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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한 / 약한 존재들

박영택

약한 존재들


미술이 애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는 믿음에서 일 것이다. 예를 들어 죽은 이의 시신을 대신해 이미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순간 이제 이미지는 산 자들에게 죽은 이의 육체, 그 소멸해버린, 부재의 안타까움과 망실의 서러움을 보듬어주는 매개가 되었다. 애초에 이미지가 그런 맥락에서 탄생했다면 오늘날 이미지 역시 그와 유사한 기능을 여전히 행사한다. 대중매체에서 쏟아내는 무수한 이미지들은 현대인의 욕망과 상처를 저마다 치유해 줄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달려드는 이미지들이다. 그런가하면 이른바 순수미술이라 일컫는 것들 역시 현대인의 처한 여러 상황적 징후를 소재로 다루면서 치유적 기능을 도모하고 있음도 흥미롭다. 사람들은 살면서 저마다 자신의 상처를 대신해줄 그 무엇인가를 욕망한다. 부재와 결핍에 맞서는 것들을 요구한다. 인간의 삶과 문화란 것 또한 그와 같은 요구에 부응해왔던 것은 아닐까? 




약손, 72.7x60.6cm, Oil on Canvas, 2015


이두한은 일상에서 접한 소소한 장면에서 무엇인가를 끄집어낸다. 그의 그림의 전략은 이처럼 일상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일상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무척이나 구체적인 것이다. 삶의 동선에서 접한 매순간의 장면들이 그대로 가시처럼 박혀 그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고 그는 그것을 공들여 그림으로 형상화한다. 근작은 음식물을 확대해서 그려놓은 것과 그것을 섭취하는 사람들의 모습(대부분 혼자 식사하는 남자들), 그리고 작은 약병과 연고를 단독으로 설정해서 그린 그림들이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엿보는 장면처럼 과감하게 잘려나간 프레임과 클로즈업으로 부각시킨 대상으로 인해 보는 이들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것은 모종의 상황을 강조하는 연출이다. 정지화면처럼 부동으로 자리한 장면은 만화의 한 컷 마냥 응고되어서 연속적인 순간, 내러티브를 떠올리게 한다. 음식을 먹고 있는 순간을 긴장감 있게 멈춰 세운 이 그림은 사실적인 재현에 가깝지만 다소 흐릿하고 모호한 색채감,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는 분위기, 낯선 구도, 암시적인 장면 등을 통해 보는 이의 상상력과 감정의 흡입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그림을 매개로 그림 속 장면, 그 상황에 대해 함께 생각하기를 권유하는 것 같다.


약, 연고와 음식물은 삶을 영위해나가는데 있어 불가피한 것들이다. 간호사의 얼굴이 그려진 안티프라민 통과 후시딘 연고 등은 어느 집이나 상시 보유하고 있는 비상약일 것이다. 상처에 바르는 약이나 배고픈 위장을 채워주는 음식은 공히 치유적 기능을 한다. 우리네 삶은 실상 병과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정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건강에 대한 두려움과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깊은 편이다. 그러나 근자에 들어와 미디어에서는 건강과 음식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과도하게 생산되고 이에 대한 욕망을 부쩍 고조시킨다는 느낌이다. 이른바 '먹방'과 '쿡방'이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 '먹방'이 음식을 먹는 상황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쿡방'은 그 음식을 만드는 상황에 집중한다. 그래서 셰프들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요리에 대한 광풍이 불며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시급한 일이 되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오로지 건강과 음식, 먹는 일이 된 것이다. 그러한 소비로만 몰아세운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는 엔터테인먼트와 비즈니스가 되었다. 오늘날 대중문화는 '인간의 가장 일차원적인 감각인 식욕의 영역을 판타지로 장악'(문강형준) 해버렸다. 이는 우리의 삶이 미디어 재현과 상품의 세계, 곧 비즈니스의 세계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미술계에서도 음식물을 재현하는 여러 작품들이 등장한다. 건강과 식욕에 대한 욕망은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고 생존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긴 하지만 이 감각마저 자본화하고 있는 현재의 추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식후 30분, 33.3x24.2cm, Oil on Canvas, 2015


이두한은 병원에서 우연히 어린 시절에 상처가 나면 바르곤 했던 연고를 보았다. 순간 아픈 상처를 이내 낫게 해주었던 약에 대한 추억과 함께 늘상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을 떠올렸다. 신체적 상처뿐만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 내지는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온갖 상처들이 있다. 누구도 그 상처를 피할 수 없어 저마다 병원이나 약국에 가서 치료를 받는가 하면 맛있는 음식을 섭취하기도 한다. 오늘날 음식은 단지 배고픔을 피하는 것만이 아니라 온갖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켜주거나 위로해주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힐링의 수단으로 '먹방'에 몰두한다. 그것이 매스컴과 자본의 힘에 의해 휘둘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온갖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고 더없이 공허한 마음에 시달리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음식이 거의 유일한 위안과 힐링의 존재가 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작가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과 음식물, 그리고 연고와 약 혹은 식후의 흡연이나 술자리에서의 사소한 싸움 등을 포착한 장면을 통해 동시대인의 삶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자리는 동시에 자신의 삶의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육체를 지니며 배고픔과 상처에, 빈한하게 노출된 존재들이다. 그러니 먹고 바르고 흡입하는 것들 없는 생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연고와 음식물을 우리에게 선사하듯 그려 보여준다. 그것은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작은 선물 같다. 그 마음이 깊고 아득하다. 


'음식이 마음의 허기와 상처를 완전히 덮을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본인은 어릴 적 자주 발랐던 연고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음식과 지친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이 그림들을 통해서 마음이 지쳐있는 현대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이두한)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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