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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애 / 시간의 너울 속에 흔들리는 바다

박영택

Breath13, ed.1/3,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70×105cm, 2014


최경애의 사진은 특정 풍경을 대상으로 그 풍경 위에 어른거리는 시간의 너울, 결을 포착하고자 한다. 시간의 입김과 흐름이 거느리는 흔들림, 시간이 누벼놓은 자취를 렌즈에 담는다. 그러니 바다를 촬영한 이 사진은 특정 바다의 모습이 아니라 그 바다 위를 뒤덮고 있는 시간의 유령, 시간의 그늘을 보여준다. 아마도 작가는 그러한 시간의 자취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다를 선택한 것 같다. 이 바다풍경은 전적으로 하늘과 바다, 그리고 바다와 맞닿아 있는 백사장을 겨우 보여준다. 그 풍경위로 햇살과 짭짤한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 그날의 기후와 습기, 파도의 강도가 만든 변화무쌍한 자태가 감각적으로 흔들린다. 고요한 물결, 천천히 느리게 밀려들다 물러나기를 반복하는 파도, 그로 인해 백사장에 순간 남겨진 모래톱이 매혹적인 선/드로잉을 선사한다. 이 풍경은 태고적부터 간직되어 온 근원적인 풍경이지만 동시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바람이 바다/물을 밀고 흔들면서 만든 자취들이 어른거린다. 태양과 바람, 물이 뒤섞여 이루어진 것이 바다풍경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시간이다. 사실 모든 대상의 표면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의 진폭이 출렁거린다. 우리는 그렇게 사라지는 시간의 소멸 앞에서만 대상을 바라본다. 결국 내가 보고 있는 지금 이 풍경은 있으면서 없는 풍경이다. 영원한 영속성으로 굳건하면서도 거침없는 시간의 맹렬한 속도 앞에서 계속 사라지는 풍경이다.


최경애는 특정 시간대에 바다를 촬영했다. 어둠이 가시고 해가 뜨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 주로 촬영을 했다. 음의 기운이 물러나고 양의 기운이 가득하기 직전, 그러니까 음과 양의 기운이 교묘하고 팽팽하게 뒤섞인 시간이자 어둠과 밝음이 맞물려진 시간대에 얼핏 드러난 풍경이다. 작가는 장 노출로 바다를 기록한다. 여러 시간이 중첩되고 교차한다. 오로지 하늘과 바다만이 자리한 적막하고 단순하게 자리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화면 가득 담았다. 수직의 화면은 몇 개의 색 층으로 분할되고 미세한 색 띠를 만들면서 마치 로스코의 추상회화처럼 어른거리는 색채의 결을 안겨준다. 모든 명확함과 단호한 경계를 불식시키는 바다와 그 바다의 질료성은 수많은 색채와 빛을 발산하며 숨 쉬고 있다. 중성적이면서도 희박한 색채의 결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추상회화와 같은 사진이다. 수평의 선이 기하학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보인다. 그러나 기하학의 아름다움으로 분할된 바다풍경의 하단은 파도와 바람에 의해 무너지면서 흔들린다. 하얀 물결이 바람에 일어나며 수평의 균형을 슬쩍 흔든다. 그것은 시간과 바람에 의해 무너진 자취다. 모든 풍경을 풍경이게 하는 것은 결국 시간의 힘이다. 실체를 규정할 수 없는 끊임없는 변모가 물의 실체인 것처럼 바다는 색을, 밀도를 수시로 바꾸고 있다. 쉼 없이 변화‧ 생성하는 존재가 바다/자연이다. 특히 단단한 질료와 희박한 질료의 사이를 오가는 바다는 인간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색/빛을 시시각각 발산하고 있다. 작가의 카메라는 그 추이를 느리게 거둬 올린다. 고요한 풍경 안에 스미는 시간의 기운을 섬세하게, 느리게 잡아내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바다가 만들어내는 저 아름다운 색채와 절묘한 선에 깊이 매료되었던 것 같다.


동시에 작가는 치솟는 파도를 촬영했다. 느리고 잔잔한 풍경과 대비되는 이 파도사진은 수평의 바다에서 마치 융기되는 산의 자태를 하고 있다. 해안가에 이르러 거친 소리와 함께 강렬한 포말을 일으키다 순간 소멸되는 파도의 모습은 정적인 바다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작가는 저 파도의 모습에서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바다, 시간의 과정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기록했다. 그것은 파도의 재현이 아니라 파도로 인해 드러나는 자연의 법칙, 기운과 시간의 흐름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바다를 소재로 해서 자연의 본질, 대기가 자아내는 미묘한 변화,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생성되는 풍경의 실체를 감각적으로 제시한다.


사실 바다는 헤아릴 수 없다는데 매력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실측과 시측의 경계에서 벗어나 있다. 시작과 끝을 한 눈에 보여주지 않기에 인간은 다만 그 한 자락만을 단서로 무한함을 체득한다. 광막함은 그래서 일종의 공포를 동반한다. 그 무서움은 측정할 수 없는 두려움, 깊이와 한계가 없는 데서 만나는 숭고함에서 기인한다. 근원을 알 수 없다는 곤혹감이 막아서는 그 풍경은 원 풍경이고 가장 본능적이고 본질적인 장면이다. 기억에 들어와 박힌 하늘과 바다를 그린, 찍은 이미지들은 그래서 그 어떤 이미지들보다 더 강하게 남는다. 남아 추억이 되는 이미지들은 이렇게 본원적인 힘들을 지닌 것들이다. 하늘과 바다는 그 무한함으로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훌쩍 뛰어 넘는다. 사람들이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고 이를 그림과 사진으로 담아두는 본질적인 이유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에 그럴 것이다. 거기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무를 바라다보는 것은 결국 자신의 내면으로 회귀해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맥락에서 바다는 부재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것이 화면을 텅 비워놓지는 않는다. 바다사진은 화면을 닫힌 상태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개방적인 것으로 인도한다. 아름다운 바다는 위안을 주기에 나는 기꺼이 그것을 본다. 그리고 최경애의 바다 사진을 다시 본다. 내 눈이 거기서 적셔지고 비로소 세상에서 놓여나 자유로이, 어떠한 목적지나 고정 없이 떠돎을 허용한다. 그 자유와 권태가 좋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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