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박소영 / 원 안의 생명, 우주 안의 자연

박영택

원 안의 생명, 우주 안의 자연 


한국의 근현대미술은 예외 없이 '현대와 전통' 사이에서 끊임없이 현재적 정체성의 의미를 모색해왔다. 이는 현재적 자기정체성에 대한 전통적 환원이라는 방법론에 기초해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만남과 결합을 매끄럽게 파악하고 있다는 단점이 자리한다. 과연 그러한 만남과 조화는 가능할까? 사실 '전통'이란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평가된 과거(전통이란 현재의 산물)이기에 전통과 현재가 만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전통이란 것이 정신이나 영혼, 민족성 같은 허깨비가 아니라 박물관, 교육제도, 평가, 역사기술의 제도 등의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제도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음을 상기해보면 현재라는 시간을 메우고 있는 그 제도들 밖에서 전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알다시피 전통이란 보존되고 전승된 어떤 것이 아니라 고안된 어떤 것이다. 그러니까 전통이란 이 시대의 여러 가치관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은 현재가 과거에 대해 덧씌운 프레임이다. 과거는 전적으로 현재의 산물이란 얘기다. 따라서 문제는 현재의 관점에서 그 전통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느냐이다. 그간 우리의 동양화는 전통과 서구에서 수용된 현대미술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도모해야 하는 운명을 외면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그 사이에서 모종의 틈과 가능성, 균열을 모색해 보려 했던 것이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의 초상일 것이다. 


Walking in Nature, 65x80cm, 장지에 수묵,안료, 2013


박소영의 작업은 동양화의 전통적 재료체험과 기법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지는 한편 다루는 소재 역시 전통적인 화목에서 가져오고 있다. 대나무와 매화, 포도를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뒤섞인 독특한 이 그림은 사군자와 민화 등에서 흔하게 접하는 식물을 모티프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 식물이미지는 단지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 문화 속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는 특별한 도상, 자연이미지다. 과거 이 땅에 살던 조상들은 저 이미지를 통해 선비의 지조와 정신세계 혹은 군자의 도리 또는 다산과 풍요로움을 일러 받고자 했다. 작가는 그 이미지들을 하나로 묶거나 그것들이 상호침투 하는 풍경을 만들었다. 포도 알 속에 매화나 대나무가 자리하고 있거나 대나무에 포도 알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듯하다. 유교적 이념과 샤머니즘이 한 몸에서 피어나거나 고고한 선비정신과 민중들의 간절한 기복신앙, 염원이 두루 얽혀 있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아울러 장지 위에 수묵화 기법의 스미고 번지는 효과와 농담의 변화를 적극 구사하고 있으며 그 위에 은분과 금분을 안료에 개어 입히고 있다. 수묵과 채색, 선염과 불투명하게 얹혀 지는 기법의 공존으로 인한 두 층위가 동시에 자리하면서 겹을 이룬다. 그 겹/결은 이질적인 것을 아우르고 그 모두를 존중하는 방법론이자 여러 시간대가 공존하는 지층을 떠올려준다. 아득한 시간의 자취와 풍화의 흔적을 깔고 있는 바탕(종이 자체의 질감과 색채가 두드러지게 자리하고 있는) 위로 저마다 다른 원형들,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한 대나무와 매화의 겹쳐짐은 평면의 화면에 묘한 공간감을 자극하면서 구상과 추상, 기하학과 자연, 개별과 전체, 선과 점, 수묵과 채색, 투명과 불투명 등의 이원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는 장면을 선사한다.


