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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 문화교류전 : 문밖의 낯선 기호

박영택

THE FLOWER-2014 제3회 한독문화교류전

한·독 문화교류전 : 문밖의 낯선 기호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딴 사람의 눈에 비친 세계에 관해서 알 수 있다' (프루스트) 현대라는 것은 역사적 연대기 상의 고정된 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롭게 되려는 노력의 표현'(서동욱)을 지칭한다. 현대미술 역시 그렇다. 진정한 현대미술이란 현재의 삶과 문화에 대응해 그것에 대한 올바른 사유에 바탕을 둔 미술적 행위일 것이다. 단지 동시대라는 시기에 국한되어 있는 미술행위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진정한 현대미술은 현대라는 시기의 삶이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문제들에 미술이 밀착하고 대응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철학이나 미술은 유사한 과제에 시달린다. 자신이 처한 현재의 삶에 대해 사유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힘이 있어야 삶을 밀고 나갈 수 있다. 철학과 미술은 이렇게 사유하고 실천하는 일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인간의 삶 전반에 최대한 밀착하려고 시도한다. 현대미술은 그런 맥락 아래 출현한다. 그리고 그것은 타자와의 마주침을 전제로 한다. 다른 이의 삶과 생각과 마주치면서 비로소 한 미술가의 다양한 실험과 작업이 펼쳐지는 것이다. 고정된, 절대적인 미술의 어법이란 없다. 미술이란 개념도 늘 변화의 과정 속에서 단련된다.


니체는 고정적 진리란 없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진리의 나타남이란 '관점 수립의 문제'이다. 새로운 진리를 바라보는 관점은 기존의 가치와 진리에 대한 비판에서 나오며 그 기존의 가치를 비판에 부치는 것이 바로 '힘의 의지'다. 존재자들이란 힘의 외관이기에 힘의 의지는 존재자들이 서로 부정하지 않고 차이를 지닌 상태로 나타나게 해주는 요소이다. 니체에 따르면 존재자들이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 다른 존재자를 부정하지도 않고, 다른 존재자와의 차이를 지닌 체 자신의 본성 가운데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니체를 이은 들뢰즈를 비롯한 탈근대철학자들이 제기한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나'에 집착하는 존재론을 깨는 것이 되었다. 관건은 '나'라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나'를 아우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고 '생성'이라는 것이다. (강신주) 그리고 '나'를 알려면 '문밖'의 '낯선 기호'(들뢰즈)와 부딪쳐야 한다. 그때 비로소 사유가 발생한다. 외부와의 마주침이 없으면 사유와 생성과 변화는 없다. 변화의 계기는 낯선 기호인 다른 사람과의 마주침에서 온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나'를 벗어나 외부의 입장에 설 수가 없다. (이른바 재현의 한계) 그러나 역설적으로 '내'가 남이 될 수 없다는 한계로 인해 변화의 계기가 주어진다. '내'가 생각하는 세계가 다른 이들의 그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 이런 자기객관화의 능력을 지닌 이가 결국 성숙한 존재이다. 이것이 모자랄 때 독선이 생긴다. 카프카의 통찰에 따르면, 성숙한 이는 '나'와 세계의 투쟁에서 언제나 후자를 지지한다. 다양하고 풍부한 사람들의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의 왜소함과 한계를 독자나 관객이 절실히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바로 걸작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걸작의 캐릭터들은 독자에게 낯선 기호이고 미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극복하는 일은 다른 이의 예술작품에서 온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단 한순간도 '나'를 벗어나 외부의 입장에 설 수가 없다. 그것을 '재현의 한계'라고 부른다. '내'가 남이 될 수 없기에 남이 되려는 노력이 요구되고 그렇게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이들이 성숙한 인간이고 좋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인식 속에서 하나의 장르는 다른 장르와 만나고 하나의 매체는 다른 매체와 만나며 한 작가가 다른 작가와 만나야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작가들끼리의 교류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양평에 거주하는 여성미술인들의 모임인 물뫼리 협회는 매년 독일작가들과의 교류전을 갖는다. 이런 만남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 결국 이 만남은 이들이, 타자들이 한 자리에 함께 하면서 자아내는 기이한 겹성의 소리, 몇 겹의 울림을 은연중 기대해 보게 한다. 과연 만나야할 절박한 이유가 있을까? 예술의 중요한 덕목이 여럿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나와 다른 이의 사유, 감각, 감수성을 접촉시킨 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인문학과 예술을 통해 우리는 타자와 만나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이른바 그 기호들을 통해 타인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읽어내는 한편 '기호를 기호로 느낄 수 있는 감각' 또한 예민하게 가다듬는 훈련을 시도한다.


그러니 다른 문화권에서의 작가들 간의 전시는 단지 낯선 작가들과 작품의 충돌, 만남이나 이질적 장르나 다른 매체와 방법론의 단순한 접촉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이함과 낯선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기존 작업들에 균열과 틈을 만들어내는 한편 타자성을 통해 자기 정체성의 확산이나 예기치 못한 변이를 적극 도모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여러 작가, 작품의 만남을 통해, 타자를 통해 자신들의 작업을 새삼 다시 보는 거리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절실하게 알기위해 '문밖'의 '낯선 기호'와 만나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로인해 비로소 새로운 사유, 새로운 꽃이 피어난다. 그래서 이번 전시 테마는 꽃(blossom)이다, 그것도 활짝 피어난 꽃!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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