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이두한 / 미지근한 도시의 낮과 밤

박영택

Supermoon, 100x80.3cm, Oil on Canvas, 2013


이두한의 그림은 자신의 일상에 대한 기록적 측면이 강하다. 이 서사성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젊은 세대들이 지니고 있는 삶의 정서, 도회적 일상으로 인해 형성된 센티멘탈리즘에 기반 한다. 그것은 자연을 고향으로 둔 자들의 정서와는 이질적이다. 작가는 시원스레 놀린 붓질과 유동하는 물감의 층, 낙하하는 물감의 질료성을 극대화해서 주로 도시의 야경, 화려하게 번쩍이는 조명, 순간적으로 스치는 장면, 수시로 출몰하고 겹치는 여러 형상들의 겹침과 떨림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그것은 도시라는 공간에서 바라보고 느끼는 이미지에 대한 자신의 육체적 반응의 회화화다. 이 그림들은 특정 장소에 대한 총체적인 시선 아래 견인되는 설명적인 것이 아니라 분산적이고 파편적이며 느닷없이 조우한 장면에 대한 다소 당혹스러운 반응의 형상화에 가깝다. 따라서 그 이미지는 빠르고 떨리며 급박하게 칠해진 붓질, 여러 이미지의 몽타주,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순간적인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사진이이미지나 영상과 관련된다. 당연히 형태는 흔들리고 모호하며 맥락 없이 걸려든 우연적인 상황만이 갑자기 응고되어 다가온다. 아마도 이러한 종류의 회화, 새로운 그리기가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감수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근대 도시문화의 번성이 인상주의 화풍을 태동시킨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두한의 화풍에서 엿보이는 이러한 그리기방식은 지금 이곳의 도시문화, 도시인의 생리와 감성, 육체적 반응 내지는 동시대 삶에 대한 인식 속에서 파생되어 나온다는 생각이다.


Police, 28x28cm, Oil on Canvas, 2012


도시는 청각의 작용보다는 시각의 작용이 훨씬 우세하게 작동하는 곳이다. 그 도시는 볼거리를 안기고 다양한 사물들로 채워져 있으며 사람들은 그 사이를 불안정하게, 영원히 유동적인 존재인 양 부유한다. 도시에서 태어난 도시에서 죽어갈 작가들은 광대한 미로 같은 도시공간을 끊임없이 어슬렁거리면서 압도적으로 밀려드는 사람과 사물들 사이를 헤맨다. 그 공간에서 작업의 단상을 얻는다. 이두한 역시 도시에서의 삶의 체험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단지 도시의 야경이 풍경의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도시의 본질, 이른바 도시라는 공간이 안겨주는 정서, 감수성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는데 관심이 있어 보인다. 자신의 생의 조건이자 생존의 토대인 도시라는 곳이 어떠한 곳인지를 알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에 대한 존재론적 모색이 작업의 동인이 된다. '그들은 도시 삶의 스트레스를 여가를 통해 풀고자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밤이 되면 빛이 있는 공간을 찾는다. 상실감을 거두어 줄 빛을 찾는다. 하지만 빛에 비춰진 사람들의 표정은 설레지만 허전하다. 조명 빛은 이들의 공허를 거두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극적으로 비춰준다. 다시 돌아온 낮이면 환영 같은 풍경은 사라진다...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의 낮은 밝지만 또렷하지 않다. 빠르지만 늘어져 있다. 뿌연 공기에 흐릿한 풍경, 표정을 잃은 도시인과 도시화된 비둘기 떼, 낡은 간판과 퇴색하고 바래진 페인트칠, 버려진 공간, 부서진 건물, 건물들이 세워지고 사라지는 기계적인 풍경은 상실감과 함께 지난 시간에 대한 향수를 남긴다. 나에게 현재를 살고 있는 도시인들의 감성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감정 상태로 보여 졌다. 그리고 내가 바라본 도시의 풍경은 낮은 낮처럼 보이지 않고 밤도 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미지근한 풍경들과 도시인들의 감성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작가노트)


바벨, 260.6x162.1cm, Oil on Canvas, 2014


이두한은 도시의 낮과 밤을 주목하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몸짓을 주목한다. 그가 본 도시인들은 무력하고 공허하며 '미지근한' 상태다. 그들은 권태로움 속에서 소멸한다. 그가 보기에 이 도시의 낮과 밤은 가짜다. 이 가짜라는 느낌이 그의 그림의 핵심이다. 바로 그러한 현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설득렸 있게 형상화할 것인가 과제가 된 셈이다. 도시의 낮과 밤, 그곳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의 몸짓, 삶이 공허하고 창백하며 무의미해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느낌은 이미 근대기에 형성된 감정이다. 보들레르가 '현대성'이라고 정의한 것은 바로 19세기 이후 전면화 된, 일상생활에서의 현대성의 경험이며 이것은 전통에 대한 결별과 새것에 대한 감수성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에 대한 현기증 같은 시간 불연속성에 대한 의식을 특징으로 한다. 부르주아적 가치들과 계몽주의적 합리성에 반발하는 모더니즘은 바로 이러한 현대성의 조건에 대한 미학적 반응이다. 그것은 이성과 진보에의 믿음, 주체의 자명함, 현실의 객관성과 재현의 투명성 등 기존 현대성이 전제하던 제반 가치들을 의문시하는 동시에 이 모든 것들과 자기 자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라는 현대적 태도를 극대화하며, 그런 가운데 불연속성과 파편성으로 다가오는 현실에 대한 감수성을 재현 자체에 대한 반성 속에 담는다. 그것은 도시의 경험들과 불안정하면서도 미묘한 관계를 맺는다. 유동화 된 응시가 산책자의 시각이며,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가 흩어지는 현기증 나는 상황 속에 도시의 공간을 어슬렁거리는 산책자는 현대성의 경험이 전면화 된 새로운 상황에 처한 주체를 말한다.


See, 40.9x53cm, Oil on Canvas, 2014


이두한은 산책자가 되어 동시대 한국의 도시문화와 도시인을 관찰한다. 이 거대도시가 자신의 내면성에 가한 영향을 탐색하고자 한다. 도시 공간에 자신의 내면성을 투사하거나 도시풍경에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도시의 양면성을 영상적으로, 유동하는 흐름으로 속도와 시간의 덧없음 속에서 찰나적으로 부감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보여주되 몇 겹으로 보여주고 보여주면서 지우는 동시에 기존 이미지위에 새로운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출현하는 이 연출은 어쩌면 매번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고 수시로 사라지고 출몰하기를 거듭하는 도시공간의 덧없음이나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공존하는 기이한 시간의 서식을 보여주려는 의도 아래 선택된 그리기방식이다. 아울러 그것은 가상적이고 실재하지 못하는, 다만 환영적이며 허상적인 이미지다. 우리가 보는 도시란 그런 신기루 같은 것이자 허상에 불과할 수도 있고 지난 과거의 것들과 현재가 수시로 부딪치며 말을 건네는 곳이다. 궁극적으로 가짜라는 느낌을 부여하는 공간이다. 결국 그는 화려함과 반짝거림 속에서 공허를 보고 무를 보고 환멸을 접한다. 이 덧없음의 시선은 비관적인 동시에 비판적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겪는 무력함과 사회에 대한 저항감은 다분히 한국 사회가 빚어낸 모순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이두한과 같은 젊은 작가들이 보는 도시이미지는 화려하지만 결국 사라지고 녹아 없어지는 현상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스타일을 만들고 그 스타일이 이들을 구원한다. 

■ 박영택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