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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욱 /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의 기록

박영택

최진욱 /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의 기록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최진욱은 오랫동안 광고와 일러스트레이션 일에 종사해왔다. 주문자의 요청에 의한 작업을 제작해온 것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개인적인 그림, 가능하다면 독자적인 그림에 대한 의욕을 느꼈다고 한다. 더 이상 다른 이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부름에 의한 그림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한 개인의 자아를 반영하는 하나의 미술작품, 혹은 디자인이나 순수미술 등의 구분 없이 작가의 창작품으로서의 시각이미지에 대한 요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그리고자 하는 게 무엇이며 왜 그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곤혹스러운 물음도 뒤를 이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주문자의 요구에 응해왔던 그에게 스스로 그림의 내용과 기법을 정하는 것이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또한 그림의 내용뿐만 아니라 기존의 관습적인 표현방법과는 다른 길에 대한 모색도 병행하게 된다. 



그들에게 주어진 공간, 나무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 18×18cm, 2014


그래서 그는 우선적으로 평면에서 벗어나고자 그림을 입체로 만들어 보였다. 납작한 평면성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미지가 조각이 되거나 회화가 오브제가 되는 작업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른바 레디메이드 작업이자 그것을 적극 활용한 그림이다. 그 결과 나무를 이용해 윤곽을 오려내고 그 위에 채색을 가해 그림을 그린 후에 이를 박스, 일종의 프레임 안에 배치해서 입체로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서시적인 조각이자 미니어처에 가까운 작업이다. 단순하고 간략하게 형상화 한 인물, 나무, 집 등이 연결되어 카툰과 같은 이미지를 안긴다. 입체로 만들어진 일러스트레이션인 셈이다.


그가 사용한 나무들은 대부분 재활용한 것들이다. 그러니까 버려진 사과상자 또는 생선상자를 이용하기도 하고 MDF, 합판 등을 이용한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나무토막들을 수집해 이를 분해하고 사포로 문질러 나뭇결이나 색감, 질감을 살려낸 후 그 위에 작가가 구상한 형태를 스케치하고 그 윤곽을 따라 톱을 이용해 오려냈다. 그런 후에 채색작업과 최종적으로 바니쉬를 칠해 표면을 마감한 것이다. 이 작업은 우선 일상에서 활용되고 이후 버려진 것들을 환생시키는 일종의 '리사이클링'작업이자 환경 친화적인 작업에 해당한다. 레디메이드작업의 일종이기도 하다. 그것들 안에 이미지를 그리고 색을 입히고 다른 재료들과 결합시켰다. 무엇보다도 그는 종이에 갇힌 이미지를 나무를 빌어 공간에 자립시켰다. 나무는 종이를 대신해서 견고하고 실재감 나는 이미지, 존재를 안겨주고 있다. 흡사 인형극 무대처럼 연출된 작업은 작가의 일상에서 추출된 단상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겪어나가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인상적인 장면으로 구성되었다. 



지배, 피지배, 나무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 56×34cm, 2014


그는 아주 작은 나무 인형(납작한 평면조각에 그리고 색을 입힌)을 일종의 프레임역할을 하는 박스 안에 설치했다. 책처럼 좌우로 펼쳐지는 박스 안에 작은 인형들이 배열되어 볼거리를 안긴다. 박스는 무엇인가를 담는 도구인데 작가는 그 안에 나무인형을 이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야기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에서 자연스레 부풀어 오른 단상들이다. 그러니까 작업하는 자신의 일상, 부의 욕구와 비상에의 욕망, 남녀 간의 애정, 집에서의 안락한 휴식 등을 담은 그림들이 소박하게 펼쳐져있다. 일상에서 연유하는 여러 감정들이나 소소한 일상의 장면들이 소박하게 담겨있다. 그 이미지들은 삶의 단상에 해당하며 작은 공간에 입체로 설치된 일러스트레이션이다. 나무 인형들의 동작과 대화가 스토리를 만들고 설정된 공간에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따라서 이 작은 조각들은 작가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대리인의 성격을 지닌다.


그는 이 나무작업을 통해 '설정된 공간 안에서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이미지'를 만들고 있으며 그것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과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는 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내 주변 나아가 우리들 주변의 이야기를 나의 주관대로 해석하고 풀어나가는 과정' 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그러한 이야기를 담기위한 화면으로 박스 공간이 필요했다. 동시에 이 상자 공간은 이른바 차단되고 폐쇄된, 막힌 공간으로서 외부와의 단절, 불통 등을 은유한다. 그러나 이 박스는 개방되어 있어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유인한다. 관자들은 조감의 시선으로 이 공간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어 있다. 상자의 또 다른 역할은 일상의 공간과 분리된 작품의 공간을 만들어 외부세계의 번잡함과 소음을 차단한다. 박스 안에서 펼쳐지고 전개되는, 한 눈에 호소하는 상황성과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또는 일목요연하게 전달시키고자 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적당한 차단과 개방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고 발언한다.



남,녀-思考의 차이, 나무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 19×28cm, 2012


최진욱은 자신이 만든 인형들을 통해 가상의 상황극을 만들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문장을 형성한다. 그것은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이미지들이고 그림과 조각이 공존하는 형국이다. 작업은 재미있고 해학적이다. 소박하고 친근한 이미지다. 이는 그림이란 대중과 친화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는 방법론이다. 그러나 과연 '대중 친화적'이란 것을 충족시키는 방법론이 이런 틀에서만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이미지 표현방법과 연출은 대중들의 눈높이를 미리 상정(그것 역시 가능하지는 않지만)하는데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작가 자신의 메시지를 가장 잘 표현해내는 방법론의 개발, 그리고 그 기술적 완결성과 밀도에서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이미지 자체가, 표면 자체가 그만큼 힘이 있어야 메시지도 힘이 있게 된다. 그럴 때 소통 역시 발휘될 수 있다. 최진욱의 작업은 평면에 갇힌 일러스트레이션을 공간으로, 실제 삶의 영역으로 끌어내고 이미지들을 직립시켰다. 그리고 그 작은 이미지들이 주어진 프레임 안에서 삶의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박스 안에는 그렇게 우리들 생의 어느 한 측면이 재연되고 있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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