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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 융합과 혼성의 길을 찾아 나서다

김영호

21세기에 들어 우리 미술계에 새롭게 대두되는 현상의 하나가 융합이라면 하정민은 이러한 시류를 대표하는 작가군에 속해 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이지만 자신이 다루는 매체나 화법은 동양화의 전통적 규범을 넘어서 있으며 시각예술 분야의 다양한 장르 지형을 찾아 떠도는 음유시인과도 같은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방랑의 자유를 택하기라도 한 듯한 그의 관심영역은 비단 시각예술 장르뿐만 아니라 문학과 음악 그리고 종교에 이르고 있으며 협회 같은 미술단체의 활동에도 의욕적이다. 그의 작업실 복도 한 구석에 뒹구는 때 뭍은 권투 글러브는 청년기에 꾸었던 복서의 꿈을 간직한 채 화석 오브제처럼 시간을 끌어안고 있다.
융합미학이라 불러도 좋을 작금의 새로운 기류는 개체로서 두 가지 이상의 단위가 만나고 충돌하면서 생기는 에너지의 극대화 현상을 뜻한다. 융합과 혼성은 여러 물질이 뒤섞여 개체적 속성이 중성화되고 사라지는 현상과는 다른 것이다. 가령 빨강과 녹색이 뒤섞이면 탁색이 되지만 단위색의 명도와 채도가 보호되면서 병치되었을 때 강한 시각적 감흥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붉은 장미와 녹색 잎사귀의 어울림은 보색끼리의 융합을 통해 자기존재성이 극대화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융합이란 특정 장르가 지닌 개체적 요소들이 존중되는 가운데 하나의 통일된 감각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문화사적으로 사례를 들자면 헬레니즘은 서양과 동양이 융합된 경우가 될 것이다.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장르간의 융합 현상은 미술계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켜왔다. 미술이 음악과 만나 ‘사운드 스컬처’가 등장했고, 미술이 연극과 만나 퍼포먼스, 해프닝, 이벤트가 태어났으며, 미술이 책과 만나 북아트가 생겨났고, 미술이 정보기술과 만나 탄생한 미디어아트는 현대미술의 대표적 장르로서 위상을 떨치고 있다. 최근 이러한 융합 현상은 연극, 음악, 무용 등의 예술 단위를 넘어서 빛, 과학, 건축, 기상, 천체, 지리, 역사, 생태와 같은 자연과학이나 인문학적 영역으로 그 외연을 확장함으로서 의해 전에 없는 예술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이종교배로 태어난 새로운 미술장르들은 수소 융합에서와 같은 에너지를 품은 채 기존의 미학적 표준들을 대체시키는 한편 화단의 지형도를 재편하는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동양화의 경우 융합 현상은 나름의 논쟁과 수용의 단계를 거치며 전개되어 왔다. 서구미술의 유입에 따른 서양미술과의 ‘차별성’을 내세우는 시기에서 동양화의 ‘정체성’을 찾는 시기로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해체하는 ‘탈장르’의 시기로 이어진다. 융합미학이란 바로 동서의 경계를 해체하고 각각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보편성을 띤 새로운 에너지를 생산해 내는 지점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서양미술의 수용과정에서 나타난 동양미술의 차별성은 주로 형식적이고 표상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었다. 따라서 동양화의 정신은 화론을 중심으로 차별성을 세워나갔고 기운생동, 골법용필 등의 육법이 중심이 되었다. 이후 서세동점으로 규정되는 모더니즘의 물결이 아시아 지역에 세력을 강화할 즈음에 탄생된 동양화의 자기정체성 찾기는 한편으로 화단을 경직시키면서 한국화라는 새로운 명칭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서구미술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동양 국가의 그것과 비교하는 배타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 뒤를 잇는 다양성과 탈장르의 물결은 한국화를 비롯한 동양화의 경계에 대한 물음을 제시했고 회화의 본성과 본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태동시켰으니 이것이 이른바 최근에 등장하는 융합미학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이다.

