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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연 / 쓸모없는 화려함

박영택

쓸모없는 화려함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순식간에 포획한다. 따라서 사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선험적으로 찍을 대상이 마련되어야 하며 그것이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사진은 대상과 시간을 동시에 겨냥한다. 레디메이드이미지를 다루는 사진은 대상을 발견하는 일이고 그 대상을 낯설게 보는 일이다, 그리고는 프레임에 가둔다. 촬영 후에도 대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사진 속에 들어와 박힌 대상은 어느 한 순간의 것이기에 그것은 있음과 없음 사이에 기이하게 걸쳐있다. 이미 사라져 버린 어느 한 순간을 애도하는 것이다. 인류는 특수한 사라짐의 방식을 발명한 유일 종이라고 보드리야르는 말한다. 그는 실제 세상이 존재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그 세상은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사물을 재현하고, 명명하며, 개념화하면서 인간은 그것을 존재하게 하고, 동시에 사라짐 속으로 떠밀며, 그 생경한 현실성으로부터 절묘하게 멀어지게 했다고 한다. 하나의 사물이 명명되고, 재현과 개념이 그 사물을 포박하는 순간은 바로 사물이 그 에너지를 상실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사물은 그 개념이 나타나면 사라지기 시작한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무엇이 남는가이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사라짐의 기초 위에서 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보드리야르는 사물을 정말 명료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라짐과 연관 지어 이해해야 하며 그보다 더 나은 분석들은 없다고 말한다. (장 보드리야르, 『사라짐에 대하여』, 하태완 옮김, 민음사, 2012, 39쪽)



sugar 06, 라이트젯 C 프린트, 225×150cm, 2015


구성연의 사진은 이러한 사실을 좀 더 강화해서 찍은 대상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리게 한다. 동시에 작가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찍을 대상을 공들여 만든다. 그러나 그 대상은 시간의 흐름 속에 소멸될 것이다. 시간, 온도 등에 의해 이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재료를 사용해 만들기 때문이다. 구성연은 자신이 만들었기에 유일무이한 존재를 찍는 것이고 나아가 그것들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순간 이내 소멸하기에 그 대상을 촬영하는 이유, 알리바이가 좀 더 분명해졌다. 아마도 작가의 방법론은 왜 내가 그것을 사진으로 꼭 찍어야만 할까? 라는 의문에 답하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르겠다. 소멸과 허무에 대한 나름의 대응인 셈이다.


구성연의 작업은 모두 실내에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사진으로 찍을 만한 대상을 찾으러 세상을, 오지를 헤매고 다닐 때 작가는 집에서 팝콘이나 사탕을 먹어가면서 그것들을 가지고 꽃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짜 꽃을 실재처럼 찍어놓는다. 팝콘과 사탕은 꽃을 흉내 내고 사진은 이를 그럴듯한 진짜 꽃처럼 위장한다. 그것은 사진이 인증의 자료임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사진은 결코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팝콘과 사탕은 변질되고 녹아 사라진다. 사진으로 담은 대상이 무로 돌아가 버린다.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번에는 설탕으로 화려한 장식이 깃든 병을 만들어 촬영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에 설탕은 녹아서 바닥에 액체성으로 흘러내리기기까지 한다. 가관이다. 동시에 사진이 일반적으로 망막에 호소한다면 구성연의 사진은 한결같이 미각, 촉각 등의 다양한 감각을 요구한다. 근작 역시 사진 속의 화병들을 혓바닥으로 빨고 싶어진다. 어린 시절 달고나에 대한 추억이 상기된다. 설탕은 달짝지근한 음식이며 녹을 때는 매우 끈적거린다. 그것은 욕망과 무척 닮았다. 사랑도 그렇다. 달콤하고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반짝거리지만 이내 끈적거리고 질척인다. 얼마의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버린다. 결국 구성연의 사탕, 설탕으로 만든 꽃이나 화려한 병 들은 모두 욕망과 사랑에 대한 메타포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조각은 견고하고 영속적인 물질로 구현되었다. 인간의 몸을 단단하며 내구성이 강한 재료로 재현했다. 부드럽고 말랑거리며 이내 썩어가는 살 대신에 돌이나 나무, 금속 등의 견고한 물질로 대체하고자 한 것이다. 당연히 거기엔 시간의 지배를 받아 사라지는 육체를 영속적인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희구가 내재되어 있다. 부디 썩지 말고 사라지지 말고 영원히 산 자들이 눈에 축복처럼 남아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 중 가장 단단하고 영원히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물질의 표면에 인간의 몸을 비벼 넣었다. 그것이 조각의 역사이고 조각 재료의 역사다. 반면 구성연은 단단하고 영원성을 보장하는 재료 대신에 설탕을 이용해 형태가 변하는 '조각'을 만들었다. 그것은 확고한 형태를 지닌 조각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생성적인 조각이자 시간의 추이에 따라 반응하는 조각이다. 불변하며 움직이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일반적인 조각인데 그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동시에 그 믿음을 순간 무너뜨리기에 적절한 대상으로 작가는 설탕을 선택했다.