그런데 사실 작가가 대나무와 매화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그것이 군자를 표상하는 의미 때문만이 아니라 '자연을 은유 하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표현' 된 것이라고 한다. 작가 자신에게 대나무나 매화, 또는 포도는 자신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친근한 것들이자 '자연'의 표상으로서 인식된 소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개별 식물이미지는 작가가 그것들을 본 장소와 시간, 날씨 등을 포함하고 있는, 경험과 기억의 집적체가 된다고도 한다. 결국 저 식물이미지는 전통화의 도상적 차원과 함께 현재라는 시간에서 작가 자신이 경험한 세계의 근거로서 작동한다. 포도를 연상시키는 원형은 자연과 한 쌍을 이루는 우주를 형상화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완벽한 구체인 원은 하늘(우주) 또는 시간을 은유 하는데 작은 원은 소우주를 상징하고 그 원들이 모여 이루어진 커다란 덩어리는 대자연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수한 원을 집적시켜 이룬 형태를 통해 우주적 형상을 은유하고 그 원은 또한 식물/자연을 잉태하고 담는 그릇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원 안에서 매화꽃이 피거나 대나무가 자라는 것이다. 우주 속에 자리한 자연! 


작가는 특히 원을 '순환과 생성의 의미를 갖는 기하학적 요소'로 인식하고 작품에 등장시켰고, 거기에서 원은 생명체를 잉태하고 담아내는 일종의 그릇으로 위치하고 있다. 원이란 그 자체로 완벽함, 영원함 그리고 순환하는 시간이란 개념을 지니고 있기에 그 원 안에서 온갖 생명체들이 번성한다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이런 인식은 다분히 페미니즘에 기반 한 인식을 떠올려준다. 그리하여 이러한 원들이 군집한 하나의 커다란 형상은 소우주의 집적체로서 대자연을 품을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Walking in Nature, 130x130cm, 장지에 수묵,안료, 2014


이처럼 박소영의 그림은 사군자와 원/포도가 지닌 본래의 도상적 의미가 유지되면서 동시에 그것들이 겹쳐지고 합쳐지면서 또 다른 의미를 파생시키는 그림이 되었다. 이런 도상연출은 이 작가가 여전히 전통을 자신의 삶 속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환생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오늘날 사군자는 전통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것은 유교적 이념을 지닌 사대부들의 세계관을 표상하는 그림이었기에 그 이념과 이념의 주체들이 사라진 오늘날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사군자가 그려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박제된 전통일 뿐이다. 따라서 사군자를 순진하게 전통이라고 믿으면서 이를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지닌 의미를 오늘날 어떻게 이곳에서의 삶과의 연관성 아래 환생시키거나 재 맥락화 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전통사회에서 기능했던 모든 이미지들은 일종의 주술적 도상들이다. 이미지들은 그렇게 꿈과 소망의 뜻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산수화나 민화의 모든 도상들은 우주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인간적인 욕망의 구현으로서의 상징들이었다. 그것들과 함께 평생을 안락하게 보내고자 했던 선인들의 생의 열망, 유토피아의식이 촘촘히 깃들어 있는 도상들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미술은 인간적인 소망과 기원, 이미지를 통한 보이지 않는 모종의 힘에의 열망 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미술이 본질적으로 소통에의 욕망이자 수단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와 같은 전통이미지는 오늘날 또 다시 새롭게 해석되기를 기다리는 열린 텍스트다. 단순한 도상의 장식적 차용이나 한국적 작업의 당위로 삼는데 머물지 말고 그 본래의 뜻을 잘 이해하고 오늘날 미술의 결핍을 극복하고 전통미술의 진정한 모색이란 의미에서 다시 읽어야 할 그런 텍스트가 전통이미지인 것이다. 박소영 역시 사군자와 민화, 그리고 원이라는 형상/도상을 차용해 현재 자신의 생의 의미와 열망을 다양한 기법의 공존 속에서 도모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작업은 그런 맥락에서 어떤 유의미한 발언을 하고 있어 보인다. 사군자와 민화의 모티프를 차용하고 전통적인 우주관과 시간관을 함축 하는 원이라는 형상을 결합시켜 이룬 중첩된 식물이미지(색다른 사군자 혹은 민화)이자 자연의 풍경인 이 그림은 여전히 동양적 사유를 함유하는 오늘날의 동양화의 자기정체성을 담보하려는 욕망이자 그 전통적 도상 안에 자신의 현실적 삶의 경험이 삽입될 수 있는 공간(영역)을 만들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마치 저마다 다르면서도 완벽한 원안에 생명체를 키워내는 자신의 그림처럼 말이다. 


■ 박영택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