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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 Cycle 循環-자연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테트라포트 / 유중희

박영택

순환 Cycle 循環-자연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테트라포트



육지는 바다가 채 덮치지 못한 구역이다. 역으로 말하면 흙과 풀이 더 이상 밀고 나가지 못하는 곳이 바다다. 물이 멈춘 자리에 비로소 땅이 가능하다. 모든 땅의 끝은 물이 막아선다. 그래서 해안가는 일종의 임계점이다. 밀려오는 바닷물과 그것을 완강히 밀어내는 땅 사이에서 현기증이 피어나는 곳이다. 모든 경계는 불확정성과 생성적인 차원에서 동요한다. 해안가는 바다와 땅 사이에서 요동친다. 그 틈에, 사이에 거대하고 육중한 콘크리트덩어리가 막아서고 있다. 바로 테트라포트다. 엄청난 숫자의 테트라포트가 서로 엉켜있는 장면은 바다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다와 땅 사이,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고 있다. 인간은 거대한 파도와 드센 풍랑의 두려움에 맞서 콘크리트덩어리를 요새 삼아 해안가에 그것을 둘러쳤다. 바닷가에 자리한 테트라포트는 자연의 힘에 저항하는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의 방증으로 놓여있다. 한편 그 생김새는 인체를 연상시킨다. 흡사 토르소 조각을 보는 듯하다. 내게 그 테트라포트는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오브제로 다가온다.


순환, 혼합재료, 160×240cm, 2014


위키토피아에 의하면 테트라포트(테트라포드, Te'trapode)는 방파제에 사용되는 다리 네 개 달린 콘크리트 덩어리를 말한다. 테트라포트가 놓이는, 항만시설이 있는 곳은 육상과 해상활동이 연결되는 지리적인 결절지로, 자연지형 또는 인공축조물로 풍랑을 막아놓은 바닷가에서 선박이 안전하게 정박하고 여객과 화물을 싣고 내릴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진 해수면의 일부를 말한다. 이곳에 방파제가 축조된다. 그것은 파랑, 유속, 바람, 조위 등에 의한 장기적인 변화현상을 예측한 후에 조성되는데 이 방파제는 외해에서 들어온 파랑에너지를 소산 또는 반사시켜 항내에 침입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선박의 출입과 하역을 원활하고 안정되게 정박시키며, 항내 시설을 보전하고자 한단다. 여기에 쓰이는 구조물의 하나가 바로 테트라포트다. 콘크리트 블록에 해당하는 테트라포트는 보통 수 십 톤에 이르는 거대한 무게로 거센 파도와 바람을 막아내고 있다. 바닷가 항만시설이 있는 곳에는 대부분 테트라포트가 중층적으로 쌓여서 거대한 벽을 만들고 있다. 이 실용적인 물건이 작가들에게는 매혹적인 오브제로, 심미적인 감각을 부여하는 사물로, 마음의 능력들을 활동시키는 기호가 되어 다가온다. 기호란 무엇인가? '세계 안에는 우리가 사유하게끔 강요하는 어떤 것이 있다...그 어떤 것이란...기호이다.' (들뢰즈)


유중희는 최근 테트라포트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업을 선보인다. 우선 그 매혹적인 형태에 대한 기호를 반영하고 나아가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는 존재에 대한 여러 상념을 작업으로 연결해내고 있다. 그로니까 어느 날 작가에게 테트라포트는 그것의 정체를 탐색하도록 마음을 자극하는 존재가 되어 다가왔다. '나를 끌어당기거나 상처를 주는 어떤 세부(풍툼, 「punctum」)' (바르트)가 된 것이다. 이렇게 감각적 기호가 된 테트라포트를 작가는 다양하게 연출하고 있다.


순환, 혼합재료, 2014


테트라포트의 형태는 드로잉과 회화, 입체작업으로 연결되어 파생되고 있다. 테트라포트를 소재로 해서 이를 그리고 입체로 만들어내는 한편 다양한 재료를 통한 독특한 표면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레탄 막을 씌워 투명한 층을, 막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콘테, 목탄의 맛과 유체의 기름성분이 혼재되어 이룬 표면효과 등이 무척 매력적이다. 다분히 연금술적인 감각이 번져 나오는 작품이다. 재료에 대한 감각적 소여가 돋보인다. 다시 말해 드로잉과 물질의 연출이 무척 감각적이다. 그러다보면 감각이 앞서서 정작 메시지가 약화될 수도 있지만 결국 미술이란 물질적인 것임을 수긍하게 해주는 편이다. 작가의 근작은 작업을 하기 위한 동인으로 테트라포트를 선정해 이 형태를 다양한 차원에서 제작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테트라포트 이미지의 오브제화이기도 하고 실제 그것을 제작해서 오브제로 구현해내고 있다. 콘크리트를 대신해 철사를 이용해서 만든 조각이 그것이다. 무게와 질량, 덩어리를 지니지 않은, 선만으로 자족하는 비조각적 조각이자 표면으로 이루어진(회화의 영역인 표면을 선취한)조각이다. 다른 작업은 깔때기 형상을 철사, 한지 등을 사용해 입체화한 작업도 있다.


테트라포트를 구입하거나 전시장에 놓으면 이상적이겠지만 실은 어려운 일이기에 작가 스스로 제작해서 다양하게 연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광활한 바닷가에 침묵으로 포개어진 육중한 테트라포트를 전시장에 옮겨놓는다면 그 위용과 물질감이 대단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대신해 다채롭게 연출한 테트라포트 형상과 오브제, 그리고 그 사이에 개입한 인간의 형상, 어둡고 무거운 침묵의 분위기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 완충지대 등에 대한 여러 상념을 감각적으로 펼쳐내고 있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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