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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삼 / 사물화 된 인간군상

박영택

신원삼의 그림은 자신의 머리 속에 설정된 세계의도식들을 연출한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상이 하나의 그림으로, 드라마로펼쳐진다. 여기서 세계란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이 현실적 삶이 모델이 되어 그로인해 형성된 모종의관념(관념상)일 것이다. 그는이 관념을 이미지화한다. 그림은 본 것과 기억한 것 사이, 현상과그로인한 사유와 상념 사이에서 출현한다. 그 틈이 나로서는 무척 흥미롭다. 아마도 모든 그림은 그 틈/사이에서 발생할 텐데 이는 전적으로 그작가의 경험, 세계관, 그리고 미술관 등과 연관될 것이다. 결국 한 개인이 지닌 모든 것이 그 틈을 채우면서 그림은 형성된다. 그러니한 작가가 이것이 세계나 현실의 한 단면이거나 징후라고 시각화 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그만의 시각점에 의해 포착된 것이고 것이어야 한다. 물론 그는 보편적인 동시대인으로서 누구나 공유하는 문제에 공감하고 이를 형상화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그 공유성을 개인성으로 번안하고 특이화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포착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형성'을추출해낸 그림 앞에서 세계와 현실의 본질을 문득 조우하게 된다. 좋은 그림들의 경우가 그렇다.



 

신원삼은 그의 관념에 의한 삶의 공간을 가설한다. 이 공간은 자신이생각하는 삶, 세계를 잘 구현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특정 공간으로 좁혀진다. 그 공간이 바로 공항, 비행기내부,운동장, 기차터미널(광명역사), 거대한 자연(산과 바다), 철골과기계로 이루어진 인공의 공간 등이다. 더러 고층건물이 밀집한 도시와 거리 풍경도 등장한다. 이른바 무대가 되는 공간들이다. 그것들은 어둡고 음산한 색조로 채워져있으며 끈적거리는 물감의 질료성이 그 표면위에서 녹아내리듯 흐르고 있다. 붓질의 도포흔적과 물감이 지닌성질이 어우러진 표면은 그것 자체로 다분히 회화적인, 표현주의적인 회화성으로 충만하다. 붓질과 색조, 질감은 특정 공간을 시각화 하는 동시에 그곳의 분위기, 느낌, 색채와 무게감 등도 가시화하는 역할을 한다. 세부적인 묘사를 지운 체 여려 겹의 붓질로 채워진 공간은 그 불투명성으로 인해 이른바 차단된 느낌을 부여받는다. 어둡고 음산하며 불모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번져 나오는 편이다.

 

실제 생활공간에서 차용된 이 장소의 특징은 무수한 익명의 존재들로 넘쳐난다는 점이다. 획일적인 인간 존재들이 때로 몰려다니고 부유하는 공간이다. 그들은저마다의 표식을 지우고 개체성의 차이를 감춘 체 동일한 색상, 유사한 형태로 부유한다. 흡사 흰색으로 마감된 마네킹처럼 자리하고 있다. 복수의 이 존재들은현대사회의 군중을 암시하는 기호에 해당하는 셈이다. 사실적이지만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풍경에 비현실적인인간군상의 배회라는 '시나리오'가 떠오르는 그림이다. 그러니까 신원삼이 의도적으로 연출한 이 공간은 결국 수많은 인간 군상을 제시하기 위한 배경에 해당하며 흰색마네킹처럼 보이는 이들은 획일화되고 비인간적인 상황으로 내몰린 다수의 군중을 지시한다.

 

도시는 불특정한 다수의 인간들이 찰나적으로 스쳐지나가는 공간이다. 그곳에서사람들은 그들과 순간순간 관계를 맺거나 그저 익명의 존재로 사라진다. 그들은 특정 공간에 모였다가 흩어지기를반복한다. 아마도 신원삼은 그런 장면을 바라보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던 것 같다. 이를 통해 나름의 세계상, 도시의 비정하고 냉혹한 속성과 그 안에서사물화 되어 살아가는 군중들의 생애라는 생각이 설정되었고 이를 이미지화하게 되었을 것이다. 현대미술에서작가란 자신의 삶에서 유래한 문제, 그리고 자신이 관찰한 삶의 풍경을 그리는 이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세속을 그리고 일상을 재현하며 그 안에서 세계를 질문한다. 자신의생의 자리를 반성한다. 결국 작가들은 그림을 통해 불가피하게 자신의 시대를 은연중 드러내고 표현하게된다. 그를 통해 자기 생을 그리는 자, 자신의 정체성을부단히 발설하는 자가 된다.



 

신원삼은 '현대인의 사물화'를그리고자 한다. 차갑고 생명력을 잃은 현대인들이 그에게는 흡사 하나의 광물과도 같다고 보았다. 사물이란 도구이자 기계이고 물건이다. 그것은 생각하며 감정을 가진인간과는 다르다. 그런데 인간이 사물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 탈각되고 있다는 얘기다. 오늘날 현대인은 사회나 체제가 요구하는, 혹은 자본주의체제에서 먹고살기위한 욕망에 의해 기계, 부품이 되어가고 있다는 진단은 상식이 되었다. 아니 진부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덧붙여 소외나 비인간화라는 수사도이제 상투화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삶과 인간 존재가 점점 사물화 되어가고 있기에 젊은작가들은 여전히 그런 상식이 되고 상투화되어 너덜거리는 개념을 끌어안으며 다시 그린다. 그런데 나로서는그와 같은 문제의식을 미리 설정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딘지 정답 같아 보이는 답안을 써내는 일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미술은 정답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오로지 작가라는 이의 개체가보고 느낀 것의 형상화, 그 주체성에 입각한 인식의 시각화가 중요하다.

 

신원삼의 그림은 충분히 그럴듯하다. 그의 의도에 따른 연출효과도 큰편이다. 무엇보다도 장엄하고 스펙터클한 공간연출, 설정이돋보이고 주제를 전달하는 힘이 있다. 다만 흰 색으로 칠해진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 획일적이고 무표정하며 기계부품과도 같은 현대인의 캐릭터, 기호의설정은 '상식적'인 이미지다. 작가들은 그만의 캐릭터, 도상을 통해 그림을 연출한다. 신원삼의 트레이트 마크가 된 흰 인간의 형태와 묘사가 그만의 독자적인 도상화로 좀 더 매만져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문제가 극복된다면 그림이 훨씬 좋아질 것이다. 물론 그가 인식해내는세계나 현실, 삶의 인식도 마찬가지일텐데 나로서는 오직 그만이 보는 소박하지만 집요한 시선에서 동시대현대인의 생과 사물화를 포착하는 계기가 불현 듯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림은 의식적으로 그리는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매혹적인 조형의 힘에 의해 누수 되어야하는 납작한 표면이다. 이 두 가지 관계에서 힘겹게 균형을 잡거나 뒤뚱거리는 것이 나로서는 좋은 그림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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