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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들 展 리뷰

박영택


내 몸 바깥의 것이 세계이다. 그러니 세계란 몸을 의식하고 있는 자의 피부에서 떠도는 것들이다. 그것은 구체적이면서도 신기루 같아 잘 실감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세계는 항구적으로 존재하며 내 몸과 의식에 부단히 다가와 성가시게 한다. 어쩌면 모든 인간의 사유의 원천은 저 세계다. 그것은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하고 알 것 같기도 하지만 난해하고 텅 구멍 같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계, 이미지를 다시 본다. 유독 이러한 보기에 대해 민간하게 반응하고 그러한 결과를 나름 형상화, 물질화하는 이들을 작가라고 부른다. 


미술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사물을 다시 보게 해준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보는 것이 아니라 처음 보는 것처럼 보는 일이고 자기만의 눈과 마음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다. 그로인해 세계는 다시 창조되고 열린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일러주는 것이 바로 미술이다. 그래서 좋은 미술작품은 늘 보던 것이지만 그것을 낯설고 희한하게 보여주면서 그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동시에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은밀히 알려준다. 그로인해 우리는 사물과 세계를 새삼 다시 만나고 깨닫는다. 그것은 삶을 무척이나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바라보는 세계를 이해하고 그 연유를 깊이 깨우치는 것이 그래서 필요하다. 나만의 시선이 아니라 그를 넘어서서 무수한 타자의 시선을 껴안으면서 말이다. 


'살아있는 것들'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4명의 화가들이 꾸민 전시다. 모두 특정 도시에 사는 이들이고 그 공간, 세계에서 보고 느끼고 반응한 것들에 대한 의문을 이미지로 풀어내고 있다. 그 특정 공간은 단지 대한민국의 어느 지방 도시에 불과하지 않다. 그 도시는 이미 이곳 남한의 모든 도시를 대변하고 그러한 도시의 속성과 본질을 순식간에 드러내버린다. 도시를 삶의 터전으로, 생의 조건으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 작가들은 자기 몸의 강력한 타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실존적, 심리적인 것들을 발아시키는 그 도시공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고민스러웠던 것 같다. 핵심적인 생의 조건이 된 이 도시공간에서 살아있는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더불어 저 도시를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등이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피할 수 없는 질문이고 고민이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기 몸이 다양한 감각과 의식의 기원에 대한 탐색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위로 현실에 대한 여러 단상들이 어지럽게 선회한다. 


김민정, 김해진, 왕덕경, 정문식 이 네 명의 작가들의 작업은 모두 자신들이 살고 있는 특정 도시공간을 소재로 다룬다. 회화와 주를 이루고 그것이 확대, 연장되면서 설치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도시를 보는 시선은 우울하고 비관적이다. 도시를 불안하고 음흉하고 불길한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끊임없이 지어지고 다시 사라지는 건물들, 매번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공간, 과거의 것은 흔적도 없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찰나적으로만 존재하다 이내 없어지는 것들의 어지러운 반복, 그런 소멸과 환생이 교차하는 도시의 속성을 음울하게 지켜본다. 그리고 그 흔적, 파편을 건져 올린다.



김민정, 창, 캔버스에 유채, 130.5×265cm, 2016


김민정 작가는 건설 중인 건물을 소재로 해서 그렸다. 공사현장의 건물들이 대부분인데 비교적 원경에서 포착했다. 수직으로 솟구치듯 올라오는 거대한 건물의 외관, 짙은 회색빛 콘크리트와 지지분한 천막, 날카롭게 융기된 철근덩이들을 차갑게 보여준다. 그 모습은 수직으로 솟아오른, 그래서 매우 남근적인 자본의 욕망과 동시에 획일성과 모종의 강제성을 무겁게 보여준다. 이 건물 역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내 폐허가 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욕망이 대체할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모습에서 일종의 공허와 무심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심리적인 도시풍경화로서 '도시의 형태성과 변모하는 속도에 질문을 던지며 도시적 삶에 대한 공허하기까지 한 개인의 심리'를 표현하고자 한다. 문제는 그러한 심리가 과연 어떻게 그림의 표면에서 형상화될 수 있느냐에 있어 보인다. 그림의 표면에서 그러한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외화 할 수 있는 힘 말이다.