근작은 황학동에서 발품을 팔아 수집한 이상한 화병과 접시들에서 시작했다.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온 이 장식용 화병들은 온갖 치장을 외관에 가득 두르고 있다. 다시 괴이하기까지 한 이 장식들은 키치의 운명이다. 유럽문화권에서 기원한 원본들을 모방하고 있는 조악한 치장, 짝퉁들이다. 물론 이런 것들을 선호하는 취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아마도 카페나 음식점, 혹은 집안의 어느 구석에 뜬금없이 위치해서 마냥 반짝거릴 것이다. 나는 그런 장식들을 보면 슬프다. 아름답고 화려하고야 말겠다며 유럽의 궁전이나 귀족의 저택 등에 사용되던 것들을 흉내 낸 이 우스꽝스러운 가짜들은 마치 가루상처럼 번쩍거릴 뿐이다. 작가는 우선 수집한 화병으로 거푸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설탕을 165도로 끓여 녹여서 부은 후에 이를 떠냈다. 그리고 촬영을 했다. 달고나 만들기나 설탕 뽑기의 추억이 어른거린다. 이후 설탕으로 만든 화병은 공기, 온도. 시간 등 인간 삶에 미치는 환경 요소로 인해 변화한다. 지상의 모든 것들은 공기, 온도와 접촉하여 산화와 부패, 발효의 과정을 겪는다.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또는 변하지 않길 원하는 바람을 덧없이 깨는 일이기도 하다. 존재와 부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고체였다가 서서히 녹으면서 액체가 되는 설탕의 물질성을 이용하는 작업으로 가시화된다. 결국 이 사진은 시간의 밀도를 통해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 존재와 부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도 말해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사라진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생명이다. 사물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마음도, 열정도 욕망도 모두 그렇다. 저렇게 처연하게 녹아 흐르는 설탕과도 같은 것이다. 인생사 모두 속절없고 처연하다. 그러니 이 사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종국에는 사라진다는 자명한 사실, 우리가 보는 시간은 결코 고정시킬 수 없으며 다만 흐르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우울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 소멸의 과정은 역으로 이 현재를 충실히 긍정하는 마음으로 기울게 한다. 맹렬히 사라지는 현재의 순간순간을 그저 충실히 겪어내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쓸모없는 화려한 장식과 달콤함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작가가 쓴 매력적인 작업노트를 다시 읽는다. 이미 이 글만으로도 구성연의 근작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


'나는 물건들을 사랑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연을 사랑한다거나 엄마를 사랑한다거나 자유와 정의를 사랑한다고 할 때와 달리 내가 물건을 사랑한다고 할 때 나는 언제나 조금 부끄럽다. 내가 끌어안고 있는 물건들이 대부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물건들은 모두 소위 '장식품'이다. 실용적인 기능이 거의 없는 이 화려한 물건들의 외양은 과거 왕궁이나 사원에 놓여 있었을 자신의 원형들을 본떠 만들어졌다. 황금과 보석과 상아로 되어 있을 그 오리지날과 달리 놋쇠와 강화석고로 만들어졌지만 이것들도 역시 '장식'이리는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싸구려 재료로 만들어진 탓에 이 물건들은 가치 없는 것이 되었으나 그 덕분에 전쟁도 살육도 일으키지 않는다. 왕이나 귀족을 위한 것도 신을 위한 것도 아닌 이 물건들은 그저 어디에서건 '장식'으로 불리다가 평화롭게 사라질 것이다. 나는 설탕으로 이 물건들을 다시 만든다. 황금색으로 빛나고 황금처럼 번쩍거리지만 설탕을 녹여 만든 이 장식품들은 애초에 그랬듯이 아무 기능도 없이 조명 아래 번쩍이며 한 장의 사진을 남기고 녹아 없어진다.' (작가노트)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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