 또한 사물이 지닌 고유색이 아니라 추상적인, 임의의 단색이 칠해진 표면은 객관적 대상을 그로부터 독립된 또 다른 세계로 감지시킨다. 모노크롬으로 착색된 이 사진은 비현실적인 공간에 영원처럼 자리한 한 생명체를 오랫동안 응시하게 해준다.



Gum bichromate, 60×40cm, 2015


사진이지만 사진이기를 그치고 회화이지만 회화에서 미끄러지면서 그 둘의 장점을 끌어들여 응고시킨다. 감광제와 물감을 혼합해 필름과 함께 빛에 노출시키면 빛에 노출된 부분은 물감이 굳고 노출 정도에 반비례해 물에 씻겨나가면서 상이 맺히는, 다분히 회화적인 이 인화기법은 까다롭고 집요한 노동과 지난한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작가가 수집한 간절한 식물/생명체를 다시 재현하는 이유와 긴밀히 맞닿아있다. 사러지는 것, 죽은 것을 환생할 방법은 없다. 다만 이미지를 빌어 그것의 존재성을 불멸의 것으로 대치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이미지의 근원에 자리한 욕망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사라지는 것, 생명의 주기, 그리고 살아있음에 대한 복잡한 여러 단상을 비밀스럽게 끄집어낸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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