김해진, 무제,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227.3×545.4cm, 2015


김해진은 오로지 건물의 위쪽 상판, 옥상을 적조하게 비쳐준다. 보는 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옥상 전체를 조망하게 해주는 구도다. 주변 공간은 지워지고 옥상의 표면만이 스산하게 응고되어 있다. 몇 가지 사물들이 버려지듯 흩어져 있는 옥상은 시선에서 배제된 곳이자 소외된 곳이다. 어쩌면 도시공간에서 유배된 곳,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생의 거처 같은 곳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 공간을 다시 보여주면서, 자신만의 감각으로 물들여 재구성하면서 그 공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왕덕경, 빈집, 머물러있는 것들, 500 x 500 cm, installation silica sand, receptacles from demolition Zone, 2016


왕덕경이 주목한 것은 빈집의 내부에 있는 사물들이다. 이 폐허는 한때 그곳을 유일한 생의 거점으로 삼았다 홀연 사라진 이들이 삶을 추억하게 해준다. 따라서 빈병 혹은 버려진 집의 어느 틈 사이에서 눈물겹게 자라는 잡초와 같은 남겨진 것들은 단지 특정 오브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애와 온기, 기억과 역사를 추억하게 해주는 매개다. 아마도 개발로 인해 쫓겨나거나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황급히 다른 곳으로 떠나간 이들의 여러 생의 사연들이 이 빈병과 기물에는 묻어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 것들을 생의 조건인 바닥에 배열하는 한편 그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순간을 사진으로 저장했다. 현장에서 이루어진 설치이자 그 결과물이 사진으로 남는 개념적 작업에 해당한다. 폐허와 빈 곳을 바라보게 해주는 시선에 의해 우리들의 시선도 그곳을 훑어나간다.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삶과 그 개별적인 인생에 대해 잠시 혼곤한 상념에 잠겨본다.



정문식, 남천동 비치 타운, 162 x 112 cm, oil on canvas, 2016


정문식의 풍경 역시 구체적인 도시이면서도 비현실감이 감도는 풍경이다. 전체적으로 블루의 단색톤으로 조율된 색채감각이 이를 더욱 조장한다. 매우 습한 공간 속에 잠겨있는 도시는 기이하고 모호하다. 그 역시 버려지고 방치된, 사라져버린 공간에 대한 은유로서의 도시풍경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포르말린이라는 액체 속에 잠겨있는 도시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로인해 도시는 마치 '거대한 수족관' 속에 진열된 도시와도 같다. 그 풍경은 흡사 수몰지구의 풍경이거나 자연재해로 망실된 공간을 은유한다.


이들 작업은 모두 광의의 풍경화/도시풍경화에 속한다. 도시풍경화란 단지 도시를 그림의 소재로 한 게 아니라 이곳 도시공간의 특성과 성격이랄까, 현재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공간이 과연 나의 삶과 감각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 가 등을 질문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이미 1990년대 중반 이후 이곳 한국미술계에서는 당시 젊은 작가들이 급격히 달라지며 무수한 변화를 거듭하는가 하면 그곳에 사는 이들의 감각과 감수성을 변질시켜나가는 것에 주목하면서 거대한 소비자본의 공간으로 변화되어 가는 도시를 문제시한 작업이 있어왔고 이후로 꾸준히 도시를 소재로 한 작업들은 줄을 잇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동시대의 도시가 문제적이라는 얘기다. 전통사회와는 달리 이제 도시는 모든 이의 생의 조건이 되었고 피할 수 없는 생존의 토대이다. 문제는 그 도시가 추상적이고 비어있는 곳이 아니라 자본과 상품과 소비와 욕망 등이 어지럽게 얽히면서 그 안에서 사는 이들을 특정한 인간형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도시형 인간으로 길들여지고 있으며 이미 도시가 주는 풍요로움과 욕망에 깊숙이 침전된 존재다. 따라서 공간은 물리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규정짓고 몸과 의식, 감각을 조정하고 의도하는 대로 재구성하는 강력한 기계가 되었다. 문제는 그로부터 달아날 방법, 자유로울 수 있는 방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이들 작가들이 재현하는 도시의 다분히 비극적이고 음울하다. 종말론적이라고나 할까? 이는 오늘날 젊은 세대가 인식하고 있는, 체감하고 있는 도시 나아가 우리 삶/세계가 어떠한지를 암시한다. 따라서 이들의 도시공간을 다루는 작업은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살아남느냐 하는 절박하고 불가피한 문제를 해명하는 차원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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