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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원 / 귀가 된 몸, 컵에 담긴 귀

박영택

편지와 전보가 사라진 자리에 전화기와 인터넷, 그리고스마트폰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말을 전한다. 오늘날 종이위에 자신의 필치로 문자를 써내려간 편지를 남기는이는 거의 없어졌다. 포스트잇에 쓴 간단한 메모라면 모를까 필적을 가늠할 편지는 더 이상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에 사람들은 편지와 전보를 통해 구구절절한 사연을 남기며 먼 곳의 그 누군가와간절한 소통을 갈망했었다. 오히려 당시의 문장들이 여전히 가슴을 저미게 하는 힘이 있다. 문자들의 진정성이 살아있다. 이제는 스마트폰의 자판에 닭이 모이를쪼듯이, 손가락을 찍어가면서 단축된 대화를 이어가거나 압축된 말을 전한다. 상대방의 음성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즉물적인 문자만이 줄을 잇는다. 자신의복잡한 내면이나 굴곡 심한 감정의 상태를 울려주는 목소리를 지우는 한편 상대방의 성대에서 번져 나오는 소리에 일일이 응답하거나 반응하기에 피곤해하며건조한 문자, 혹은 무의미한 단어들만을 던진다. 소통의 수단과그 편리성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소통으로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소통이 흘러넘치는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소통의불확실성 때문에, 불통때문에 힘들어하고 상처를 받는다. 너무많은 말들이, 말도 되지 않는 말들이, 거짓된 말들이 진실을 뒤덮고 있다.



성정원은 모르스부호 이미지와 컵을 이용한 작업을 통해 '소통'에 대해 질문한다. 그녀는 디지털프린트된 모르스부호를 벽면에 가설하고천장에는 컵을 뒤집어서 매달았다. 그것은 마치 갓을 쓴 알전구처럼 늘어져있다. 벽면에는 그림을 그리고(벽에 부착한 프린트) 종이컵은 바닥을 향해 내려져있다. 컵의 내부, 바닥은 하나의 점이고 원이다. 아랫면보다 넓고 큰 컵의 윗면(원형)을 귀에 갖다 대면 모르스부호음이 울린다. '뚜우-뚜-뚜우-뚜뚜뚜뚜뚜' 


그 소리는 추억과 향수를 아련하게 떠올려주는신호음이다. 모르스부호음을 듣게 된 것이 얼마만일까? 가끔항해중인 선박에서 아직도 저 작은 쇳덩어리를 통신장의 손가락으로 눌러가며 길고 짧은 소리를 내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통신수단이고소통의 도구였다. 화가이자 뉴욕대학의 교수였던 사무엘 모르스는1844년 자신이 발명한 전신기과 모르스부호를 사용해 처음으로 타전에 성공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긴급전문을 보낼 때 사용하던 통신방식이기도 했던 모르스부호는 상대에게 내 메시지를 전달 할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 또 가장 강력한 방식이었다. 길고 짧은 음을 반복하고 선과 점으로만 이루어진이미지를 지닌 이 모르스부호는 그 시절 세계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용언어였다. 쉿덩어리를 손가락으로눌러 전기를 보내고 이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바꾼 모르스부호는 장음과 단음으로 통신을 하는 1차원적인통신방식이었다. 또한 그 부호이미지는 완전한 추상언어다. 점(원)과 선(직선, 사각형)으로 모든 것을 환원한 모습은 그대로 모더니즘의 조형언어이기도하다.


성정원은 그 모르스부호를 벽면에 횡으로 부착하는 한편 그 소리를 컵을 통해 은밀하게 들려주는 공간을 가설했다. 벽에 그려진 그림(벽화)과일상용 오브제인 컵, 그리고 소리가 모두 모여 있다. 회화와조각, 음향이 어우러진 설치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향으로들리는 모르스부호가 이미지화되는 순간 특정한 의미체계를 지닌 문자가 된다. 이미지가 문자로 탈바꿈하고변이를 일으킨다. 그 이미지는 점과 선으로만 형성되었고 점과 선의 교차와 배열의 변수들이 모여 가장단순하면서도 선명한 소통기호, 그림을 만들어준다. 전시장의흰 벽을 배경으로 점과 선들이 벽에 일렬로 배열되어 퍼져나간다. 마치 소리가 울리듯이, 파장을 일으키듯이 이어진다. 그것이 그친 자리에 작게 쓰여진 문장이그 모르스부호가 무슨 뜻인지를 지시한다. '조용히 해주세요','당신을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사세요' 등의 문장이다. 어딘지 간절하고 슬프고 아련하다.



벽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걸려있는 종이컵을 집어 들고 귀에 갖다 대면 그 모르스부호음이 들린다. 컵은 스피커가 되어 소리를 증폭시켜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집중시킨다. 물을담아먹거나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사용하는 일회용 종이컵이 순간 미지의 신호음을 발산하고 아득한 시간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면서 청자의 귀를 독점한다. 오로지 컵과 그 컵에 귀를 맡긴 누군가의 고막만이 독대하는 순간이다. 컵의윗부분은 온전히 귀를 감싸고 그 귀를 소리에 집중시킨다. 그는 자신의 온 몸이 하나의 귀가 되어 그컵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한 개인의 몸이 컵에 담긴 형국이다. 청자는단순한 신호음을 주의 깊게 경청하며 그 미지의 신호음이 발산하는 의미체계를 막연하게 추측할 것이고 그러다 문득 벽면에 쓰여져 있는 문자를 보면서비로소 모르스부호음이 무슨 내용인지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제는 잊혀지고 사라지는 모르스부호라는소통의 체계를 끌어들여 아득한 먼 곳의 누군가와 전기신호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려 했던 당시의 간절한 욕망을 문득 상기시켜준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와 소통을 해야 살며 살기위해서 무수한 소통은 또한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는 매순간 그 소통의 불통과 불확실성에 대해, 그리고소통의 좌절에 따른 절망감과 오독에 대해 상처를 받거나 곤혹스러워한다. 인간과 인간이 이룬 문자와 다양한기호체계들이 과연 인간의 진정한 소통을 어디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다수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하며 그것을 갖고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또한 그것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사회는 여전히 소통되지 못하는 단절과 소외 속에서 고독하다. 우리는누군가의 말을 좀 더 경청하고 주의 깊게 들어야 하며 더불어 진실된 말과 소통 가능한 언어의 사용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말이 왜곡되고 일방적인 소통이 강제되는 시대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소통'인 셈이다. 성정원의 이 매력적인 설치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새삼 소통의진정성과 그 간절함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 문득 내 몸이 하나의 귀가 되어 컵 안에마치 태아처럼 잠기는 꿈을 꾼다. 양수 속에서 듣던 어머니의 내부와 그 밖의 세계에 귀 기울이며 웅크려있던그 시절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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