하정민이 다루는 표면 매체는 한지와 먹 그리고 석채뿐만 아니라 캔버스에 유채 그리고 아크릴릭에 이르기까지 가릴 것 없다. 한편 그는 시집이나 수필집과 같은 문학지의 표지화와 삽화에도 관심을 가져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서 나름의 독자층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폭넓고 다양한 개인의 재능은 한편 가벼움으로 평가받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일련의 작업들은 높은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대상이 될 만 한 것이다.
하정민의 다양한 예술적 기질은 재료나 소재 등의 질료적 측면을 둘러싼 형식실험에서 세밀하지만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른바 수묵과 채색의 발묵 효과나 선묘가 지닌 표정을 섬세하게 운용하면서, 캔버스의 한정된 공간을 감각적으로 운영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한편 그의 화면에 종종 등장하는 문자는 문인화의 전통과 연계됨으로서 자연스러움을 더해준다. 그는 오늘날 재료적 측면에서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견해 아래 그림의 바탕으로서 장지나 한지를 대신하여 천으로 짜여진 캔버스를 사용하고 있으며 지극히 서양적인 재료 위에서 앞서 언급한 물감과 드로잉의 질료적 실험을 전개하는 것이다.
하정민이 사용하는 재료나 소재의 세밀한 조형방식은 질료실험에 그치지 않고 그의 화면에 감각적이면서 서정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를 가리켜 서정시인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감미롭고도 여성적인 색상과 가늘고 섬세한 선의 리듬, 그리고 꽃이나 과일 이미지 표면에 적용된 번지기 기법이 서정적 감흥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물의 대개가 그러한 것처럼 그의 화면은 보색 관계를 지닌 원색들이 자리 잡아 화면에 강한 시정을 일으킨다. 빨강과 녹색, 파랑과 노랑의 대비 효과는 화려함으로 그의 작업을 안내하는 요소들이다.
하정민의 작품에 나타나는 융합과 혼성의 미학은 소재적인 면에서도 발견된다.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회색도시의 기억들>은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이태원과 그 주변의 도시에 대한 인상을 나타낸 그림이다. 용산구 이태원동은 서울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한국 근대사를 가장 대변하는 지역이다. 그에 있어 이태원이란 ‘쾌락을 찾아 몰려든 낯선 이방인들’의 공간이자 ‘인도에 줄지어 늘어선 포장마차의 행진’에서 각각의 삶을 사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하는 그런 지역이다. 동과 서가 만나는 지역이자 군과 민이 만나는 지역이며 남과 여의 슬픈 축제가 시작되는 지역이다. 이태원은 그가 지나온 삶의 터널과도 같은 곳이며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이자 그에게 문화적 융합과 혼성의 의식을 제공해준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융합과 혼성은 심리적인 사색의 태도이자 끝없는 자기부정의 길이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도시풍경에 던져진 작가의 시선이 내면으로 향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매화와 같은 검은 꽃으로 표현되었다.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매화는 기하학적이거나 건축적인 구조와 어우러지기도 하고, 강한 흑과 백의 평면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공간감을 드러내었다. 때로는 자신이 쓴 싯귀 문자를 배열하면서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의 배면에 담긴 작가의 서정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때 자기부정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양면성을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즉 외적 현실의 구상성과 내적 심상의 추상성은 작가가 지닌 세계관을 반영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작업들은 2000년 이후에 본격화된 꽃그림들이다. 꽃그림은 이미 매화 연작에서 등장했으나 이전과는 달리 흑과 백의 색상을 탈피해 더 이상의 화려가 없을 정도의 강한 원색 대비를 통해 또 다른 메시지를 제공하고 있다. 그 제목들을 보면 꿈, 사랑, 기억, 세월, 향기, 편지, 여름, 추억 등과 같은 서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림을 그리면서 작가가 취하고 있는 작업의 태도는 마치 한편의 러브레터와 같은 것이다. 도시를 살아가는 어는 한 인간이 만들어 내는 삶의 단편적 기억들이 무지개 빛 물감으로 캔버스 위에 아로새겨진다.
영롱하고 투명한 한여름의 빛을 보여주는 하정민의 작업에서 우리가 어두운 그림자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의 작업이 융합의 미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영롱한 것은 무겁고도 어두운 것을 인식할 때 생기는 감흥이다. 그의 그림이 빛이 화려한 것은 역으로 그의 작품에 채워져 있던 그림자를 비워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생기는 감정이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에 표상된 어느 한 감흥은 이렇듯 상반된 세계의 감흥을 전제하고서야 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세계다. 하정민의 화사한 꽃작업은 이렇듯 먹빛으로 채워진 매화의 이미지와 그것을 가두어 내었던 기하학적이고 건축적인 도상들의 기억에 의해 그 존재성을 보장받고 있다.
융합의 미학이란 둘 이상의 요소가 합쳐져 통일된 감각을 일으키는 일이자, 정신분석에서는 생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충동을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사전적 해석은 혼성주의 미학에 어떤 비평적 기준을 제공해 준다. 또한 이러한 작품해석의 태도를 하정민의 작업에 적용한다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서정적 단어 이미지들로서 꿈, 사랑, 기억, 세월, 향기, 편지, 여름, 추억 등의 단어는 현실, 증오, 망각, 죽음, 무취, 이별, 겨울, 아픔 등의 단어들을 떠올리는 기호들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유추는 매우 간단한 논리를 따른다. 동양사상에서 공즉시색 즉 비어있음은 채워짐을 상대적 개념으로 파생된 것이으모 비워진 대상으로서 채워진 대상을 염두에 둔 개념이라는 사실과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음은 삶을 전제한 개념이고 사랑은 증오의 감정 없이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 된다.
하정민의 작품세계는 화려함과 동시에 비애감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의 작업 태도가 융합과 혼성의 심리적 법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대적 해석의 원리는 아무에게서 그리고 어느 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삶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삶이 예술로 표상될 때 나타나는 것이자, 끝없는 자기부정과 새로운 것을 향한 탐구욕망 그리고 그것을 예술언어로 표상해 내는 조형능력이 서로 맞아야 가능한 것이다. 하정민의 예술을 융합과 혼성의 언어적 표상이라 했을 때 우리는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20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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