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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원 / 그을린 별, 그을린 삶

박영택

윤정원의 그림 속에는 국화와 새(날개), 그리고 별이 등장한다. 이 모두는 허공에 떠 있거나 부양하고 있다. 별이야 저 먼 곳에박혀있는 존재이고 새는 대지와 하늘 사이에 존재하지만 꽃은 대지에 뿌리내리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들이 대지에서 이탈해 하늘로 상승해서 부유한다. 중력의 법칙과 대지의 모든 완강한 구속력을 지워버리고 홀연 꽃 한 송이가 새가 되고 별이 되어 부상하고 있는장면연출이다. 국화와 새, 별은 모두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여기서 국화는 하늘을 바라보며 꿈꾸고 살아가지만 종국에는 죽음에 의해 소멸되어 가는 미약한 인간 존재를 상징한다고작가는 말한다. 그래서인지 화면에 등장하는 국화는 다분히 의인화되어 있다. 그것은 식물성에 머물지 않고 동물성의 인간 육체, 작가 자신을 은유한다. 다양한 상황성과 이질적인 것들과의 공존으로 그려진 이 국화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힘껏 부풀어 오르다 이내시들고 썩어가다가 다시 새싹이 솟는 식물의 순환주기나 강한 생명력과 죽음 사이에 걸쳐있는 변화무쌍한 자태를, 그아름답고 슬픈 모습을 거의 초현실적으로 안겨준다. 이처럼 작가는 다양한 상징체계를 중첩하고 연결해서모종의 이야기를 직조한다. 장지와 비단에 정교한 채색으로 그려진 도상들은 개별로, 혹은 중첩이나 이종의 변형체로 구성되어 있다. 국화꽃송이 사이로새의 날개가 깃들어있는, 그래서 국화와 새가 한 몸으로 성형되거나 동물과 식물의 합성체가 등장한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에서 동물성의 육체를 보거나 감촉하는 것이 작가들의 상상력이다. 한편 새의 날개를 단 꽃은 그로인해 허공으로, 하늘로 날아간다. 그것은 비상에의 욕망을 보여주는 환영이다. 마치 고구려고분벽화속의인물들이 새의 날개를 단 것처럼 국화는 날개를 달고 비상한다. 그리고는 별이 되고자 한다. 하늘에 박힌 국화꽃 별! 현실과 세속을 벗어나 자유를 꿈꾸며 보다나은 삶의 희망을 추구하는 존재의 소망을 기원하는 인간의 모습이자 작가 자신의 내면을 반영하는 그림이다. 날개를단 국화! 그런가하면 무지개 색을 지닌 별들은 스스로 발광(發光)하며 타버린 체 그을린 자국을 상처처럼 간직하며 떠 있다. 희망과구원을 상징하는 별이 불에 데인 상처를 보여준다. 국화꽃 또한 심장과 하트의 형상을 만들다가 이내 갈라지는심장, 흐르는 눈물이 되기도 한다. 희망과 상처, 꿈과 절망이 교차하는 형국이다. 특히나 한정된 구조 안에 갇혀있거나분열되고 불안해 보이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국화는 그만큼 불안한 삶을 사는 인간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작가는 동양 문화권에서 익숙한 국화 도상을 올려놓는다. 유교적 이념에입각한다면 국화는 인내와 지조를 지키는 군자의 상징이다. 된서리에 뭇 꽃들 지고 없는 가을에 피는 인고의꽃, 서리를 이겨내고 피는 강직함을 군자의 풍모라 칭송하였다. 또한그 자액을 먹으면 장수한다고 믿었다. 특히 노란 국화를 으뜸으로 생각했는데 이는 다른 색과 섞이지 않은순수한 대지의 색깔로서 음행오행에서는 중앙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곧 왕을 상징하기도 한다. 꽃 중의 꽃이되는 셈이다. 작가는 그 국화 한 송이를 커다랗게 화면 중앙에 위치시켰다. 단색의 모노톤으로 섬세하게 그려진 수많은 꽃잎들이 혀처럼, 촉수처럼뒤척인다. 꽃대와 뿌리에서 분리되고 적출되었지만 저 꽃송이는 생명력으로 충만 해 있다. 상대적으로 광활한 여백은 그대로 허공이나 하늘이 되었다. 순간 국화는새나 별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다양한 존재들이 국화를 감싸고 있고 한 몸으로 붙어 있다. 그렇게 국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이되기도 하고 또 다른 존재로 착시를 일으킨다. 이렇게 미술은 고정되고 확정된 형태를 지우고 그 안에서 상상해 낸 이미지, 연상되는것들을 부단히 유출시키고 풀어놓는 일과 관련 된다. 또한 단색의 국화꽃에 색색의 또 다른 존재들이 개입하고뒤섞여있다.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것이 자연이고삶이다. 덧붙여 명확한 형태를 지닌 대상 사이로 물감의 질료성이 중력과 시간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줄줄흐르기도 한다. 화면의 구성이나 기법에서도 상반되는 요소들의 절충, 서로대립되는 것들이 공존하는 형국이다.

 

'이 세상은 모든 존재들이 뒤엉켜 죽고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는구분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마구 뒤섞여 부활과 소멸을 거듭하고 있다... 그 안에서 배우고 느끼고 성장하는 인간과 자연은 참으로 비슷하다'(작가노트)



 

화면에 등장하는 국화나 새, 별은 작가자신의 분신이기도 하고 또 다른페르소나이다. 그림이란 이처럼 의미를 지닌 대상, 도상을빌어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 구조 안에 조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윤정원은 하늘의 별, 새와 꽃이란 동양문화권에서, 특히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도상을 통해현재 자신의 삶과 연루된 개인적인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을 관통하는 삶의 본질이나 자신의생에 대한 단상을 기술하고 있다. 알다시피 현대미술이란 전통사회에서 기능 했던 주술적 이미지들, 그 도상체계와 서사담론이 붕괴되고 이미지가 이미지 자체로 파악되고 분석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윤정원은 여전히 한국인들의 문화적 심층구조에 자리한 도상들을 길어 올려 개인적인 내면을 반영하는 상징적인화면, 서사를 지닌 화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기이한국화와 그을린 별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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