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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앉은 등잔

박영택

조선시대에 쓰인 이 등잔은 소박하고 연대가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그 당시의 등잔을 운치 있게 떠올려준다. 동으로 만들어진 작은 등잔인데 원형으로 이루어진 받침대와 그 중간에 매달린, 조금 작은 원형의 틀에 심지가 꽂힌 등잔을 올려놓게 되어있다. 원형의 틀을 버티고 있는 지지대에는 작은 새들이 좌우대칭으로 붙어있다. 흡사 나뭇가지에 매달린 참새를 연상시킨다. 새를 장식으로 붙여놓은 것은 솟대를 연상시킨다. 사실 우리 동이족은 오래전부터 새를 숭배해왔다. 고구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위에 커다란 새의 날개를 올려주었다고 한다. 죽은 이가 환생해 저 세계로 날아가기를 기원한 것이다. 고구려인들은 새의 깃털을 모자에 꽂고(관모), 새의 날개를 닮은 옷을 해 입었다. 우리 한복의 옷 선은 다름아닌 새의 날개로부터 연원한다. 단호한 중력의 법칙에 저당 잡혀 살지만 새의 날개를 옷에, 처마선에 개입시켜 초월적인 생애를 꿈꾸었던 것이다. 그것은 현실계로부터 순간순간 가볍게 부양하고자 하는 욕망일 것이다. 고구려고분벽화를 보면 새의 날개 같은 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이와 이른바 조인鳥人들이 바글거린다. 솟대라는 것도 실은 우리 민족이 새를 토템으로 하는 민족임을 내세우는 상징이다. 인사동이 어느 골동가게에서 우연히 이 등잔을 보고는 구입했다. 실제 불을 밝히지만 않았지만 나는 이 등잔이 불을 밝히고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아마도 공부하는 선비들의 사랑방이 제격일 것이다. 어둡고 침침한 방에 이 등잔이 불을 밝히고 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고 심지는 조금씩 흔들릴 것이다. 그러면 새의 형상이 벽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고 바람에 따라 조금씩 흔들리면서 떠오르고 흩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마치 바람이 부는 날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들이 흔들리는 모습이 영상이 되어 벽에 투사되는 환각이 일어난다. 자연 풍경을 그렇게 실내로 옮겨왔으며 바람이 불고 새가 우는 소리까지도 방안으로 들여놓는 것이다. 등잔을 밝히면서 그림자를 이용해 아름다운 그림을 눈앞에 펼쳐놓은 것이다. 작은 방 안에 그렇게 자연은 들어오고 한 인간의 육체는 무한한 우주자연과 연계되어 확장되어 나가는 것이다. 사랑방에 앉아있어도 그는 자연 속에 들어앉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산수화를 통해 풍경을 방 안으로 옮겨놓듯이, 이른바 차경을 하듯 등잔 하나로도 자연과 연루되어 있고자 했던 것이다. 등 하나를 피워도 그런 운치를 동반하는 옛사람들의 미의식이 마냥 놀랍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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